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소련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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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태준 소련기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소련기행


첫 날
격리촌
「워로실로브」의 며칠
공로4일(空路四日)
모스크바
남방으로
아르메니야 공화국
꾸루지아 공화국
스딸린그라드
다시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세번째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돌아오는 길

본문내용

의 전당이였던 피로 물들은 혁명사상에 찬연히 빛나는 대공장들이 많고, 이 레닌그라드는,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적 노동형태를 창조한, 레닌의 꿈을 최초로 실현한, 인류사에 신 성격으로 나타난 노동자들의 도성(都城)으로 의의 깊은 곳이였다. 전 연방적으로 기계제조의 공업중심지이며 전 주(州)의 노동자 80퍼센트가 이 그들의 도성에 집중되여있다 한다. 신구 양시대의 사적과 문물이 함께 찬연한 도시다.
밤에는 「알렉산드」대극장을 구경하였다. 모스크바 대극장과 같은 양식의 성장(盛裝)이나 크기는 약간 그보다 손색이 있어 보였다. 연극은 「바다용사들을 위하야」라는 전시에서 취재한, 개인의 영예보다 인민의 영예를 고무시키는 신극인데 바다가 많이 나와야 할 이 희곡은 영화이였으면 더 효과를 내일 것 같었고, 가극과 달러 극장자체의 호화 때문에 무대가 작고 압박을 당하고 있었다. 나는 이 극장에서 생각나는 것이 있어 막간에는 자조 좌우를 둘러보았다. 학생 때 독일어독본에서 배운, 이 그전 이름으로 「페드로그라드」에서 생긴 일인데, 어떤 몹시 치운 겨울밤, 큰 극장에 문관들과 귀부인들이 그득 차 있었다. 홀- 안은 너무 더워 한 부인이 기색(氣塞)이 되었다. 옆에 있던 무관이 기사도를 발휘하여 이 부인에게 신선한 공기를 헌상하려 의자를 들어 유리창을 부시었다. 밖에서는 몹시 찬 공기가 들어와 뜨거운 공기로 찼던 대궁륭 천정에서는 갑자기 구름이 생기며 함박눈이 쏟아졌다는 이야기다. 그 집 속에서 눈 온 극장이 아마 이 알렉산드대극장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9월 26일. 미트라스박물관, 1766년에 「에까찌린」여왕이 개인취미에서 시작한 것으로 지금은 소련에서 제일 큰 박물관이다. 관장 오르벨리박사는 동양학의 태두로 아르메니야 학자이며 이분 말씀에 의하면, 혁명 후는 동궁(冬宮)까지 편입시키여 학문연구자료 수집에 주력한다 하여 이란문화와 조선문화가 상이점이 많은데 조선 것은 참고품이 없어 유감이라 하였고, 앞으로 수집예정이니 많이 도와주기를 바란다 하였다. 특히 이란미술과 중국과 관계가 깊은데 말을 들으면 중국과 조선이 미술에 있어 또 다르다 하니, 그것도 이곳 연구가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이라 했다. 총 장품(藏品) 160만 점, 대부분 동쪽 지방에 피난시켰다가 요즘 돌려왔기 때문에 아직 3분지1정도밖에 진열되지 않은 것이 유감이라 했다.
대부분 이태리와 불란서의 이름 있는 건축가들과 화가들의 손으로 된 궁실들은 실내구조와 장치 그것이 장시간 볼 만한 공예인데 우리는 먼저 화랑들에서 눈이 피곤해지고 말았다. 다빈치, 라파엘, 루-벤쓰, 렘브란드의 종교화들, 고대 희랍 출토와 미켈란젤로의 조각들, 그리고 관람에 가장 신중한 절차를 밟게 되는, (혹시 다칠 염려가 있어 손에 든 물건은 맡기고, 한 일행이라도 복잡치 않을 수효로 나누어 들어간다) 보물부는 구석진 아랫층인데 순금과 금강석의 공예품과 역대 제왕, 승정(僧正)들의 왕관, 면류관들이 그득 차있었다. 고대 순금 장신구에는 우리 경주 금관과 수법이 근사(近似)한 것이 많었다. 이 박물관을 제대로 자세히 보자면 4, 5일 걸려야 될 것 같었고, 진열이 끝나지 않어 조선문화와 상이점이 많다는 이란참고품을 보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전란중에 포탄 30, 폭탄 2발을 맞었으나 장품은 상한 것이 없고 파괴된 부분은 수축되여 칠을 다시하는 중에 있는 방이 많었다.
이날 오후에는 일행이 몇 파로 나뉘어졌다. 분과적으로 볼 필요에서 한 파는 공장방면, 한파는 보건방면, 한파는 대학인데 나는 대학파에 끼여 종합대학 내에 있는 동양학부를 구경갔다.
네바강 서쪽 강변으로 여러 채의 벽돌집이 동네를 이룬 학원, 경내에는 여학생들이 더 많이 보였다. 천정 나즉한 5층을 타박타박 걸어올라 이곳도 공습에 상한 데가 있어 지금도 내부는 목수일들이 그저 버려진 복도들을 지나 백수홍안(白首紅顔)에 근시안경을 쓴 동양학부 까재미뚜루이주임을 만날 수가 있었다. 공교롭게 조선어가 능한 교수는 출타하였고 일어가 통하는 두 여교수가 있었다. 그 여교수 중 한 분은 역시 이 대학동양학부 출신으로 책상 위에 「만엽집(萬葉集)」을 놓고 보고 있었다. 동양 각국의 어학, 문학, 사학, 경제학부 등이 있으며 연한 5년, 현재 학생 650명, 학사원내(學士院內) 연구생 25명, 어학부에는 희랍어, 이란어, 쭐크어, 인도어, 몽고어, 일본어, 중국어 등인데 앞으로 조선학부도 계획중에 있다 하였다. 노중사전(露中辭典), 노일사전(露日辭典), 노몽사전(露蒙辭典) 등이 편찬, 혹은 인쇄중에 있는 것이 있었고 「홀로다비치」라는 교수는 일제통치시대의 조선사를 집필중이라 했다.
도서실에는 조선관계의 서적도 꽤 많이 있었다. 1874년판의 노문(露文)의 조선어회화책이 있었고, 쿠-랑의 불문(佛文)의 조선문화사가 있었고, 조선고본들로 전주판 춘향전, 맹자언해 등, 그리고 소련 내에서 출판된 조선어역 사상서적 전부와 원동에 있던 조선인학교에서들 편찬한 조선역사, 조선어독본 등이 3,40종 있었는데 내용을 일별할 시간은 얻지 못하였다. 앞으로 조선문학, 어학의 출판물을 구하는 데 협력해달라 하였다.
9월 27일. 네바강 건너, 10월 당시 가진 데모와 직접전투에 이르기까지 전 노동자들의 책원지(策源地)였던 공장지구 「우볼스카야」구를 한바퀴 둘러 우리는 「미꼬냐」 과자공장에 안내되였다. 감향(甘香)의 체재(體裁) 고운 상품이 나오는 곳인 만큼 밝고 깨끗한 공장이며 위생복의 명랑한 여공들이였다. 1908년에 개인이 창설한 것이나 지금은 3천 명의 직공들이 주인이며 일일생산 백 톤이라 한다. 품종 150여 종, 실질적인 것은 포장도 되도록 간략히하며 실비 이하로 소비조합을 통해 인민대중에 분배되며 여기서 밑지는 것은 도시에서 소비되는 고급품에서 남는 이익으로 충당한다 하였다. 여기서도 기계론적으로 본다면 상품의 등급생산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설탕과 코코아는 국산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은 외국에서 수입한다 하며 이 설탕의 증산도 이번 5개년계획의 하나로서 1950년까지 설탕 연산(年産) 250만 톤의 목표가 달성되면 전전(戰前)에 비겨 25만 톤이 증가되는 것이라 했다. 우리는 이 공장에서 전신이 달어져가지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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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1.29
  • 저작시기2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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