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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 최초 여성작가][한국근대미술 작가][한국근대미술 주요작품][서양근대 미술][서양근대공예 사조]한국근대 최초 여성작가, 한국근대미술 작가,주요작품, 서양근대 미술, 서양근대공예 사조 심층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한국근대 최초의 여성작가

Ⅲ. 한국근대미술의 작가와 주요작품
1. 조성진(1853-1920)
2. 김은호(1892-1972)
3. 변관식(1899-1976)
4. 이상범(1897-1972)
5. 허백련(1891-1977)
6. 이용우(1904-1952)
7. 박승무(1893-1980)
8. 노수현(1899-1978)

Ⅳ. 서양근대의 미술
1. 인상주의
2. 고전, 낭만 사실 주의 미술
1) 신고전주의(Neo-classicisme)
2) 낭만주의(Romanticism)
3) 자연주의
4) 상징주의(Symbolism)
5) 인상주의(Impressionism)
6)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
7) 후기인상주의(Post-Impressionism)
3. 근대조각과 건축

Ⅴ. 서양근대공예의 사조

참고문헌

본문내용

동안 생활의 필수품을 공급하던 수공업체제는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또한 공예가들은 기계화와 값싼 공장물건의 틈바구니에서 자율적으로 방향을 잡지 못하였고, 공예품은 미적으로나 질적으로 수준이 떨어지게 되었다.
기계에 의해 생산된 저질의 물건들이 시장에서 유통되자 영국의 윌리암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는 기계제품을 거부하고 새로운 공예부흥운동을 주창하게 되었다. 모리스는 미술공예운동을 통하여 중세의 고딕양식과 수공업체계를 부활시키고 이를 통하여 새로운 공예의 기풍을 세우고자 하였다.
모리스의 주장은 당시 예술가들이 오직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가 자신만을 위한 창작에만 몰두하고 대중의 수요품이 된 공장물건의 낮은 질과 조악한 형태에 관심이 없었던 사회풍조로부터 깨어날 것을 역설한 것이다. 지나친 장식으로 뒤덮인 공장제품과 모조 재료와 모조기술이 만연되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하여 예술가의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모리스는 진정한 예술은 창조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것으로 대중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중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모리스의 생각은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러스킨에 있어서 진실한 제작은 손에 의해 이루어지며 손에 의한 제작은 기쁨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모리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공예와 장인의 지위가 예술과 예술가의 지위와 동등하다는 의미에서 순수예술 제조인으로 자신들을 명명하였으며, 미술을 응용한 응용미술(Applied Art)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모리스는 실천적인 행동가로서 레드하우스(Redhouse)를 세워 자신이 디자인한 가구와 벽지 등의 생활물품으로 실내장식함으로서 자기 이상을 실현하기 시작하였다. 라파엘 전파화가들과의 교류로 그는 로제티(Dante Gabriel Rossetti)나 번 존스(Edward Burne-Jones)등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며 패턴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모리스는 벽지, 직물, 삽화 및 인쇄물 등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었으며 일상 생활용품제작에 예술가의 창조력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에는 보이지(Charles F. A. Voysey, 1857-1941), 맥머도(Auther H. Mackmurdo, 1851-1942), 애쉬비(C. R. Ashbee, 1863-1942)등이 참가했는데 그들은 1884년 예술제작자 길드(The Art Workers\' Guild)를 결성하였다. 그들은 모리스를 제외하고 모두 건축가들로서 이 모임을 통하여 토론과 교육을 강화하고 점차 광범위한 구성원으로 공예디자인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1887년에 애쉬비를 위주로 하여 장인들의 소집단인 수공예길드(The Guild of Handicraft)를 형성하여 금속이나 보석세공 가구 등의 제작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운동은 3단계로 작업이 나뉘어져 있었는데, 건축가이면서 예술가인 사람들, 즉 응용미술가들이 고안해낸 것을 제작길드에서 도자기 직물, 벽지, 카페트 등 실용품으로 만들어내고 이러한 물건은 상사들의 손에 넘겨져 일반에게 유통되었다. 1861년에 모리스는 모리스 마샬 포울크너 상회(The Firm of Morris, Marshall & Faulkner)를 설립하였는데 그들이 디자인하여 제작한 회화, 조각, 가구, 금속공예 등의 물품을 유통시키는데 활용하였다. 모리스가 만든 상사이외에도 그 당시 많은 유통업체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웨지우드상사(Wedgwood & Co), 민튼상사(Minton & Co), 리버티상사(Liberty & Co)등이 활발하게 활약하였다. 이 상사들은 응용미술가들과 직접적인 교류를 통하여 그들의 작업을 고무하고 미술공예운동이 예술과 산업을 통합하는 이상적인 운동이 되게 협력하였다. 이렇게 응용미술가와 제작길드, 상사가 삼위일체가 되어 실질적으로 공예를 발전시켰다.
모리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미술공예의 양식은 문양을 위주로 전개되었고 장식적인 경향이 강하였다. 모티브로는 자연형상을 주로 채택하고 있는데 식물과 새, 동물의 형태들은 대체로 단순하고 소박하며 유기체적인 형태였고 선적인 경향이 강했다. 초기고딕 양식의 맥을 잇는 중세풍격의 장식화적인 성격이 강하게 제작된 패턴들은 직물이나 벽지 이외에 공예품의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여러 대중을 위한 공예품을 만들려던 모리스의 이상은 그가 수공제품을 고집하면서 무너지게 되었다. 그가 공급한 공예품은 가격이 비싸서 그의 생각과는 모순되게 오히려 부유층인 소수의 소유물이 되었다. 기계를 타파하고 공업과 미술이 양립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 모리스의 생각은 시대를 거역하는 것이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공예에 기계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여러 사람이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는 사람들이 마지못하여 기계를 인정하는 자세로서 기계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기계는 인간의 힘든 노동을 실제로 덜어줄 수 있는 인간의 하인, 또는 노동의 구원자로서 생각하였다.
모리스가 제기한 공예의 재부흥운동과 양식은 계속하여 서구의 여러 나라를 자극하였다. 특히 19세기말에 발간되기 시작한 『스튜디오』(The Studio)나 『판』(Pan) 등의 예술과 공예관련의 잡지들을 통하여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은 널리 퍼지게 되었다. 특히 개항과 동시에 서구의 문물을 빠르게 흡수하던 일본에도 이운동이 알려지게 되었다. 응용미술이라 지칭되던 공예를 포함한 실내장식, 이들을 선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소책자나 팜플릿, 포스터, 책장정 등의 넓은 범위의 디자인 활동들은 일본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일본 동경미술학교의 도안과는 이러한 응용미술가를 육성하는 체계로 이루어졌다.
참고문헌
* 김희정(2002), 나혜석의 삶과 회화연구
* 김홍희(2000), 나혜석의 양면성
* 박래경(1984), 서양 근대회화의 수용과 의미, 정신문화연구
* 이문정(2004), 한국 근대 여성 미술가의 작품에 나타난 여성성 연구
* 오광수(1987), 한국 근대미술 사상 노트, 일지사
* 이구열(1992), 근대한국미술사의 연구, 미진사
* 윤범모(1993), 한국근대미술의 형성, 미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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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3.31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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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2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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