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 론
1) 조사 배경
2) 조사의 목적
3) 조사의 범위 및 방법
2. 교회와 선교의 개념과 정의
1) 교회에 대하여
2) 선교에 대하여
3. 초대교회의 선교
1) 초대교회의 선교준비과정
2) 초대교회의 선교의 특색
(1) 문화적 문제의 해결:
(2) 집단 회심(People Movement)의 선교
(3) 도시 중심의 선교
(4) 성령의 주도에 의한 선교:
3) 초대교회에서의 성령
(1)선교의 동역자 이신 성령
(2)성령의 역사
4.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
1) 예루살렘교회
(1) 예루살렘 교회의 시작과 역사
(2) 예루살렘 교회의 성격
(3) 예루살렘교회의 특색
(4) 예루살렘교회의 선교
2) 안디옥 교회
(1) 안디옥 교회의 시작과 역사
(2) 안디옥 교회의 성격
(3) 안디옥 교회의 특성
(4) 안디옥교회의 선교
5. 결 론
1) 조사 배경
2) 조사의 목적
3) 조사의 범위 및 방법
2. 교회와 선교의 개념과 정의
1) 교회에 대하여
2) 선교에 대하여
3. 초대교회의 선교
1) 초대교회의 선교준비과정
2) 초대교회의 선교의 특색
(1) 문화적 문제의 해결:
(2) 집단 회심(People Movement)의 선교
(3) 도시 중심의 선교
(4) 성령의 주도에 의한 선교:
3) 초대교회에서의 성령
(1)선교의 동역자 이신 성령
(2)성령의 역사
4.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
1) 예루살렘교회
(1) 예루살렘 교회의 시작과 역사
(2) 예루살렘 교회의 성격
(3) 예루살렘교회의 특색
(4) 예루살렘교회의 선교
2) 안디옥 교회
(1) 안디옥 교회의 시작과 역사
(2) 안디옥 교회의 성격
(3) 안디옥 교회의 특성
(4) 안디옥교회의 선교
5. 결 론
본문내용
그들은 뛰어난 단결을 구현하며 전체 신도들 가운데 단결을 심어 주고자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들 다섯 사람이 공동목회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의 지도권은 실제적으로 바울과 바나바 이 두 사람이 지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바나바가 부흥되고 있는 안디옥 교회가 세계선교의 전초 기지임을 깨닫고 이일을 감당할 큰 인물이 자신이 아닌 바울임을 간파하여 자신의 공명을 버리고 바울을 데려왔다는 점이다. 임택진 틋으로 본 사도행전 (서울: 교문사, 1975), p. 246
예루살렘교회에서 인정을 받아 안디옥 교회에 파송된 바나바는 착한 성품을 가진 인격자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였다.(행11:24) 그러나 그는 자신보다는 바울의 능력을 더욱더 높이 평가하여 그를 과감히 불러들였고 자신이 섬기는 위치에서 교회를 이끌어 나간 것이다.
결국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같이 자질을 갖춘 위대한 지도자들을 만남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일컬음을 받을 수 있기까지 착실히 양육되었고 이방선교의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까지 성장하였던 것이다.
(4) 안디옥교회의 선교: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선교에 파송한 것은 중요한 의의가 내표되어 있다.
첫째로는 기독교 교회사상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땅 끝까지 가서 선교하라는 선교명령이 실천에 옮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로는 세계선교의 준비단계를 거쳐서 세계선교의 문호가 열린 후 이방세계에 진출한 것은,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인 사도들이 아니라, 헬라문화권에서 성장한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바울이었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타문화권 선교에 있어서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준비가 된 바울을 선택하셨다. 그는 문화충격을 받지 않고 선교 할 수 있었다.
셋째로는 안디옥 교회는 기독교 선교사상에 피선교지 교회의 ‘모텔케이스’로 연구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안디옥 교회는 피선교지 교회에 급속히 탈피하여 선교하는 교회로 급성장 하였다. 이것은 오늘의 선교이론에 큰 빛을 던질 것이다. 안디옥 교회를 중심을한 사도행전의 내용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1- 8장: 유대인(사도)이 유대인에게 전도
9-12장: 유대인 신자가 이방인에게 전도
13-28장: 이방인 신자가 이방인에게 전도하며 선교사를 파송
이 도식은 피선교지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Sending Churdch)로 성장하여 선교의 기능을 발휘하게 될 때에 비로서 신약성서적인 교회가 된다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신약 성서적 교회는 예루살렘교회보다 안디옥 교회가 되어야한다고 본다. 이것은 피선교지 교회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교회(즉 신약성서 교회)란 어떤 교회인가를 말해주며 교회의 본질과 임무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5. 결 론
지금까지 살펴본바와 같이 선교는 교회에 있어서 일반적인 사항이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우리에게 내려주신 지상 명령이자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사명이다. 선교의 사명에 있어 현대의 시대에 표상이 될 수 있는 교회를 뽑으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예루살렘교회의 특징을 살펴보면 성령에 의해서 세워지고, 표적이 따랐으며 사랑의 공동체였고, 항상 기도하였으며, 백성들로부터 칭찬받았다. 또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잘 받은 교회로 하나가되었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다. 이처럼 예루살렘교회는 현대의 교회가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교회였던 것이다.
안디옥교회의 특징을 살펴보면, 흩어진 신자들의 희생적인 전도활동으로 생긴 개척 교회로서, 분명한 전도 메시지로 무장하고 이를 위해 진지한 평신도 훈련을 꾸준히 해왔으며 구제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또한 불신자들에게 인정받는 생활을 하였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교회 공동체를 이룩하였다.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는 이처럼 이상적인 교회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은 예루살렘교회보다는 안디옥 교회에 초첨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그것은 예루살렘교회는 선교함에 있어 실패한 교회요 안디옥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로 성공한 교회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두 교회모두 내적인 면이나 외적인 면에서 모두 교회의 이상적 모습을 두루 갖추고 있는 훌륭한 교회이다. 지금의 한국의 교회에서도 이러한 이상적인 모습을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지 이러한 면만을 강조하여 보면 안돼는 것이다. 안디옥교회 에서는 예루살렘교회와 달리 선교에 중점을 두어 하나님 볶음을 전하였다. 자질을 갖춘 지도자이자 안디옥 교회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핵심적인 두 인물인 바울과 바나바를 아낌없이 자신의 교회를 만을 위해 붙잡아 놓은 것이 아니라 과감히 성령님의 이끄심에 따라 선교에 파송하였다. 이 사실을 보면서 현대의 많은 교회들이 예루살렘교회처럼 교회의 본연의 임무인 선교에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안디옥 교회의 과감한 선교사 파송을 본받기를 희망한다.
오늘날 복음이 세계 각처에 전달되고 있다지만, 아직도 이 땅에는 복음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모든 인간의 구세주 되신 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도 불신 세계에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 해야 되겠다는 소명의식이 절심하다. 우리의 소명 없는 것을 개탄하고 하나님의 뜻으로 불러주신 우리 기독교인들이 소명을 받고 하나님께로 받은 자신의 자질을 도구로 삼아 불신자들에게나 복음을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바로 증거 하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기독교대백과사전” 제 16권, 부록 (1983), p. 205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세계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선교를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던 안디옥 교회처럼 현대의 교회 또한 선교를 교회일의 한부분이 아닌, 안디옥교회가 가장 소중한 바울과 바나바를 아낌없이 보냈던 것처럼, 교회의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모든 부분을 투자하여 기울 일수 있어야만 진정한 선교효과를 볼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비록 이들 다섯 사람이 공동목회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의 지도권은 실제적으로 바울과 바나바 이 두 사람이 지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바나바가 부흥되고 있는 안디옥 교회가 세계선교의 전초 기지임을 깨닫고 이일을 감당할 큰 인물이 자신이 아닌 바울임을 간파하여 자신의 공명을 버리고 바울을 데려왔다는 점이다. 임택진 틋으로 본 사도행전 (서울: 교문사, 1975), p. 246
예루살렘교회에서 인정을 받아 안디옥 교회에 파송된 바나바는 착한 성품을 가진 인격자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였다.(행11:24) 그러나 그는 자신보다는 바울의 능력을 더욱더 높이 평가하여 그를 과감히 불러들였고 자신이 섬기는 위치에서 교회를 이끌어 나간 것이다.
결국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같이 자질을 갖춘 위대한 지도자들을 만남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일컬음을 받을 수 있기까지 착실히 양육되었고 이방선교의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까지 성장하였던 것이다.
(4) 안디옥교회의 선교: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선교에 파송한 것은 중요한 의의가 내표되어 있다.
첫째로는 기독교 교회사상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땅 끝까지 가서 선교하라는 선교명령이 실천에 옮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로는 세계선교의 준비단계를 거쳐서 세계선교의 문호가 열린 후 이방세계에 진출한 것은,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인 사도들이 아니라, 헬라문화권에서 성장한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바울이었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타문화권 선교에 있어서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준비가 된 바울을 선택하셨다. 그는 문화충격을 받지 않고 선교 할 수 있었다.
셋째로는 안디옥 교회는 기독교 선교사상에 피선교지 교회의 ‘모텔케이스’로 연구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안디옥 교회는 피선교지 교회에 급속히 탈피하여 선교하는 교회로 급성장 하였다. 이것은 오늘의 선교이론에 큰 빛을 던질 것이다. 안디옥 교회를 중심을한 사도행전의 내용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1- 8장: 유대인(사도)이 유대인에게 전도
9-12장: 유대인 신자가 이방인에게 전도
13-28장: 이방인 신자가 이방인에게 전도하며 선교사를 파송
이 도식은 피선교지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Sending Churdch)로 성장하여 선교의 기능을 발휘하게 될 때에 비로서 신약성서적인 교회가 된다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신약 성서적 교회는 예루살렘교회보다 안디옥 교회가 되어야한다고 본다. 이것은 피선교지 교회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교회(즉 신약성서 교회)란 어떤 교회인가를 말해주며 교회의 본질과 임무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5. 결 론
지금까지 살펴본바와 같이 선교는 교회에 있어서 일반적인 사항이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우리에게 내려주신 지상 명령이자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사명이다. 선교의 사명에 있어 현대의 시대에 표상이 될 수 있는 교회를 뽑으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예루살렘교회의 특징을 살펴보면 성령에 의해서 세워지고, 표적이 따랐으며 사랑의 공동체였고, 항상 기도하였으며, 백성들로부터 칭찬받았다. 또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잘 받은 교회로 하나가되었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다. 이처럼 예루살렘교회는 현대의 교회가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교회였던 것이다.
안디옥교회의 특징을 살펴보면, 흩어진 신자들의 희생적인 전도활동으로 생긴 개척 교회로서, 분명한 전도 메시지로 무장하고 이를 위해 진지한 평신도 훈련을 꾸준히 해왔으며 구제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또한 불신자들에게 인정받는 생활을 하였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교회 공동체를 이룩하였다.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는 이처럼 이상적인 교회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은 예루살렘교회보다는 안디옥 교회에 초첨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그것은 예루살렘교회는 선교함에 있어 실패한 교회요 안디옥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로 성공한 교회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두 교회모두 내적인 면이나 외적인 면에서 모두 교회의 이상적 모습을 두루 갖추고 있는 훌륭한 교회이다. 지금의 한국의 교회에서도 이러한 이상적인 모습을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지 이러한 면만을 강조하여 보면 안돼는 것이다. 안디옥교회 에서는 예루살렘교회와 달리 선교에 중점을 두어 하나님 볶음을 전하였다. 자질을 갖춘 지도자이자 안디옥 교회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핵심적인 두 인물인 바울과 바나바를 아낌없이 자신의 교회를 만을 위해 붙잡아 놓은 것이 아니라 과감히 성령님의 이끄심에 따라 선교에 파송하였다. 이 사실을 보면서 현대의 많은 교회들이 예루살렘교회처럼 교회의 본연의 임무인 선교에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안디옥 교회의 과감한 선교사 파송을 본받기를 희망한다.
오늘날 복음이 세계 각처에 전달되고 있다지만, 아직도 이 땅에는 복음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모든 인간의 구세주 되신 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도 불신 세계에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 해야 되겠다는 소명의식이 절심하다. 우리의 소명 없는 것을 개탄하고 하나님의 뜻으로 불러주신 우리 기독교인들이 소명을 받고 하나님께로 받은 자신의 자질을 도구로 삼아 불신자들에게나 복음을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바로 증거 하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기독교대백과사전” 제 16권, 부록 (1983), p. 205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세계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선교를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던 안디옥 교회처럼 현대의 교회 또한 선교를 교회일의 한부분이 아닌, 안디옥교회가 가장 소중한 바울과 바나바를 아낌없이 보냈던 것처럼, 교회의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모든 부분을 투자하여 기울 일수 있어야만 진정한 선교효과를 볼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