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본론
결론
본론
결론
본문내용
프로젝트를 통해 단기간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려고 하지만 근본적인 비정규직 관리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격이 될 뿐이다. 게다가 교수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가하는 현 종신 교수제 또한 우수 인력의 쓰레기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심지어 한 시간강사는 현 상황을 비관해 자살까지 하는 이 판국에 보수파가 주축이 된 정부는 뒷짐지고 수수방관만 하고 있으니 외국에서의 박사학위 수여자들 대부분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 두뇌유출(Brain Drain)현상 또한 당연한 일이다. 이제 시간강사를 비롯한 박사학위 수여자들은 대학을 ‘착취 공장이자 지식 시장의 명품 백화점’ 박노자, op.cit., p.99
으로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양 수업의 절반, 전공 수업의 약 35%를 차지하는 시간강사들을 교수들은 마치 20세기 초 소작농 부리듯 하고 있다. 한 학기 이상 계약하는 것도 힘들면서 보수는 일반 사무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0~140만원. 그렇다면 만약 시간강사의 숙원이 이루어져 그가 교수가 될 경우, 과연 그가 안정적인 교수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앞에서 언급했듯 한국 사회는 혈연, 학연, 지연이 오래된 나무뿌리같이 얽힌 나라이자 엄격한 수직적 신분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21세기의 봉건국가’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가 된다 하더라도 웬만한 연줄이 없고서야 안정된 교수생활을 하긴 힘들다. 이래저래 도태되는 건 마찬가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는 굉장히 힘든 일이다. 수 십 년 동안 그 혜택을 누려왔던 기득권층이 그리 쉽게 권력을 내줄 것도 만무하거니와 아직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이 시점에 하루아침에 비정규직의 위치가 정규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선 정부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대략적인 법안을 만들고 비정규직 노조를 통해 권리를 찾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이대로 대학이 비정규직 요원들에게 ‘제3세계형 착취 공장’으로 비춰진다면 한국 대학의 미래,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미래는 끝없는 터널을 지나는 것과 매한가지일 것이다.
V. 프랙탈 - 이중성의 사회
프랙탈. 단순한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그 형태를 찾아가는 구조. 마치 씨가 가득 찬 해바라기 꽃을 보듯 미시적인 구조가 반복되어 거대한 구조를 이루는 것을 우리는 프랙탈이라 부른다. 우리는 자연에서 프랙탈 구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겨울의 눈송이, 밤하늘의 별, 그리고 하다못해 우리의 뇌까지. 이렇듯 우리와 우리 주변을 이루는 것이 프랙탈이기에 우리 사회 또한 프랙탈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하면 너무 억지스러운 주장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 천천히 생각해 보면 작은 집합의 문제점이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점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이지메, 민족주의 모두 프랙탈의 모습을 띄고 있다. 이지메 당하는 아이와 이지메를 가하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모종의 사회적 약자 - 강자의 관계가 성립되고, 가족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국가 전체의 민족주의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소규모 단체에서의 문제가 국가 전체의 문제점이 되는 프랙탈적 사회가 바로 요즘의 사회인 것이다.
확실히 한국 사회는 병들어 있다. 비록 저자인 진중권은 그의 책 ‘폭력과 상스러움’에서 비난 일변도로 한국 사회를 난도질했다. 물론 그도 사회 구성원의 일인이고 사람이기에 그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매도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언급한 바에 대해 저자가 논박하는 식의 책, 즉 엑스 리브리스 "...라는 책에서“라는 뜻으로, 과거에 저자가 남의 책을 인요할 때 사용하던 관용구
이기 때문에 내가 원했던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날카로운 비판을 완전하게 얻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내용만으로도 한국 사회의 병폐를 알기에는 충분했다.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신화적, 신적 폭력’ 진중권, op.cit., p.32
좌익과 우익의 끊임없는 이념대립,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이도저도 못하는 사회 약자층. 게다가 참고도서로 읽은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또한 한국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해 놓은 것이기에 한국 사회의 병폐에 대해 더 잘 알지 않았나 싶다. 물론 나 또한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편견)에 저자의 의견을 투영시켜 이 책을 읽기에 이 책의 내용을 과장되게 이해하고 저자와의 의견충돌이 있었다. 특히나 저자의 비난 일색인 글은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물론 진중권이 날카로운 비판으로 유명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한 두 곳쯤은 한국 사회의 밝은 면도 보여주길 바랐던 건 독자의 이기적인 생각일까.
하지만 한국 사회, 치료가 불가능한 사회는 아니다. 보수주의에 물들어 있는 것은 현재의 기득권 층, 그 중에서도 소수의 사람들이다. 게다가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리고 한국 사회의 진정한 모습, 미시적인 모습에 신경을 쓴다면 한국 사회는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건물의 벽을 세우고 기반을 닦았다면 이제는 그 건물을 꾸미고 단장해 아늑한 공간으로 만들 때이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내가 계속 제도적 장치를 운운했지만 그것 하나 만드는 데에도 수많은 시련을 겪어야 하는 것이 현재 사회이다. 다행인 것은 이제 몇 년, 몇 십 년 후 사회를 이끌어 갈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권위주위나 극단적인 사고방식에 물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우리 주위에는 아무리 주위 환경이 나쁘고 좋지 않더라도 자기의 신념을 꿋꿋이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듯 하나 하나 한국 사회의 병폐를 치료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지금의 어떤 선진국 보다 더 사회약자층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적 인식이 잘 정돈된 나라로 탈바꿈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진중권(2008), 『폭력과 상스러움』, 푸른숲
라이니쉬, J.M. , 이영식 역(2008), 『킨제이 보고서』
박노자(2008), 『당신들의 대한민국 02』
『주간동아』, 2008년 6월 21일
[신문]
『한겨레신문』, 2008. 8. 9.
[인터넷 사이트]
www.naver,com
으로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양 수업의 절반, 전공 수업의 약 35%를 차지하는 시간강사들을 교수들은 마치 20세기 초 소작농 부리듯 하고 있다. 한 학기 이상 계약하는 것도 힘들면서 보수는 일반 사무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0~140만원. 그렇다면 만약 시간강사의 숙원이 이루어져 그가 교수가 될 경우, 과연 그가 안정적인 교수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앞에서 언급했듯 한국 사회는 혈연, 학연, 지연이 오래된 나무뿌리같이 얽힌 나라이자 엄격한 수직적 신분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21세기의 봉건국가’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가 된다 하더라도 웬만한 연줄이 없고서야 안정된 교수생활을 하긴 힘들다. 이래저래 도태되는 건 마찬가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는 굉장히 힘든 일이다. 수 십 년 동안 그 혜택을 누려왔던 기득권층이 그리 쉽게 권력을 내줄 것도 만무하거니와 아직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이 시점에 하루아침에 비정규직의 위치가 정규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선 정부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대략적인 법안을 만들고 비정규직 노조를 통해 권리를 찾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이대로 대학이 비정규직 요원들에게 ‘제3세계형 착취 공장’으로 비춰진다면 한국 대학의 미래,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미래는 끝없는 터널을 지나는 것과 매한가지일 것이다.
V. 프랙탈 - 이중성의 사회
프랙탈. 단순한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그 형태를 찾아가는 구조. 마치 씨가 가득 찬 해바라기 꽃을 보듯 미시적인 구조가 반복되어 거대한 구조를 이루는 것을 우리는 프랙탈이라 부른다. 우리는 자연에서 프랙탈 구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겨울의 눈송이, 밤하늘의 별, 그리고 하다못해 우리의 뇌까지. 이렇듯 우리와 우리 주변을 이루는 것이 프랙탈이기에 우리 사회 또한 프랙탈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하면 너무 억지스러운 주장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 천천히 생각해 보면 작은 집합의 문제점이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점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이지메, 민족주의 모두 프랙탈의 모습을 띄고 있다. 이지메 당하는 아이와 이지메를 가하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모종의 사회적 약자 - 강자의 관계가 성립되고, 가족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국가 전체의 민족주의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소규모 단체에서의 문제가 국가 전체의 문제점이 되는 프랙탈적 사회가 바로 요즘의 사회인 것이다.
확실히 한국 사회는 병들어 있다. 비록 저자인 진중권은 그의 책 ‘폭력과 상스러움’에서 비난 일변도로 한국 사회를 난도질했다. 물론 그도 사회 구성원의 일인이고 사람이기에 그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매도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언급한 바에 대해 저자가 논박하는 식의 책, 즉 엑스 리브리스 "...라는 책에서“라는 뜻으로, 과거에 저자가 남의 책을 인요할 때 사용하던 관용구
이기 때문에 내가 원했던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날카로운 비판을 완전하게 얻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내용만으로도 한국 사회의 병폐를 알기에는 충분했다.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신화적, 신적 폭력’ 진중권, op.cit., p.32
좌익과 우익의 끊임없는 이념대립,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이도저도 못하는 사회 약자층. 게다가 참고도서로 읽은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또한 한국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해 놓은 것이기에 한국 사회의 병폐에 대해 더 잘 알지 않았나 싶다. 물론 나 또한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편견)에 저자의 의견을 투영시켜 이 책을 읽기에 이 책의 내용을 과장되게 이해하고 저자와의 의견충돌이 있었다. 특히나 저자의 비난 일색인 글은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물론 진중권이 날카로운 비판으로 유명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한 두 곳쯤은 한국 사회의 밝은 면도 보여주길 바랐던 건 독자의 이기적인 생각일까.
하지만 한국 사회, 치료가 불가능한 사회는 아니다. 보수주의에 물들어 있는 것은 현재의 기득권 층, 그 중에서도 소수의 사람들이다. 게다가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리고 한국 사회의 진정한 모습, 미시적인 모습에 신경을 쓴다면 한국 사회는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건물의 벽을 세우고 기반을 닦았다면 이제는 그 건물을 꾸미고 단장해 아늑한 공간으로 만들 때이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내가 계속 제도적 장치를 운운했지만 그것 하나 만드는 데에도 수많은 시련을 겪어야 하는 것이 현재 사회이다. 다행인 것은 이제 몇 년, 몇 십 년 후 사회를 이끌어 갈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권위주위나 극단적인 사고방식에 물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우리 주위에는 아무리 주위 환경이 나쁘고 좋지 않더라도 자기의 신념을 꿋꿋이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듯 하나 하나 한국 사회의 병폐를 치료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지금의 어떤 선진국 보다 더 사회약자층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적 인식이 잘 정돈된 나라로 탈바꿈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진중권(2008), 『폭력과 상스러움』, 푸른숲
라이니쉬, J.M. , 이영식 역(2008), 『킨제이 보고서』
박노자(2008), 『당신들의 대한민국 02』
『주간동아』, 2008년 6월 21일
[신문]
『한겨레신문』, 2008. 8. 9.
[인터넷 사이트]
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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