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답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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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며
(1) 궁과 궁궐
1. 창덕궁의 연혁
2. 돈화문
3. 금천교
4. 인정전
5. 선정전
6. 대조전
7. 낙선재
(2) 후원(비원)
1. 후원(비원)의 연혁
2. 부용지와 부용정
3. 애련지와 애련정, 불로문
4. 관람지(반도지)와 관람정
5. 존덕지와 존덕정
6. 옥류천 지역

Ⅱ. 마치며

본문내용

형태의 정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영향을 받았는지, 중국이 영향을 받았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정자의 형태 하나만을 보더라도 중국과 우리나라는 과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5. 존덕지와 존덕정
-관람정을 지나서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 홍예교를 건너면 커다란 연못이 나오는데 이곳이 존덕지입니다. 이곳의 물이 차서 넘치면 개천을 따라 흘러서 관람지(반도지)로 흘러 들어가게 됩니다. 존덕지에 위치한 정자가 존덕정으로써, 육각 꼴 형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정조가 지었다는 “만천명월주인용자서”가 현판에 걸려있습니다.
▶이곳에서는 6각형 모양의 정자가 독특하게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곳에 앉아서 조금 쉬었던 기억이 나는데 나중에 다시 와서 보니 지붕이 두 겹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6. 옥류천지역
-이곳은 창덕궁 후원 속에서 가장 깊은 계원입니다. 1636년 인조가 이 계원을 조성하였으며 계류는 북악산의 동편 줄기의 하나인 응봉의 산록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산내와 어정을 파서 천수를 흐르게 하였습니다. 계류가에는 청의정, 소요정, 태극정, 농산정, 취한정을 적절히 배치하고 판석 등으로 간결한 석교를 놓고 어정 옆의 자연 암석인 소요암을 ‘ㄴ’자형으로 파서 곡수구와 폭포를 만들고 암벽에 시문을 새기기도 했습니다. 이 소요암에 곡수구를 파고 폭포를 만든 것은 1636년 인조 때이며, ‘옥류천’이란 각자는 인조의 글씨이며 오언시는 1690년 숙종의 시를 새긴 것입니다.
▶사실 창덕궁 답사에서 가장 기대를 한 곳이 옥류천이였습니다. 규모가 조금 작아서 아쉬웠지만 울창한 삼림과 잘 조화된 아주 멋진 곳이었습니다. 신선이 노닐다가 간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곳에서 당연 눈길을 끄는 곳은 옥류천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옥류천의 ‘소요암’에서 수업시간에 배운 포석정과 같은 ‘유상곡수연’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태극정, 청의정등의 정자 등이 주변과 어울려 멋진 경관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임금님이 모내기철이면 몸소 모내기를 했다는 청의정 또한 흡사 초가집을 보는 듯 독특한 정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청의정은 네모난 바닥과 둥근 지붕으로 이루어져 음양오행사상을 잘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우거진 숲으로 시원함은 말할 필요도 없으니 시간적 여유만 있었으면 정자에 누워서 낮잠이라도 한숨 자면서 옥류천 지역을 몸소 느끼고 싶은 욕망이 용솟음 쳤습니다.
Ⅱ. 마치며...
이곳에 돈화문을 통해 들어갔을 때 처음에는 무척 실망했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이라 하여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갔었지만 그에 걸맞지 않은 규모 때문이였습니다. 지난 겨울방학에 유럽을 여행했었는데 그때 본 베르사유궁전과는 규모 자체가 비교가 안되었습니다. 이처럼 웅장하고 장엄함을 기대했었기에 더욱 실망이 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원론 수업의 답사에 맞게 궁궐보다는 후원을 중심으로 눈을 돌리니 실망감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아직 조경인으로서 보는 눈이 잘 발달하지 못한 까닭에 조금은 대충대충 성의 없이 보기도 하였지만 이 못난 눈으로도 창덕궁의 아기자기한 후원의 맛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처음 갔을 때와 두 번째 찾았을 때 많이 변한 모습으로 창덕궁은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처음 답사시에는 예쁘고, 멋진 곳이라는 단순한 생각뿐 이였으나 이것저것 알아본 후 다시 찾은 창덕궁은 궁궐 이상으로 느껴졌습니다. 무엇이든지 그 의미를 파악하고 난 후 접하게 된다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됨을 느꼈습니다. 창덕궁의 후원을 보면서 우리나라 전통 조경의 특징인 ‘인위적인 요소는 최소화 하고 자연 속에 인간은 하나’라는 것을 잘 표현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은근히 가파른 경사지를 오르면서 ‘이것을 조금 깎아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하기도 하였지만 위에서 언급한 자연과 하나가 되기 위함이라 생각하니 아파오던 다리에 힘이 실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옥류천을 돌아보며 저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창덕궁에서는 멋진 나무들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천연기념물인 회화나무, 향나무, 다래나무, 뽕나무 등을 보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다래나무였습니다. 그 뿌리조차 찾기 쉽지 않았던 다래나무를 보면서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습니다. 사방으로 뻗어 있는 그리 큰 대목을 본 적이 없었는데 생물학적으로도 보존가치가 높은 나무라고 하니 잘 보살펴서 후대에도 잘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 왕들은 후원 일대에서 자라며 보고 느꼈을 것입니다. 멋진 후원 일대에서 세자시절에는 많은 것을 배우면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덕을 쌓았습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지내면 건강에도 좋았을 테지만 한편으로는 왕들의 고독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양 시간에 배운 역사를 조경, 정원과 접목해 볼 때 우리는 창덕궁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어떠한 곳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답사를 하면 안됩니다. 역사는 과거를 보는 학문이 아니라 과거를 봄으로써 현재를 알고 미래를 내다보는 학문이라 했습니다. 이것에 비추어 이런 답사 또한 과거의 모습을 보는 것에 그치지 말고, 듣고 느껴서 내 것으로 만든 다음 미래, 즉 보다 멋진 경관을 창조하기 위해서 ‘법고창신’의 자세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현대 조경의 눈이 중국으로 쏠린다고 합니다. 이는 서양에서 동양으로 넘어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이디어가 다 떨어진 아무도 찾지 않는 서양의 것을 쫓기 보다는 우리 것을 발전시켜 과거 서양이 그리 했듯이 동양적인 우리 것을 세계의 것으로 만들려는 우리 조경가의 노력이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창덕궁을 나오면서 각 계절로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가을의 단풍과 어우러진 애련지의 모습이 어떨지 궁굼합니다. 집에 와서 사진으로 찾아보았지만 가을엔 정말 멋진 단풍 옷을 입고 자태를 뽐내고 있을 창덕궁 후원을 생각하니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서 꼭 다시 한 번 다녀와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이상으로 창덕궁 답사 보고서를 마치겠습니다.
PS..사진은 인터넷에도 검색하면 많이 있고 답사보고서를 작성하다보니 페이지도 많이 늘어나서 넣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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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1.19
  • 저작시기2007.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76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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