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연산군의 등극
Ⅱ. 연산군의 생애
Ⅲ. 연산군의 3대 사건
1. 무오사화 戊午士禍, 연산군4년(1498)
2. 갑자사화 甲子士禍, 연산군10년(1504)
3. 중종반정 中宗反正, 연산군12년(1506)
Ⅳ. 연산군의 언문 금지령
Ⅴ. 연산군의 묘
참고문헌
Ⅱ. 연산군의 생애
Ⅲ. 연산군의 3대 사건
1. 무오사화 戊午士禍, 연산군4년(1498)
2. 갑자사화 甲子士禍, 연산군10년(1504)
3. 중종반정 中宗反正, 연산군12년(1506)
Ⅳ. 연산군의 언문 금지령
Ⅴ. 연산군의 묘
참고문헌
본문내용
집에 보관되어 있는 언문구결책을 다 불사르되 한어를 번역한 언문책 따위는 금하지 말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렇게 익명서를 쓴 범인을 사출해 내기 위하여 언문을 아는 사람과 갑자사화에서 처형당한 가족 및 그 자제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조사 신문 사건이 벌어졌다. 같은 해 8월 27일에는 … 의술을 아는 여자들에게 불을 지지는 형벌을 가한다면 혹시 바른 대로 댈 수 있을 것이다. …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지를 찢어 죽이고 재산을 몰수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Ⅴ. 연산군의 묘
봉분과 묘비, 상석, 망주석이 있는 지면은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계단식으로 한 단 내려간 곳에 장명등 한 쌍과 문인석 두쌍이 양옆에 있었고, 가운데는 향로석이 있었다. 또 그 아래에는 경사가 져 있는데, 정의 공주 부부의 묘의 경우에는 이 부분에 화려한 계단이 있었던 것과 비교하여 조금 초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사를 내려오면 연산군의 후궁인 조씨의 무덤이 있다. 좌측의 묘비는 연산군의 묘비 앞면으로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라고 새겨져 있고, 묘비 뒤에는 정덕8년 2월 22일 장(正德 八年 二月 二十二日 葬)이라고 새겨져 있다. 봉분과 비슷한 높이의 대리석 묘비는 윗부분에 꽃무늬가 새겨져있다. 그 아래는 연산군비인 거창군부인 신씨의 무덤과 그 묘비이다. 그 마모된 정도가 심하여 전면에 새겨진 글은 거의 알아보기 힘들고 후면에만 가정 16년 6월 26일 장(嘉靖 十六年 六月 二十六日 葬)이라고 새겨진 것을 겨우 알아 볼 수 있을 뿐이다. 연산군의 무덤 주변에는 두 쌍의 문인석이 연산군을 보필하며 서 있다. 홀을 든 모습으로 서 있는 이 문인석들은 아주 수수한 차림에 석마도 대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생전에 경연과 사관원, 홍문관을 없애버릴 정도로 문신들을 싫어했다는 연산군이 죽어 땅에 묻힌 후에 문신들에게 둘러싸인 기분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에서나마 자신을 보필하고 있는 네 문신의 직간을 들으며 자신의 광기를 후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박봉규, 연산군과 박문열전, 황제, 1995
박연희, 황제 연산군, 명문당, 1994
신동준, 연산군을 위한 변명, 지식산업사, 2003
연산군 일기, 민족문화추진회, 1974
이준범, 연산군, 민중서원, 1994
이덕일, 사회로 보는 조선역사, 석필, 1998
이덕일·이근희,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1-우리역사를 바꿀 34가지 오해와 진실, 김영사
이렇게 익명서를 쓴 범인을 사출해 내기 위하여 언문을 아는 사람과 갑자사화에서 처형당한 가족 및 그 자제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조사 신문 사건이 벌어졌다. 같은 해 8월 27일에는 … 의술을 아는 여자들에게 불을 지지는 형벌을 가한다면 혹시 바른 대로 댈 수 있을 것이다. …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지를 찢어 죽이고 재산을 몰수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Ⅴ. 연산군의 묘
봉분과 묘비, 상석, 망주석이 있는 지면은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계단식으로 한 단 내려간 곳에 장명등 한 쌍과 문인석 두쌍이 양옆에 있었고, 가운데는 향로석이 있었다. 또 그 아래에는 경사가 져 있는데, 정의 공주 부부의 묘의 경우에는 이 부분에 화려한 계단이 있었던 것과 비교하여 조금 초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사를 내려오면 연산군의 후궁인 조씨의 무덤이 있다. 좌측의 묘비는 연산군의 묘비 앞면으로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라고 새겨져 있고, 묘비 뒤에는 정덕8년 2월 22일 장(正德 八年 二月 二十二日 葬)이라고 새겨져 있다. 봉분과 비슷한 높이의 대리석 묘비는 윗부분에 꽃무늬가 새겨져있다. 그 아래는 연산군비인 거창군부인 신씨의 무덤과 그 묘비이다. 그 마모된 정도가 심하여 전면에 새겨진 글은 거의 알아보기 힘들고 후면에만 가정 16년 6월 26일 장(嘉靖 十六年 六月 二十六日 葬)이라고 새겨진 것을 겨우 알아 볼 수 있을 뿐이다. 연산군의 무덤 주변에는 두 쌍의 문인석이 연산군을 보필하며 서 있다. 홀을 든 모습으로 서 있는 이 문인석들은 아주 수수한 차림에 석마도 대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생전에 경연과 사관원, 홍문관을 없애버릴 정도로 문신들을 싫어했다는 연산군이 죽어 땅에 묻힌 후에 문신들에게 둘러싸인 기분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에서나마 자신을 보필하고 있는 네 문신의 직간을 들으며 자신의 광기를 후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박봉규, 연산군과 박문열전, 황제, 1995
박연희, 황제 연산군, 명문당, 1994
신동준, 연산군을 위한 변명, 지식산업사, 2003
연산군 일기, 민족문화추진회, 1974
이준범, 연산군, 민중서원, 1994
이덕일, 사회로 보는 조선역사, 석필, 1998
이덕일·이근희,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1-우리역사를 바꿀 34가지 오해와 진실,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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