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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쿠바 문화][쿠바의 문화][쿠바 정권][쿠바와 미국의 관계][쿠바 발전 과제]쿠바의 지형, 쿠바의 자연환경, 쿠바의 역사, 쿠바의 정권, 쿠바의 사회보장제도, 쿠바와 미국의 관계, 향후 쿠바의 발전 과제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쿠바의 지형과 자연환경
1. 지형
2. 자연환경

Ⅲ. 쿠바의 역사

Ⅳ. 쿠바의 정권

Ⅴ. 쿠바의 사회보장제도

Ⅵ. 쿠바와 미국의 관계
1. 미국-쿠바 관계의 전개
2. 쿠바 자유․민주연대 법
3. 미국의 대 쿠바 개입전망

Ⅶ. 향후 쿠바의 발전 과제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 미국에 있는 쿠바 망명집단의 경제적, 정치적 힘을 고려하면 이 점은 더욱 명백하다. (이들이 쿠바에 송금하는 액수는 연 1-5억불 정도다).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쿠바내의 시민사회의 씨앗을 기반으로 한 반체제세력도 일단 자유선거가 허용되면 이러한 조건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카스트로는 자유선거에서도 한번쯤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거승패의 결과를 떠나서 이러한 정치과정 자체가 카스트로가 30년동안 고수해온 사회주의 정치체제의 포기와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런 자기모순적인 대개혁이 카스트로 생존시에 추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카스트로정권은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가 자유선거를 미국이 조정하게 방치한 것과 소련이 페레스트로아카전에 글래노스트를 먼저 시도한 것이 치명적인 실수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러한 자유선거를 통해 카스트로정권을 대체할만한 세력은 보수적인 쿠바망명세력인데 이들에 대한 쿠바인들의 거부감이 의외로 강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쿠바인구 천칠십만의 58%가 흑인계라는 사실과 이들의 쿠바정권에 대한 지지가 강하다는 경향을 고려할 때 미국으로 탈출하거나 이민을 간 쿠바인들의 95%가 백인계이며 70년대 이후의 탈출자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독재자 바띠스따 지지자였으며 쿠바사회의 최상층부에 속해있던 엘리트집단이라는 것은 대체세력으로서의 치명적 약점이다. 카스트로 정권이 자유주의적 정치개혁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경제적 위기가 쿠바경제의 완전마비를 초래할 경우에서다. 그러나 이미 쿠바경제는 최악의 사태를 경험한 것으로 보이고 약간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은 4억불을 넘어섰고 러시아와는 250만톤의 석유와 100만톤의 설탕을 현물교환하기로 합의했다. 관광수입은 9억불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매년 30%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쿠바해안에서 100만톤의 석유를 추출한 것은 쿠바경제에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 브라질, 프랑스 등의 석유회사에 의한 새로운 석유채굴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액도 5억불을 넘어섰다. 구리의 생산량과 국제가격도 증가하고 있고 93년에 최저 생산량을 기록한 설탕도 국제시장가격의 꾸준한 증가로 호조를 보이고 있다. 쿠바경제의 붕괴위험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에서도 붕괴되지 않고 버텨온 카스트로정권이 정권붕괴를 초래할 지도 모를 자유선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현재 미국이 부시행정부때부터 강화한 봉쇄 정책과 군사적 압력은 오히려 쿠바인들의 전통적인 반미 민족주의적 감정을 부추기고 경제적 위기를 극복해나가는데 필요한 긴축, 인내, 희생 등을 감수하는데 좋은 동기를 제공하고 정권과 인민간의 일체감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의 개입 및 압박은 쿠바정권의 인권탄압과 일당중심의 강력한 권위주의 정치제제를 정당화시켜 줄 구실을 주는 측면이 있다. 아직도 쿠바의 구안따나모에 남아있는 미군기지에서의 전폭기 연습작전 등을 통한 미국의 군사적 압력과 지금까지 밝혀진 각종 교란작전 및 내정개입 등은 당연히 쿠바정권에게 위협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시민적 자유권을 제한하는 조건을 조성한다. 그러므로 경제적 위기가 계속된다 해도 미국의 봉쇄정책이 계속되는 한 자유주의적 정치개혁의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본다. 외부의 압력이 거세질수록 카스트로정권은 더욱 방어적이기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엘리사도 산체스 같은 쿠바내의 반체제인사도 미국이 금수조치를 해제하고 카스트로의 권력장악을 일단 현실로 인정해야만 평화로운 정치개혁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미국신문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점을 종합해서 볼 때 쿠바는 일당중심 체제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사회주의틀안에서의 비판적 의견과 활동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공간을 부여하면서 베트남식, 중국식의 시장경제 개혁을 점진적으로 해나갈 것이다.
Ⅷ. 결론
1959년 카스트로의 반란이 성공하고 나서는 공식적이고 무분별한 인종차별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인종 차별, 즉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예를 들어 MS Fragua씨는 얼마 전 한 백인과 결혼하여 백인 거주 지역에 이사와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친구들이 놀러오거나 일이 있어 그녀와 만날 때는 그녀의 이웃들이 반드시 그들의 신분과 용건을 알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의 사건으로 우리는 쿠바내에서, 50년대 초반과 같이 경찰에 의한 물리력의 행사에 의한 공식적인 인종차별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백인 주민들에 의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닌 것이다. 무려 300년 동안 많은 수의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의 신분으로 쿠바로 끌려왔으며, 비록 1886년 쿠바의 노예제도가 폐지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쿠바에는 흑인과 백인이 분리된 사회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흑인들에게는 낮은 수준의 교육과 그에 따른 낮은 생활수준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초기의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흑인들의 운동들은 정부에 의해 철저히 금지되었고, 1912년에는 약 3000명의 흑인이 사살되기도 했다. 1959년 카스트로는 인종 차별에 대한 많은 국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먼저 교육을 개방하고 흑인들도 대학이상의 고등교육을 이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주거와 직업에 대해서도 차별을 폐지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 흑인 공무원은 현재 많은 수의 흑인이 엔지니어나 박사, 경제학자와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문헌
◈ 금상겸, 미국의 대중남미 간섭에 관한 연구,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1982
◈ 그레고리 토지안 저, 홍민표 역, 카스트로의 쿠바, 황매, 2005
◈ 곽재성, 1990년대 이후 쿠바의 개혁과 대외개방(라틴아메리카연구 Vol,15 No,2),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2002
◈ 노계룡, 혁명에 관한 비교연구: 멕시코 혁명과 쿠바혁명을 중심으로, 국방대학원, 1983
◈ 박후기, 쿠바 (혁명과 예술이 숨쉬는 아름다운 섬나라), 꿈소담이, 2007
◈ 바니아·밤비라 저, 김형식 역, 쿠바혁명의 재해석, 서울: 백산서당, 1985
◈ 쿠바편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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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9.09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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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5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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