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re) 노력해야 한다. 성경적인 증거들은 특정한 시간과 특정한 장소에서 나왔기에 역사적인 증거들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인간의 역사성 속에 들어온 하나님의 실재와 활동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신학적인 증거들이 된다. 따라서 성경 신학자의 임무는 성경을 의미있게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 신학자는 역사적이고 언어적인 연구의 도구들을 주의깊에 사용하여, 성경의 증거가 원래 의미했던 것으로 ‘돌아가’ 그것을 이해하고 묘사해야 한다. 나아가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독특한 역사적 상황 속에 있는 현대인을 위해 성경적 증거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설명해 주어야 한다.
2. 만약 성경신학이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학문 분야라면 그 방법론도 처음부터 역사적이고 신학적이어야 한다.
구약신학은 건전한 원리와 절차에 근거한 주석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주석도 구약신학을 필요로 한다. 구약신학 없는 주석적 해석 작업은 개개의 본문을 전체로부터 분리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건전한 원리와 절차에 근거한 구약신학이라는 측면에서 역사비평적 방법을 보자. 성경 신학자가 역사비평적 연구가 파헤쳐낼 수도 없는 역사적 경험의 깊은 층들을 포착해 내려면 그는 비평적으로 확증된 최소치의 통로를 사용해서 통과해 갈 수가 없는 이유는, 역사를 자신이 설정한 전제에 제한하여 일하기 때문이다. 문예부흥 이후에 나온 역사비평적 방법은 모든 사건들을 원인과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보기 때문에 ‘초월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적인 사건들은 다른 역사적 경험들에 대한 유추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과학적이고 객관성을 자랑하는 이 방법은 결국 자체의 교조적인 전제와 역사의 성격에 대한 철학적 가정에 결국 얽매여 버렸다. “역사가들은 자신이 아무런 전제없이,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연구한다고 주장하며 일을 시작하지만 남몰래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세계관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전제들의 묶음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C. E. Braaten) 깨어지지 않는 인과의 연속에 근거한 역사관을 가지고 일하는 성경신학은 성경적인 역사관이나 계시관이나 성경이 주장하는 진리를 정당하게 다룰 수 없다. 폰 라드는 “역사비평적 방법을 일관성있게 적용하게 되면 구약성경이 주장하는 진리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점을 인식했다. 우리는 역사비평학이 '다룰 수 없는 초월적이고 신적인 차원'이 성경 역사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만약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충분한 역사적 원인들로만 설명이 되어야 한다고 정의한다면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할 여지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Ladd) 성경 본문은 역사적 실재 속에 초월적인 차원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 본문을 올바로 다루기 위해 하나님의 실재와 역사 속에 개입을 인정해야 하며, 이 기초 위에 우리는 시간과 문화의 간격에 다리를 놓아 성경 저자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으며, 본문이 원래 의미했던 것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본문이 현대 세계와 역사적인 상황 속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보다 적절하고 종합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론적인 과정은 신학을 세우기 위해 역사를 뛰어넘어 가려고 하지 않는다.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방법으로 일하는 성경신학자는 인간의 객관성조차 상대적임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서 있는 전통이나 믿음의 공동체에 근거해서 자기 자료들을 사람의 구미에 맞게 다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만약 역사적-신학적 해석이 모든 역사적 경험의 깊은 층들을 파헤치고 본문의 온전한 뜻과 그 안에 담긴 실재 속에 파고들려면 믿음의 시중을 들어주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해석을 통해서 신간과 사건의 주님을 더욱 잘 알고, 심판과 구원의 행동과 말씀으로 인간 역사에서 실제로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자기계기를 깨닫게 되며, 그 계시를 드러내어 주는 여러 진술들과 증거들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처음부터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방법을 택해야 한다.
3. 구약신학을 하는 성경신학자는 구약성경의 신학을 찾는 작업을 하려고 하므로 미리 자신의 주제를 제시해야 한다.
그 주제는 구약에서 취한 자료들만을 다루어야 한다. 구약은 그에게 영감된 성경의 일부로서 기독교 교회를 통해 주어졌다. 그 어떤 체계적인 뼈대나 사고 구조나 혹은 확대된 추론을 성경의 자료들 속에 억지로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구약의 중심 주체이시므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시하시는 사건이 중심적인 성격을 띠는 것과 그 계시의 형태를 하나의 체계 속에 집어넣지 않고도 하나님을 구약의 중심으로 설정할 수 있다.
4. 구약 책들이나 문서집들의 신학을 제시할 때, 정경의 순서를 따를 필요가 없다.
히브리 정경이든 70인역이든 편집 순서는 신학적인 이유를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5. 구약신학은 다양한 책들이나 문서집들의 신학을 알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구약에 나타난 중심주제들을 모으고 정리하여 제시하려고 한다.
구약 자체가 그 주제와 모티프와 개념들을 형성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우리는 다양한 접근을 통하여 구약 증언에 나타난 수평적인(즉 역사적인) 관점을 올바로 제시할 수 있다.
6. 다양한 신학으로 먼저 답해야 한다.
구약은 그 신학으로 질문을 받는 것처럼 다양한 신학들, 즉 각 권이니 한 묶음의 책들(오경, 역사서, 선지서, 시가서 등)이 갖고 있는 다양한 신학으로 먼저 대답해 주며, 나아가 다양한 수평적 주제들이 지닌 신학으로 대답해 준다.
7. 성경 신학자들은 구약신학이 ‘히브리 성경신학’ 이상임을 알고 있다.
‘구약성경신학’이란 이름은 신약성경을 포함한 성경의 보다 더 큰 맥락을 내포해 준다. 온전한 구약신학은 그것이 신약이나 혹은 신약신학과 기본적인 관계를 갖고 있음을 확실히 드러내 주어야 한다. 기독교 신학자에게 있어서 구약이란 성경의 다른 부분, 즉 신약성경과의 관계에 근거해서 성경이란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이리하여 두 성경은 서로를 조명해 주며 그들의 신학들을 더욱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2. 만약 성경신학이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학문 분야라면 그 방법론도 처음부터 역사적이고 신학적이어야 한다.
구약신학은 건전한 원리와 절차에 근거한 주석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주석도 구약신학을 필요로 한다. 구약신학 없는 주석적 해석 작업은 개개의 본문을 전체로부터 분리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건전한 원리와 절차에 근거한 구약신학이라는 측면에서 역사비평적 방법을 보자. 성경 신학자가 역사비평적 연구가 파헤쳐낼 수도 없는 역사적 경험의 깊은 층들을 포착해 내려면 그는 비평적으로 확증된 최소치의 통로를 사용해서 통과해 갈 수가 없는 이유는, 역사를 자신이 설정한 전제에 제한하여 일하기 때문이다. 문예부흥 이후에 나온 역사비평적 방법은 모든 사건들을 원인과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보기 때문에 ‘초월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적인 사건들은 다른 역사적 경험들에 대한 유추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과학적이고 객관성을 자랑하는 이 방법은 결국 자체의 교조적인 전제와 역사의 성격에 대한 철학적 가정에 결국 얽매여 버렸다. “역사가들은 자신이 아무런 전제없이,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연구한다고 주장하며 일을 시작하지만 남몰래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세계관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전제들의 묶음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C. E. Braaten) 깨어지지 않는 인과의 연속에 근거한 역사관을 가지고 일하는 성경신학은 성경적인 역사관이나 계시관이나 성경이 주장하는 진리를 정당하게 다룰 수 없다. 폰 라드는 “역사비평적 방법을 일관성있게 적용하게 되면 구약성경이 주장하는 진리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점을 인식했다. 우리는 역사비평학이 '다룰 수 없는 초월적이고 신적인 차원'이 성경 역사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만약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충분한 역사적 원인들로만 설명이 되어야 한다고 정의한다면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할 여지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Ladd) 성경 본문은 역사적 실재 속에 초월적인 차원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 본문을 올바로 다루기 위해 하나님의 실재와 역사 속에 개입을 인정해야 하며, 이 기초 위에 우리는 시간과 문화의 간격에 다리를 놓아 성경 저자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으며, 본문이 원래 의미했던 것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본문이 현대 세계와 역사적인 상황 속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보다 적절하고 종합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론적인 과정은 신학을 세우기 위해 역사를 뛰어넘어 가려고 하지 않는다.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방법으로 일하는 성경신학자는 인간의 객관성조차 상대적임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서 있는 전통이나 믿음의 공동체에 근거해서 자기 자료들을 사람의 구미에 맞게 다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만약 역사적-신학적 해석이 모든 역사적 경험의 깊은 층들을 파헤치고 본문의 온전한 뜻과 그 안에 담긴 실재 속에 파고들려면 믿음의 시중을 들어주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해석을 통해서 신간과 사건의 주님을 더욱 잘 알고, 심판과 구원의 행동과 말씀으로 인간 역사에서 실제로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자기계기를 깨닫게 되며, 그 계시를 드러내어 주는 여러 진술들과 증거들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처음부터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방법을 택해야 한다.
3. 구약신학을 하는 성경신학자는 구약성경의 신학을 찾는 작업을 하려고 하므로 미리 자신의 주제를 제시해야 한다.
그 주제는 구약에서 취한 자료들만을 다루어야 한다. 구약은 그에게 영감된 성경의 일부로서 기독교 교회를 통해 주어졌다. 그 어떤 체계적인 뼈대나 사고 구조나 혹은 확대된 추론을 성경의 자료들 속에 억지로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구약의 중심 주체이시므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시하시는 사건이 중심적인 성격을 띠는 것과 그 계시의 형태를 하나의 체계 속에 집어넣지 않고도 하나님을 구약의 중심으로 설정할 수 있다.
4. 구약 책들이나 문서집들의 신학을 제시할 때, 정경의 순서를 따를 필요가 없다.
히브리 정경이든 70인역이든 편집 순서는 신학적인 이유를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5. 구약신학은 다양한 책들이나 문서집들의 신학을 알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구약에 나타난 중심주제들을 모으고 정리하여 제시하려고 한다.
구약 자체가 그 주제와 모티프와 개념들을 형성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우리는 다양한 접근을 통하여 구약 증언에 나타난 수평적인(즉 역사적인) 관점을 올바로 제시할 수 있다.
6. 다양한 신학으로 먼저 답해야 한다.
구약은 그 신학으로 질문을 받는 것처럼 다양한 신학들, 즉 각 권이니 한 묶음의 책들(오경, 역사서, 선지서, 시가서 등)이 갖고 있는 다양한 신학으로 먼저 대답해 주며, 나아가 다양한 수평적 주제들이 지닌 신학으로 대답해 준다.
7. 성경 신학자들은 구약신학이 ‘히브리 성경신학’ 이상임을 알고 있다.
‘구약성경신학’이란 이름은 신약성경을 포함한 성경의 보다 더 큰 맥락을 내포해 준다. 온전한 구약신학은 그것이 신약이나 혹은 신약신학과 기본적인 관계를 갖고 있음을 확실히 드러내 주어야 한다. 기독교 신학자에게 있어서 구약이란 성경의 다른 부분, 즉 신약성경과의 관계에 근거해서 성경이란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이리하여 두 성경은 서로를 조명해 주며 그들의 신학들을 더욱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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