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스파르타의 역사
1. 서언
1) 지형과 종족
2. 초기 스파르타의 역사
1) 도리아인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진입
2) 사회와 경제
3) 헤일로타이
4) 페리오이코이
5) 리쿠르고스
6) 레트라
7) 메세니아 전쟁
8) 초기 스파르타 사회의 분쟁
9) 에포르
10) 킬론
3. 기원전 5~4세기 스파르타 사회
1) 스파르타 내부 분쟁과 헤일로타이
2) 사회적 분화
3)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4) 에피타데우스 법과 키나돈의 음모
5) 메세니아의 상실
4. 헬레니즘 시대의 스파르타
1) 계승자와 그 후손들 전쟁기의 스파르타
2) 기원전 3세기 중엽 스파르타의 상황
3) 아기스 왕
4) 클레오메네스
5) 리쿠르고스, 케일론, 마카니다스
6) 나비스
7) 아카이아 동맹과 스파르타
1. 서언
1) 지형과 종족
2. 초기 스파르타의 역사
1) 도리아인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진입
2) 사회와 경제
3) 헤일로타이
4) 페리오이코이
5) 리쿠르고스
6) 레트라
7) 메세니아 전쟁
8) 초기 스파르타 사회의 분쟁
9) 에포르
10) 킬론
3. 기원전 5~4세기 스파르타 사회
1) 스파르타 내부 분쟁과 헤일로타이
2) 사회적 분화
3)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4) 에피타데우스 법과 키나돈의 음모
5) 메세니아의 상실
4. 헬레니즘 시대의 스파르타
1) 계승자와 그 후손들 전쟁기의 스파르타
2) 기원전 3세기 중엽 스파르타의 상황
3) 아기스 왕
4) 클레오메네스
5) 리쿠르고스, 케일론, 마카니다스
6) 나비스
7) 아카이아 동맹과 스파르타
본문내용
니아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했으나 다른 스파르타인들의 지지를 못 받음
☞ 마카니다스
- 리쿠르고스의 어린 아들 펠롭스가 왕이 되자 실권을 장악한 인물
- 나비스의 선구자로 안으로 ‘노예해방’을 지지하였고 밖으로는 아카이아 동맹에 대항함
6) 나비스
☞ 나비스 왕의 등장
- 군사력을 강화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려 함
- 노예를 해방시키고 토지를 빼앗아 빈민이 아니라 이방인 출신도 포함된 용병들에게 지급 → 사회적 목적의 개혁이라기보다는 만티네이아 전후 군사력 강화의 노력임
- 개혁정책은 아키이아 동맹, 특히 메갈로폴리스에 대항하는 데 이용되었음
☞ 로마와의 전쟁과 스파르타의 쇠퇴
- 로마는 제 2차 마케도니아 전쟁이 끝난 후 그리스 내에 간섭함
- 로마 군대가 그리스에 주둔하며 대립하자 마침내 스파르타와 로마간에 전투가 벌어짐
→ 스파르타는 패하였고 스파르타 시내가 유린당함. 굴욕적인 평화협정
- 스파르타의 패배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사회 개혁의 종말을 뜻함
→ 페리오이코 지역을 상실. 이는 스파르타의 전통적 경제체제나 독자적 사회체제의 붕괴를 의미.
- 기원전 192년 아카이아의 필로포이멘이 스파르타에 진주함으로써 스파르타는 독립국가로서의 마지 막 종지부를 찍게 됨
7) 아카이아 동맹과 스파르타
☞ 아카이아 동맹과 스파르타의 대립
- 아카이아는 메세니아와 엘리스를 아카이아 동맹에 편입함으로써 전 펠로폰네소스의 통합을 이룸
- 하지만 스파르타가 동맹을 탈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스파르타와 아카이아 동맹의 관계 악화
- 스파르타는 동맹의 탈퇴를 결정하였고, 이에 아카이아는 스파르타에 침입하여 아카이아 반대파를 숙 청하고 리쿠르고스 제도를 폐기하고 그 대신 아카이아 식의 행정부를 도입함
- 하지만 스파르타에서는 계속해서 반아카이아 봉기가 일어났고, 결국 로마가 개입하고 난 이후 스파 르타 주변에 성벽이 재건되고 리쿠르고스의 ‘전통적 체제’가 부활 되었다
→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호하나 스파르타가 독립국이 아니라 아카이아 동맹의 일원이 된 것임
- 아키이아와 스파르타의 계속된 대립으로 기원전 148년 마침내 아카이아 동맹이 스파르타를 침공하였고 스파르타는 패하여 아카이아와 평화를 수립하게 됨
☞ 아카이아와 로마와의 갈등
- 로마는 독자적 노선을 표방하고 로마의 간섭을 거부하는 아카이아 동맹을 해체하려 함
→ 아카이아 동맹에 가입한 모든 도시의 동맹 탈퇴를 촉구
- 마침내 아카이아는 로마와 전쟁을 벌였고 패하여 코린트가 함락되었음. 이는 아카이아 동맹의 종말을 의미.
- 로마는 모든 그리스 도시간의 동맹을 해체하고 많은 배상금을 부과하고 도시 성벽을 허물었음. 로마가 그리스의 지배자가 되었음.
- 스파르타는 정치적 자치를 보장 받았으나 독자적 대외정책 수행은 불가능 하였고 반아카이아친로마적 인 소수의 부자들이 집권하였음. 전통적 스파르타 교육이나 공동식사제도가 잔존하였으나 사회적 목적 이 아니라 소수 공직자의 공공 향연에 불과. 특이한 예속민이었던 헤일로타이는 지주의 땅을 경작하는 다른 그리스지역의 하층민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함.
☞ 마카니다스
- 리쿠르고스의 어린 아들 펠롭스가 왕이 되자 실권을 장악한 인물
- 나비스의 선구자로 안으로 ‘노예해방’을 지지하였고 밖으로는 아카이아 동맹에 대항함
6) 나비스
☞ 나비스 왕의 등장
- 군사력을 강화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려 함
- 노예를 해방시키고 토지를 빼앗아 빈민이 아니라 이방인 출신도 포함된 용병들에게 지급 → 사회적 목적의 개혁이라기보다는 만티네이아 전후 군사력 강화의 노력임
- 개혁정책은 아키이아 동맹, 특히 메갈로폴리스에 대항하는 데 이용되었음
☞ 로마와의 전쟁과 스파르타의 쇠퇴
- 로마는 제 2차 마케도니아 전쟁이 끝난 후 그리스 내에 간섭함
- 로마 군대가 그리스에 주둔하며 대립하자 마침내 스파르타와 로마간에 전투가 벌어짐
→ 스파르타는 패하였고 스파르타 시내가 유린당함. 굴욕적인 평화협정
- 스파르타의 패배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사회 개혁의 종말을 뜻함
→ 페리오이코 지역을 상실. 이는 스파르타의 전통적 경제체제나 독자적 사회체제의 붕괴를 의미.
- 기원전 192년 아카이아의 필로포이멘이 스파르타에 진주함으로써 스파르타는 독립국가로서의 마지 막 종지부를 찍게 됨
7) 아카이아 동맹과 스파르타
☞ 아카이아 동맹과 스파르타의 대립
- 아카이아는 메세니아와 엘리스를 아카이아 동맹에 편입함으로써 전 펠로폰네소스의 통합을 이룸
- 하지만 스파르타가 동맹을 탈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스파르타와 아카이아 동맹의 관계 악화
- 스파르타는 동맹의 탈퇴를 결정하였고, 이에 아카이아는 스파르타에 침입하여 아카이아 반대파를 숙 청하고 리쿠르고스 제도를 폐기하고 그 대신 아카이아 식의 행정부를 도입함
- 하지만 스파르타에서는 계속해서 반아카이아 봉기가 일어났고, 결국 로마가 개입하고 난 이후 스파 르타 주변에 성벽이 재건되고 리쿠르고스의 ‘전통적 체제’가 부활 되었다
→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호하나 스파르타가 독립국이 아니라 아카이아 동맹의 일원이 된 것임
- 아키이아와 스파르타의 계속된 대립으로 기원전 148년 마침내 아카이아 동맹이 스파르타를 침공하였고 스파르타는 패하여 아카이아와 평화를 수립하게 됨
☞ 아카이아와 로마와의 갈등
- 로마는 독자적 노선을 표방하고 로마의 간섭을 거부하는 아카이아 동맹을 해체하려 함
→ 아카이아 동맹에 가입한 모든 도시의 동맹 탈퇴를 촉구
- 마침내 아카이아는 로마와 전쟁을 벌였고 패하여 코린트가 함락되었음. 이는 아카이아 동맹의 종말을 의미.
- 로마는 모든 그리스 도시간의 동맹을 해체하고 많은 배상금을 부과하고 도시 성벽을 허물었음. 로마가 그리스의 지배자가 되었음.
- 스파르타는 정치적 자치를 보장 받았으나 독자적 대외정책 수행은 불가능 하였고 반아카이아친로마적 인 소수의 부자들이 집권하였음. 전통적 스파르타 교육이나 공동식사제도가 잔존하였으나 사회적 목적 이 아니라 소수 공직자의 공공 향연에 불과. 특이한 예속민이었던 헤일로타이는 지주의 땅을 경작하는 다른 그리스지역의 하층민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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