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루터킹의 비폭력 저항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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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야만적인 조종에 놀아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도저히 침묵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킹 목사는 1967년 4월 4일 뉴욕 리버사이드 호텔에서 최초의 공식적인 반전연설을 했다. 그가 처음 여론과 흑인들에게까지도 비난을 받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연한 자세로 전쟁의 반대를 외쳤다. 킹 목사가 암살당하게 된 이유는 반전운동에 찬성하는 편에 섰기 때문에 CIA에서 제거할 명분을 가졌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마틴루터킹목사의 사상 및 비폭력운동의 특징
킹의 삶을 몇 개의 단어로 요약한다면 '사랑과 정의를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열망' 그리고 '폭력과 위선으로 가득한 세계에 맨손으로 맞선 용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을 목격하면서 불의의 사회를 개혁하려는 열망을 지녔던 소년 킹은 대대로 목사였던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 데는 이러한 가정환경 탓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사회를 정의롭게 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본능적으로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성직으로 인도한 것은 초자연적인 기적이 아니라 인류에 몸을 바쳐 봉사하겠다는 내적인 충동이었다.'
킹목사의 생애가 감동적인 것은 그가 이끌었던 투쟁 그 자체가 아니라 그가 추구했던 투쟁의 방식에 있다. 킹목사의 투쟁방식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바로 간디의 사상과 비폭력 저항으로 규정짓는다.
그것은 물리적 힘의 우위를 확보하려는 폭력적인 투쟁보다는, 증오가 아닌 사랑의 편에 서서 상대방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견지하는, 그럼으로써 억압의 부당함과 비도덕성에 대한 인간 내면의 각성과 수치심을 확산시키려는 저항방식이다. 킹목사가 말한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것보다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더 낫다는 믿음' 의 내부에는 끈질긴 악의 역사에 저항하면서도 끝까지 인간의 선의(善意) 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어떤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는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흑인민권운동의 최고지도자가 되었고, 서른다섯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한시도 교만에 빠지지 않고 언제나 불의에 대항하며 소수의 약자를 위해 기꺼이 나섰다. 그는 선한 다수의 침묵과 무관심이 인종차별과 전쟁, 가난과 같은 인류의 폐해를 유지시켜왔음을 직시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이들이 만류할 때에도 그는 홀로 베트남전에 반대했으며, 모든 이들이 운동의 성과에 자족해할 때, 운동은 지금부터라며 빈민운동을 새로이 계획했다. '약한 사람들, 의사 표현의 기회가 허용되지 않는 사람들, 우리나라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 우리나라가 '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인간이 기록한 문서상에는 형제로 언급된 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저는 이곳에 왔습니다.'
그는 어느 정도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으며, 사실 늘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왔다. 그는 마지막 설교에서 죽은 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평가되길 바라는지 토로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바람에 결코 인색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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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2.26
  • 저작시기2005.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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