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거칠게 탄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분이 구원하실 것을 믿고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하며 감사하고 찬송한다. 시편은 기쁠 대 흥얼거리고 노여울 때 울부짖으며 시름에 겨울 때 탄식하고 즐거울 때 덩실덩실 춤추게 하는 노래로서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어루만져 주고 영혼을 평안하게 해준다. 시편에는 이와 같이 다양한 감정과 느낌이 풍부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예배시간에 교독문으로 함께 읽고 찬송으로 부르기도 한다. 어떤 학자는 시편을 ‘기도의 학교’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영혼의 해부학’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다. 시편은 또한 ‘영원히 부르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수천 년 전의 노래이지만 지금도 영감을 주고 애송되며 앞으로도 읽히는 노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성서 이미지에서 굉장히 달랐다. 노래와 시처럼 추상적인 내용들도 인상 깊게 다가왔다. 책을 계속 읽다보니, 12장에서 복음의 다양한 색을 소개하고 있었다. 짧은 질문란에는 예수에 대한 기록이 신약성서 복음서의 어떤 부분은 비슷하게, 어떤 부분은 다르게 기록되어 있냐고 적혀있었다. 이제 성서의 겉모습에서 점점 심화되는 내용을 알아간다는 기분에 들뜨기도 한 것 같다. 예수의 삶과 말씀을 기록하고 보존한 유일한 책이 바로 신약성서 안의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이라고 한다. 일부의 일반 역사책과, 소위 외경이라고 불리는, 복음서라는 이름이 붙은 몇 종류의 책들에서 약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만 너무나 미미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복음서들은 예수의 삶과 교훈을 가능한 한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내용상 공통된 부분이 있어서 세 복음서를 대조하면서 함께 읽을 수 있다는 뜻으로 공관복음서라고 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다양한 측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운 일이다. 예수에 대한 복음서들의 기록들이 저자들의 관점과 상황 속에서 다양하게 기록된 것은, 복음서를 읽는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예수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유용한 자료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교훈이 그들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에 의미가 있다고 믿고, 이런 확고한 관점에서 그들은, 각자 다른 문화와 종교적 배경에 적합하도록 자유롭게 기술했다. 그들의 강조점과 세부사항은 다르지만 공통된 신념은 예수가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희망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과 관점을 가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에 접근하는 좋은 방법이다. 한 사람의 예수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고 이해하는 데에서 신앙의 다양함과 개방성이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이렇게 책을 다 읽고 나는 책을 덮은 뒤, 다시 한 번 책 제목을 읽어보았다. ‘새내기, 성서 속에서 길을 찾다.’ 성서에 막 발을 들여 놓은 새내기로서 나는 어땠을까. 그 속에서 길을 찾은 것일까? 생각해보니, 아직 나는 성서 속에서 길을 찾는 것까지는 못한 것 같다. 좀 무리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성서 속으로 가는 길 앞에 분명하게 서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기 전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과학과 진화론에만 입각해서 단순히 성서를 말도 안 된다며 비난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지금은 단순한 비난을 말끔히 접게 되었다. 과학보다는 그 안에 들어있는 의미와 진리를 먼저 읽고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종교로서 그 속으로 빠져들고 믿음이 생겨났다거나, 그러한 종교적인 의미는 부족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공부하는 전공과목에서도 보다 깊게 공부하면서 그 의미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정말 내가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성서 이미지에서 굉장히 달랐다. 노래와 시처럼 추상적인 내용들도 인상 깊게 다가왔다. 책을 계속 읽다보니, 12장에서 복음의 다양한 색을 소개하고 있었다. 짧은 질문란에는 예수에 대한 기록이 신약성서 복음서의 어떤 부분은 비슷하게, 어떤 부분은 다르게 기록되어 있냐고 적혀있었다. 이제 성서의 겉모습에서 점점 심화되는 내용을 알아간다는 기분에 들뜨기도 한 것 같다. 예수의 삶과 말씀을 기록하고 보존한 유일한 책이 바로 신약성서 안의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이라고 한다. 일부의 일반 역사책과, 소위 외경이라고 불리는, 복음서라는 이름이 붙은 몇 종류의 책들에서 약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만 너무나 미미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복음서들은 예수의 삶과 교훈을 가능한 한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내용상 공통된 부분이 있어서 세 복음서를 대조하면서 함께 읽을 수 있다는 뜻으로 공관복음서라고 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다양한 측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운 일이다. 예수에 대한 복음서들의 기록들이 저자들의 관점과 상황 속에서 다양하게 기록된 것은, 복음서를 읽는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예수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유용한 자료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교훈이 그들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에 의미가 있다고 믿고, 이런 확고한 관점에서 그들은, 각자 다른 문화와 종교적 배경에 적합하도록 자유롭게 기술했다. 그들의 강조점과 세부사항은 다르지만 공통된 신념은 예수가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희망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과 관점을 가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에 접근하는 좋은 방법이다. 한 사람의 예수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고 이해하는 데에서 신앙의 다양함과 개방성이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이렇게 책을 다 읽고 나는 책을 덮은 뒤, 다시 한 번 책 제목을 읽어보았다. ‘새내기, 성서 속에서 길을 찾다.’ 성서에 막 발을 들여 놓은 새내기로서 나는 어땠을까. 그 속에서 길을 찾은 것일까? 생각해보니, 아직 나는 성서 속에서 길을 찾는 것까지는 못한 것 같다. 좀 무리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성서 속으로 가는 길 앞에 분명하게 서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기 전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과학과 진화론에만 입각해서 단순히 성서를 말도 안 된다며 비난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지금은 단순한 비난을 말끔히 접게 되었다. 과학보다는 그 안에 들어있는 의미와 진리를 먼저 읽고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종교로서 그 속으로 빠져들고 믿음이 생겨났다거나, 그러한 종교적인 의미는 부족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공부하는 전공과목에서도 보다 깊게 공부하면서 그 의미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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