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실력양성론은 무장투쟁론과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 실력양성론자들이 친일을 하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는가?
. 독립운동으로서 실력양성론의 의미는 무엇인가?
. 실력양성론자들이 친일을 하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는가?
. 독립운동으로서 실력양성론의 의미는 무엇인가?
본문내용
지방까지가 옛날 우리의 땅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고구려와 같은 강인한 역사를 중시했고, 그 역사 속에서 힘과 투쟁으로 국력을 키웠던 우리 민족의 힘을 발견하고자 했다.
5. 사회진화론
19 세기말에서 20 세기초에 널리 유행했던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생물진화론에 기초한 사회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약자가 줄어들고 그들의 문화는 영향력을 상실하는 데 반해, 강자는 강력해지고 약자에 대한 문화적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고 보았다. 사회진화론자들은 인간사회의 생활이란 생존경쟁이라고 생각하고, '적자생존'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진화론자들은 인구변동에 작용하는 자연선택과정을 통해 우수한 경쟁자들이 살아남고 인구의 질이 계속 향상된다고 믿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회 역시 이런 방식으로 진화하는 유기체들로 간주했다.
5.1. 한국에서의 수용과정
사회진화론은 조선에서도 1880년대에 이미 그 영향력을 드러내어 190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일본인들의 번역서·저서 등을 통해 소개되었으나, 1900년대에는 량치차오의 ‘음빙실문집’ 등 중국인의 글을 통해 유입되었다. 그 후 대한자강회·대한협회·교남학회 등 각 학회 잡지나 저서·신문 등에 사회진화론에 관한 글들이 자주 등장했다. 이러한 사회진화론적 인식은 유길준· 윤치호· 박영효 등 한말 문명개화론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특히 유길준은 ‘서유견문’에서 사회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사회의 미개· 반개화· 개화라는 3단계 발전론으로 압축되는 문명관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 약육강식하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을 목격하고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사회진화론을 하나의 정치사상으로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전통적 유교논리가 사회를 발전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화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이상사회로의 복귀를 추구하는 것인 데 반해, 사회진화론은 기본적으로 사회가 진보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유교의 퇴화적 현실인식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개혁이념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 당시 지식인들은 우승열패· 적자생존· 생존경쟁이 자연계나 인간사회를 움직이는 기본원리라고 규정했고, 경쟁이 사회진보의 원동력이라고 하여 당시를 ‘경쟁시대’로 인식했다.
사회진화론의 수용과 전파는 당시 개화사상과 독립협회의 활동 및 계몽운동의 현실인식체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부국강병· 국민교육· 계몽을 강조하는 개화파 문명개화론의 이론적 지주였는데, 구체적으로 입헌군주제와 사회(국가)유기체론과도 결합하여 나타났다. 사회진화론은 기본적으로는 개인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나, 사회유기체론과 결합하면서 개인이 전체에 봉사하는 관념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래서 항상 강자의 입장을 합리화시켜주는 이론으로 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지배권을 인정하고, 국가의 발생·변천을 약육강식의 논리로 설명하면서 국가의 강화를 강조하는 국권론적 입장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민중을 교화의 객체로 보고 민중에 대한 교육을 중요시하며, 이를 기반으로 한 자강개혁을 지향했다. 아울러 서로 병탄하는 현실에서 국가민족을 보전하는 방법은 국민의 애국뿐이라고 하여 애국심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은 제국주의 침략을 받고 있던 현실을 약자는 강자의 침탈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인식, 제국주의 침략을 오히려 문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회로 보기도 했다.
6. 참고문헌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서중석, 역사비평사,2001
현대한국교육사상사, 김선양, 한국학술정보, 2004
한국교육사(근현대편), 한국교육연구서, 도서출판 풀빛, 2001
KBS저널 : 2001년 2월 역사스페셜-단재 신채호 연출/유경탁
논문 : 단재 신채호의 삶과 교육심리학적 의미
5. 사회진화론
19 세기말에서 20 세기초에 널리 유행했던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생물진화론에 기초한 사회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약자가 줄어들고 그들의 문화는 영향력을 상실하는 데 반해, 강자는 강력해지고 약자에 대한 문화적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고 보았다. 사회진화론자들은 인간사회의 생활이란 생존경쟁이라고 생각하고, '적자생존'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진화론자들은 인구변동에 작용하는 자연선택과정을 통해 우수한 경쟁자들이 살아남고 인구의 질이 계속 향상된다고 믿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회 역시 이런 방식으로 진화하는 유기체들로 간주했다.
5.1. 한국에서의 수용과정
사회진화론은 조선에서도 1880년대에 이미 그 영향력을 드러내어 190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일본인들의 번역서·저서 등을 통해 소개되었으나, 1900년대에는 량치차오의 ‘음빙실문집’ 등 중국인의 글을 통해 유입되었다. 그 후 대한자강회·대한협회·교남학회 등 각 학회 잡지나 저서·신문 등에 사회진화론에 관한 글들이 자주 등장했다. 이러한 사회진화론적 인식은 유길준· 윤치호· 박영효 등 한말 문명개화론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특히 유길준은 ‘서유견문’에서 사회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사회의 미개· 반개화· 개화라는 3단계 발전론으로 압축되는 문명관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 약육강식하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을 목격하고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사회진화론을 하나의 정치사상으로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전통적 유교논리가 사회를 발전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화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이상사회로의 복귀를 추구하는 것인 데 반해, 사회진화론은 기본적으로 사회가 진보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유교의 퇴화적 현실인식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개혁이념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 당시 지식인들은 우승열패· 적자생존· 생존경쟁이 자연계나 인간사회를 움직이는 기본원리라고 규정했고, 경쟁이 사회진보의 원동력이라고 하여 당시를 ‘경쟁시대’로 인식했다.
사회진화론의 수용과 전파는 당시 개화사상과 독립협회의 활동 및 계몽운동의 현실인식체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부국강병· 국민교육· 계몽을 강조하는 개화파 문명개화론의 이론적 지주였는데, 구체적으로 입헌군주제와 사회(국가)유기체론과도 결합하여 나타났다. 사회진화론은 기본적으로는 개인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나, 사회유기체론과 결합하면서 개인이 전체에 봉사하는 관념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래서 항상 강자의 입장을 합리화시켜주는 이론으로 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지배권을 인정하고, 국가의 발생·변천을 약육강식의 논리로 설명하면서 국가의 강화를 강조하는 국권론적 입장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민중을 교화의 객체로 보고 민중에 대한 교육을 중요시하며, 이를 기반으로 한 자강개혁을 지향했다. 아울러 서로 병탄하는 현실에서 국가민족을 보전하는 방법은 국민의 애국뿐이라고 하여 애국심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은 제국주의 침략을 받고 있던 현실을 약자는 강자의 침탈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인식, 제국주의 침략을 오히려 문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회로 보기도 했다.
6. 참고문헌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서중석, 역사비평사,2001
현대한국교육사상사, 김선양, 한국학술정보, 2004
한국교육사(근현대편), 한국교육연구서, 도서출판 풀빛, 2001
KBS저널 : 2001년 2월 역사스페셜-단재 신채호 연출/유경탁
논문 : 단재 신채호의 삶과 교육심리학적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