목차
1. 오리엔탈리즘이란 무엇인가
2. 작품 내용분석 및 요약
제1부 오리엔탈리즘의 범위
제2부 오리엔탈리즘의 구성과 재구성
제3부 오늘의 오리엔탈리즘
3. 우월한 서양, 열등한 동양의 이분법적 담론
4. 오리엔탈리즘의 뿌리
5. 서양의 시각을 통해 대상화되어지는 동양
6. 현시대에서의 오리엔탈리즘
7.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
8. 오리엔탈리즘의 극복
2. 작품 내용분석 및 요약
제1부 오리엔탈리즘의 범위
제2부 오리엔탈리즘의 구성과 재구성
제3부 오늘의 오리엔탈리즘
3. 우월한 서양, 열등한 동양의 이분법적 담론
4. 오리엔탈리즘의 뿌리
5. 서양의 시각을 통해 대상화되어지는 동양
6. 현시대에서의 오리엔탈리즘
7.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
8. 오리엔탈리즘의 극복
본문내용
하나도 없다. 아랍과 이슬람세계는 서양의 시장체계에 완전히 흡수되어 있다. 석유의 생산자이지만 그 대신 아랍은 물질이든 이데올로기든 가리지 않고 지극히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미국제품의 지극히 다양화된 소비자가 되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이 언제까지나 이렇게 과거와 같이 지적, 이데올로기적, 정치적으로 어떤 도전도 받지 않고 그대로 통용될 필요는 없다고 기대한다. 오늘날 이슬람의 역사, 종교, 문명, 사회학, 인류학 등의 분야에서 많은 개별 학자들이 있고, 학문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성과를 산출하고 있다. 예를 들면 클리포드 기어츠의 인류학이다. 그의 이슬람에 관한 관심은 매우 명확하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가 연구하는 고유의 사회와 여러 문제에 의해 활력을 부여하는 것이지 , 오리엔탈리즘의 의례나 교의에 의해 생명력을 부여받는 것은 아니다.
한편 전통적인 오리엔탈리즘의 학문분야에서 훈련을 받은 학자나 비평가도, 낡은 이데올로기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도 있다. 쟉크 베르크나 막심 로댕송이 활기차게 연구를 한 것은 그들이 갖는 방법론적인 자각이었다. 그들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것은 ① 눈앞에 있는 소재에 대한 직접적인 감수성 ② 스스로의 방법론과 그 실천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점검, 곧 스스로의 연구를 교조적인 선입관에 의해서가 아니고 소재 그 자체에 대하여 계속 감응하고자 하는 부단한 시도이다. 구조주의 인류학에 의한 최근의 여러 발견에 대한 베르크의 관심, 사회학과 정치학에 대한 로댕송의 관심, 경제사에 대한 오웬의 관심은 지도적인 교정책이다. 학자들은 사회에 대한 연구가 구체적인 인간의 역사와 경험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는 잊어서는 안된다. ‘동양’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학자나 비평가나, 지식인, 인류는 인종적인, 민족적인, 국민적인 구별 이상으로 인간 사회를 진보시킨다는 공통의 기도를 보다 중요시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인문과학에서 학자들은 더 이상 오리엔탈리즘이 그 역사상의 전성기에 제공한 인종적, 이데올로기적, 제국주의적인 스테레오타입을 사용하지 않아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7.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
에드워드 사이드는 1935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인이다. 이스라엘에 나라를 빼앗기자 이집트와 레바논에서 성장한 그는 50년대 말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과 하버드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뿌리뽑힌 지식인의 운명을 갖게 된 사이드는 서구문화 전체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시야를 키워갔다. 그래서 그의 지적 작업은 서구중심주의로 불리는 편견의 골수들을 해체하는데 집중됐다. 75년 최초의 저서 [시작]에서 에덴동산을 문제삼은 것도 그 때문이며, [기원]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서구문화의 오랜 편견이자 그릇된 자만심의 산물이라고 그는 비판했다. 78년 <오리엔탈리즘>을 내면서 일약 탈식민주의 이론가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90년대 들어 또 하나의 문제작 [문화와 제국주의]를 펴내 화제를 모았다.
사이드는 최근 동양권의 부상과 관련, 서구의 경계심을 촉구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에 대해 『헌팅턴교수가 말하는 문명충돌은 동양 대 서양, 기독교 대 이슬람및 유교의 대결로 서양에 대한 동양의 도전을 의미한다. 이런 전제는 냉전이후 새로운 세계질서의 헤게모니를 동양에 빼앗기지 않고 여전히 서구가 쥐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근거하고 있다. 이제는 제국과 식민지, 동양과 서양이 서로 비난하고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는 것에서 벗어나 동서공동의 경험과 문화적 이해를 통해 공존해 나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제국주의는 세계문화의 혼합을 가져왔다고 분석하면서 상대방의 문화를 적대시하는 편협된 문화주의에서 탈피, 상호공존하는 「다문화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제국과 식민지의 문화중 공통되는 영역과 상충되는 영역을 밝혀내 공통되는 영역을 긍정적으로 확대, 「뒤섞이고 겹치는 역사」를 만들어가자는 것이 그의 바램이다. 사이드교수는 문화적 우월감과 인종적 편견이 내포돼있는 문명충돌론과 이에 대항하는 제삼세계의 국수주의 등은 또다시 동서의 충돌과 위기를 초래할 뿐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시간상으로는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늦게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사이드를 다시 읽게 만든 계기가 바로 헌팅턴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8. 오리엔탈리즘의 극복
동양에 대한 실체를 바로 보지 않는 서양 선진국가와 일본 제국주의 그리고, 이 오도된 오리엔탈리즘에 사로잡힌 우리의 시각은 동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부각하고 타인을 보는 시각의 오류를 지적해가며, 스스로가 부조리한 상황을 깨기 위한 노력으로부터 고쳐져 간다고 생각한다. 동양에 대한 사고방식을 동양인 스스로 다져나가고 새로운 가치를 정립해나가는 노력속에서 동양의 위신이 다져지게 될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오스트리아 출신의 참가작가 라이너 가날은 한국어를 배우면서 제작한 [속도]라는 소주제의 퍼포먼스를 1백 20시간 분량을 녹화해 전시장에 상영함으로써 서양사람들이 동양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역으로 부각시키고자 했었다. 강상중 교수는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를, 고바야시 야스오 씨는 [지와 논리]를, 우실하 씨는 [우리문화 바로읽기]를, 아세이키 교수는 [유럽중심사관에 도전한다]를 통해 출판계를 통해 서양중심의 세계관을 꼬집고자 했다. 유사한 범주의 노력이 아닌 스스로 동양인이라는 자긍심과 동양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는 진정한 세계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리엔탈리즘의 극복이 서양 지식인 사이에서 하나의 화두로 자리잡은 지 수십 해가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오리엔탈리즘의 골은 깊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사이드가 지난 3백년동안 마르크스-헤겔-플로베르-키신저 등 거장의 저작과 서구의 학문논의를 분석해서 서구문화에 침투한 제국주의 논리와 중동에 대한 편견-왜곡을 일일이 지적한 [오리엔탈리즘]. 동양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조차 서구인의 눈으로 해석된 것이 아닌가를 새록새록 일깨워 줄 수 있는, 정치적 주체성 못지 않게 중요한 문화적 주체성을 강조하는 이 책이 더 많이 읽히면서 문화사대주의와 제국주의의 잔상이 깨끗이 지워져 나가기를 바란다.
오리엔탈리즘이 언제까지나 이렇게 과거와 같이 지적, 이데올로기적, 정치적으로 어떤 도전도 받지 않고 그대로 통용될 필요는 없다고 기대한다. 오늘날 이슬람의 역사, 종교, 문명, 사회학, 인류학 등의 분야에서 많은 개별 학자들이 있고, 학문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성과를 산출하고 있다. 예를 들면 클리포드 기어츠의 인류학이다. 그의 이슬람에 관한 관심은 매우 명확하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가 연구하는 고유의 사회와 여러 문제에 의해 활력을 부여하는 것이지 , 오리엔탈리즘의 의례나 교의에 의해 생명력을 부여받는 것은 아니다.
한편 전통적인 오리엔탈리즘의 학문분야에서 훈련을 받은 학자나 비평가도, 낡은 이데올로기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도 있다. 쟉크 베르크나 막심 로댕송이 활기차게 연구를 한 것은 그들이 갖는 방법론적인 자각이었다. 그들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것은 ① 눈앞에 있는 소재에 대한 직접적인 감수성 ② 스스로의 방법론과 그 실천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점검, 곧 스스로의 연구를 교조적인 선입관에 의해서가 아니고 소재 그 자체에 대하여 계속 감응하고자 하는 부단한 시도이다. 구조주의 인류학에 의한 최근의 여러 발견에 대한 베르크의 관심, 사회학과 정치학에 대한 로댕송의 관심, 경제사에 대한 오웬의 관심은 지도적인 교정책이다. 학자들은 사회에 대한 연구가 구체적인 인간의 역사와 경험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는 잊어서는 안된다. ‘동양’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학자나 비평가나, 지식인, 인류는 인종적인, 민족적인, 국민적인 구별 이상으로 인간 사회를 진보시킨다는 공통의 기도를 보다 중요시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인문과학에서 학자들은 더 이상 오리엔탈리즘이 그 역사상의 전성기에 제공한 인종적, 이데올로기적, 제국주의적인 스테레오타입을 사용하지 않아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7.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
에드워드 사이드는 1935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인이다. 이스라엘에 나라를 빼앗기자 이집트와 레바논에서 성장한 그는 50년대 말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과 하버드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뿌리뽑힌 지식인의 운명을 갖게 된 사이드는 서구문화 전체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시야를 키워갔다. 그래서 그의 지적 작업은 서구중심주의로 불리는 편견의 골수들을 해체하는데 집중됐다. 75년 최초의 저서 [시작]에서 에덴동산을 문제삼은 것도 그 때문이며, [기원]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서구문화의 오랜 편견이자 그릇된 자만심의 산물이라고 그는 비판했다. 78년 <오리엔탈리즘>을 내면서 일약 탈식민주의 이론가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90년대 들어 또 하나의 문제작 [문화와 제국주의]를 펴내 화제를 모았다.
사이드는 최근 동양권의 부상과 관련, 서구의 경계심을 촉구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에 대해 『헌팅턴교수가 말하는 문명충돌은 동양 대 서양, 기독교 대 이슬람및 유교의 대결로 서양에 대한 동양의 도전을 의미한다. 이런 전제는 냉전이후 새로운 세계질서의 헤게모니를 동양에 빼앗기지 않고 여전히 서구가 쥐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근거하고 있다. 이제는 제국과 식민지, 동양과 서양이 서로 비난하고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는 것에서 벗어나 동서공동의 경험과 문화적 이해를 통해 공존해 나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제국주의는 세계문화의 혼합을 가져왔다고 분석하면서 상대방의 문화를 적대시하는 편협된 문화주의에서 탈피, 상호공존하는 「다문화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제국과 식민지의 문화중 공통되는 영역과 상충되는 영역을 밝혀내 공통되는 영역을 긍정적으로 확대, 「뒤섞이고 겹치는 역사」를 만들어가자는 것이 그의 바램이다. 사이드교수는 문화적 우월감과 인종적 편견이 내포돼있는 문명충돌론과 이에 대항하는 제삼세계의 국수주의 등은 또다시 동서의 충돌과 위기를 초래할 뿐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시간상으로는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늦게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사이드를 다시 읽게 만든 계기가 바로 헌팅턴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8. 오리엔탈리즘의 극복
동양에 대한 실체를 바로 보지 않는 서양 선진국가와 일본 제국주의 그리고, 이 오도된 오리엔탈리즘에 사로잡힌 우리의 시각은 동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부각하고 타인을 보는 시각의 오류를 지적해가며, 스스로가 부조리한 상황을 깨기 위한 노력으로부터 고쳐져 간다고 생각한다. 동양에 대한 사고방식을 동양인 스스로 다져나가고 새로운 가치를 정립해나가는 노력속에서 동양의 위신이 다져지게 될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오스트리아 출신의 참가작가 라이너 가날은 한국어를 배우면서 제작한 [속도]라는 소주제의 퍼포먼스를 1백 20시간 분량을 녹화해 전시장에 상영함으로써 서양사람들이 동양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역으로 부각시키고자 했었다. 강상중 교수는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를, 고바야시 야스오 씨는 [지와 논리]를, 우실하 씨는 [우리문화 바로읽기]를, 아세이키 교수는 [유럽중심사관에 도전한다]를 통해 출판계를 통해 서양중심의 세계관을 꼬집고자 했다. 유사한 범주의 노력이 아닌 스스로 동양인이라는 자긍심과 동양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는 진정한 세계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리엔탈리즘의 극복이 서양 지식인 사이에서 하나의 화두로 자리잡은 지 수십 해가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오리엔탈리즘의 골은 깊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사이드가 지난 3백년동안 마르크스-헤겔-플로베르-키신저 등 거장의 저작과 서구의 학문논의를 분석해서 서구문화에 침투한 제국주의 논리와 중동에 대한 편견-왜곡을 일일이 지적한 [오리엔탈리즘]. 동양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조차 서구인의 눈으로 해석된 것이 아닌가를 새록새록 일깨워 줄 수 있는, 정치적 주체성 못지 않게 중요한 문화적 주체성을 강조하는 이 책이 더 많이 읽히면서 문화사대주의와 제국주의의 잔상이 깨끗이 지워져 나가기를 바란다.
추천자료
20대가 바라본 `봉순이언니` 독서감상문
청소년문화운동의 현장 독서감상문
(독서감상문) 트리즈 마케팅을 읽고(A+자료)
(독서감상문) 눈사람 마커스를 읽고(A+자료)
(독서감상문) 비서처럼 하라를 읽고(A+자료)
(독서감상문) 서진규의 희망을 읽고(A+자료)
소피의 세계 독서감상문
(독서감상문) 다보스 리포트 힘의 이동을 읽고
(독서감상문) 잭 웰치 승자의 조건을 읽고
(독서감상문)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고
(독서감상문) 알파걸 - 새로운 여자의 탄생을 읽고
(독서감상문) 생각의 오류를 읽고
[독후감][서평][독서감상문]서두칠 저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독후감, 서두칠 저 우...
괜찮아, 엄마는 널 믿어 독후감(괜찮아엄마는널믿어, 독서감감상문, 육아도서, 나의생각, 작...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