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당시 반 정도 완성된 의사당 건물을 불질렀다. 영국군의 만행에 기가 꺾인 시민들은 워싱턴 D.C.의 건설 자체를 포기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미 정부는 세 번째 건축가인 찰스 벌핀치(Charles Bulfinch)를 영입했고 국회의사당은 마침내 재건되었다. 900만 파운드 무게의 둥근 지붕이 1855년에 완성되어 종전의 조그만 지붕을 대체하였고 1857년에는 상원과 하원이 완성되었다. 1863년에 19피트에 이르는 자유의 조각이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면서 마침내 완공되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현재의 의사당 건물은 기존에 계획했던 것보다 두 배 이상 큰 규모이며, 처음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건축되었다.
2. 백악관(White House)
펜실베이니아 거리에 위치한 백악관은 원래 제임스 호반(James Hoban)에 의하여 1792~1800년에 건설되었지만 1812년 영국군이 불태운 이후 1815년에 재건되었다. 그 이후 백악관은 존 애덤스(John Adams) 대통령 이후 미국의 모든 대통령이 거주하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미세한 변화가 있기는 하였지만 중요한 구조와 외곽은 1800년대와 거의 변화가 없다. 대통령의 상징인 백악관은 미국의 대통령들이 거주하면서 모든 중요한 결정을 내린 곳이기도 하다.
3. 링컨기념관(Lincoln Memorial)
링컨기념관은 링컨 대통령과 남북전쟁 때 그가 지키고자 싸웠던 국가를 기리고자 세워졌다. 그리스 신전과 비슷한 형태로 36개의 도리스형 기둥이 있는데 기둥 하나하나는 링컨이 사망할 당시의 36개 주를 의미한다. 기념관 가운데는 링컨상이 위치하고 있다. 기념관 안의 남쪽 벽면에는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이 새겨져 있고 위에는 줄리어스 구에린(Jules Guerin)이 그린 노예를 해방하는 천사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북쪽 벽엔 남과 북의 화합을 의미하는 벽화가 있고 그 밑엔 링컨의 두 번째 취임연설이 새겨져 있다.
4. 워싱턴기념탑(Washington Monument)
555피트 높이의 워싱턴기념탑은 워싱턴 D.C.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서 미국의 첫 번째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기리기 위하여 건설되었다. 공사가 시작된 것은 1848년이지만 37년 뒤 탑이 완공되기까지 많은 시련을 겪었다. 워싱턴기념탑 건설을 위해 피오(Pius) 교황이 기부한 돌이 교황절대주의 반대파에 의해 도난당했고 이들은 탑 건설을 위한 자금모금 활동도 방해하였다. 당시 연방정부의 무기력함을 상징하듯이 152피트 높이에서 공사가 중단된 적도 있으나 남북전쟁이 끝난 후 다시 공사가 재건되었다. 이렇게 두 번에 걸친 공사는 탑의 아랫부분과 윗부분이 두 가지의 음영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워싱턴 기념탑의 정점은 1884년에 혹독한 폭풍 속에서 완성되었고 1982년의 테러공격에도 살아남았다.
<워싱턴 기념관> <미국 국방부 펜타곤> <링컨 대통령상>
5. 제퍼슨 기념관(Thomas Jefferson Memorial)
독립선언문의 기안자이고 미국의 3대 대통령이며 버지니아 대학의 창립자인 토마스 제퍼슨을 기리 기 위해 설립된 기념관이다. 존 러셀 포프(John Russel Pope)에 의하여 버지니아 대학의 제퍼슨 도서관과 유사하게 설계되었다.
6. 스미스소니언 협회(Smithsonian Institution)
스미스소니언 협회는 미국을 한 번도 와보지 못했던 영국의 화학자인 제임스 스미스손(James Smithson)이 1826년에 인류에 과학지식의 보급향상을 위한 스미스소니언 협회를 워싱턴 D.C.에 창설하기 위하여 미합중국에 전 재산을 기부한다는 유언을 남기면서 미국 의회가 1846년 워싱턴 D.C.에 창립한 학술협회다. 스미스소니언은 현재 150년 이상 되었고 16개 박물관에는 1억 4000만 점의 미술품, 과학견본, 문화유물 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단순한 박물관이 아닌 학술협회로서 많은 연구와 학술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7. 국방부
미국 국방부는 세계에서 가장 큰 펜타곤 빌딩에 위치하고 있다. 펜타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16개월 만에 완공되었다. 펜타곤 건물 안은 수십 마일에 걸친 복도가 있으며 2만 5000명의 사람이 거대한 오각형 빌딩에서 근무하고 있다.
8. 알링톤 국립묘지(Arlington National Cemetery)
로버트 리가 남북전쟁에서 남부군을 지휘하러 떠나면서 미국 연방정부는 로버트 리의 집과 1100 에이커에 이르는 그의 토지를 몰수하였다. 남북전쟁 시 미 정부는 앙갚음을 하기 위하여 리 장군의 집 근처에 북부군 전사자의 유해를 묻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리 가족은 연방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연방정부는 리 가족에게 손해배상하고 리 가족 소유였던 땅에는 알링톤 국립묘지를 건축하게 되었다. 링컨기념관의 서쪽, 포토맥 강을 건너 612 에이커 면적에 24만 5000개의 묘를 가지고 있는 알링톤 국립묘지는 미국의 역사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 독립전쟁 이후 미국이 싸웠던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과 가족들 그리고 미국의 35대 케네디 대통령 같은 미국의 유명한 정치인들의 묘지가 안치되어 있다. 케네디 묘의 영원이 꺼지지 않는 불꽃 바로 위에는 케네디 대통령과, 동생 로버트 케네디, 그리고 부인 재클린 케네디와 유아기에 죽은 그녀의 두 아이가 안치되어 있다.
◎ 맺음말
미국의 정치·경제·사회적 모든 요소를 상징하는 워싱턴D.C.는 세계적인 초강대국인 미국을 상징하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워싱턴 D.C.는 세계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즐비하게 있고 피부색과 관계없이 모든 인종이 함께 모여 있다. 또한 초강대국 미국의 정치인들이 모여 국정을 논의하는 도시이며, 초강대국 미국을 상징하는 펜타곤과 대내외적 첩보활동을 벌이는 FBI, CIA의 본부가 있다. 조지워싱턴과 조지타운 대학이 위치하고 있는 워싱턴 D.C.는 교육의 생동감이 넘치는 도시이기도 하다.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도시인 워싱턴 D.C.는 정치인, 경제인, 교육인 등 모든 분류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 정부는 세 번째 건축가인 찰스 벌핀치(Charles Bulfinch)를 영입했고 국회의사당은 마침내 재건되었다. 900만 파운드 무게의 둥근 지붕이 1855년에 완성되어 종전의 조그만 지붕을 대체하였고 1857년에는 상원과 하원이 완성되었다. 1863년에 19피트에 이르는 자유의 조각이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면서 마침내 완공되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현재의 의사당 건물은 기존에 계획했던 것보다 두 배 이상 큰 규모이며, 처음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건축되었다.
2. 백악관(White House)
펜실베이니아 거리에 위치한 백악관은 원래 제임스 호반(James Hoban)에 의하여 1792~1800년에 건설되었지만 1812년 영국군이 불태운 이후 1815년에 재건되었다. 그 이후 백악관은 존 애덤스(John Adams) 대통령 이후 미국의 모든 대통령이 거주하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미세한 변화가 있기는 하였지만 중요한 구조와 외곽은 1800년대와 거의 변화가 없다. 대통령의 상징인 백악관은 미국의 대통령들이 거주하면서 모든 중요한 결정을 내린 곳이기도 하다.
3. 링컨기념관(Lincoln Memorial)
링컨기념관은 링컨 대통령과 남북전쟁 때 그가 지키고자 싸웠던 국가를 기리고자 세워졌다. 그리스 신전과 비슷한 형태로 36개의 도리스형 기둥이 있는데 기둥 하나하나는 링컨이 사망할 당시의 36개 주를 의미한다. 기념관 가운데는 링컨상이 위치하고 있다. 기념관 안의 남쪽 벽면에는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이 새겨져 있고 위에는 줄리어스 구에린(Jules Guerin)이 그린 노예를 해방하는 천사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북쪽 벽엔 남과 북의 화합을 의미하는 벽화가 있고 그 밑엔 링컨의 두 번째 취임연설이 새겨져 있다.
4. 워싱턴기념탑(Washington Monument)
555피트 높이의 워싱턴기념탑은 워싱턴 D.C.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서 미국의 첫 번째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기리기 위하여 건설되었다. 공사가 시작된 것은 1848년이지만 37년 뒤 탑이 완공되기까지 많은 시련을 겪었다. 워싱턴기념탑 건설을 위해 피오(Pius) 교황이 기부한 돌이 교황절대주의 반대파에 의해 도난당했고 이들은 탑 건설을 위한 자금모금 활동도 방해하였다. 당시 연방정부의 무기력함을 상징하듯이 152피트 높이에서 공사가 중단된 적도 있으나 남북전쟁이 끝난 후 다시 공사가 재건되었다. 이렇게 두 번에 걸친 공사는 탑의 아랫부분과 윗부분이 두 가지의 음영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워싱턴 기념탑의 정점은 1884년에 혹독한 폭풍 속에서 완성되었고 1982년의 테러공격에도 살아남았다.
<워싱턴 기념관> <미국 국방부 펜타곤> <링컨 대통령상>
5. 제퍼슨 기념관(Thomas Jefferson Memorial)
독립선언문의 기안자이고 미국의 3대 대통령이며 버지니아 대학의 창립자인 토마스 제퍼슨을 기리 기 위해 설립된 기념관이다. 존 러셀 포프(John Russel Pope)에 의하여 버지니아 대학의 제퍼슨 도서관과 유사하게 설계되었다.
6. 스미스소니언 협회(Smithsonian Institution)
스미스소니언 협회는 미국을 한 번도 와보지 못했던 영국의 화학자인 제임스 스미스손(James Smithson)이 1826년에 인류에 과학지식의 보급향상을 위한 스미스소니언 협회를 워싱턴 D.C.에 창설하기 위하여 미합중국에 전 재산을 기부한다는 유언을 남기면서 미국 의회가 1846년 워싱턴 D.C.에 창립한 학술협회다. 스미스소니언은 현재 150년 이상 되었고 16개 박물관에는 1억 4000만 점의 미술품, 과학견본, 문화유물 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단순한 박물관이 아닌 학술협회로서 많은 연구와 학술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7. 국방부
미국 국방부는 세계에서 가장 큰 펜타곤 빌딩에 위치하고 있다. 펜타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16개월 만에 완공되었다. 펜타곤 건물 안은 수십 마일에 걸친 복도가 있으며 2만 5000명의 사람이 거대한 오각형 빌딩에서 근무하고 있다.
8. 알링톤 국립묘지(Arlington National Cemetery)
로버트 리가 남북전쟁에서 남부군을 지휘하러 떠나면서 미국 연방정부는 로버트 리의 집과 1100 에이커에 이르는 그의 토지를 몰수하였다. 남북전쟁 시 미 정부는 앙갚음을 하기 위하여 리 장군의 집 근처에 북부군 전사자의 유해를 묻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리 가족은 연방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연방정부는 리 가족에게 손해배상하고 리 가족 소유였던 땅에는 알링톤 국립묘지를 건축하게 되었다. 링컨기념관의 서쪽, 포토맥 강을 건너 612 에이커 면적에 24만 5000개의 묘를 가지고 있는 알링톤 국립묘지는 미국의 역사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 독립전쟁 이후 미국이 싸웠던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과 가족들 그리고 미국의 35대 케네디 대통령 같은 미국의 유명한 정치인들의 묘지가 안치되어 있다. 케네디 묘의 영원이 꺼지지 않는 불꽃 바로 위에는 케네디 대통령과, 동생 로버트 케네디, 그리고 부인 재클린 케네디와 유아기에 죽은 그녀의 두 아이가 안치되어 있다.
◎ 맺음말
미국의 정치·경제·사회적 모든 요소를 상징하는 워싱턴D.C.는 세계적인 초강대국인 미국을 상징하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워싱턴 D.C.는 세계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즐비하게 있고 피부색과 관계없이 모든 인종이 함께 모여 있다. 또한 초강대국 미국의 정치인들이 모여 국정을 논의하는 도시이며, 초강대국 미국을 상징하는 펜타곤과 대내외적 첩보활동을 벌이는 FBI, CIA의 본부가 있다. 조지워싱턴과 조지타운 대학이 위치하고 있는 워싱턴 D.C.는 교육의 생동감이 넘치는 도시이기도 하다.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도시인 워싱턴 D.C.는 정치인, 경제인, 교육인 등 모든 분류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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