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國試에서의 “自然과 人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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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 中國試에서의 “自然과 人間”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Ⅲ. 결론

본문내용

희미한 빛, 정오는 화려하한 태양,
저녁이면 홍방울 날개짓 소리로 가득한 곳.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ey,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나 이제 일어나 돌아 가리,밤낮 쉬임없이
나직히 호숫가를 찰싹이는 물결 소리;
차도에서 혹은 잿빛 道鋪에 멈춰서면
가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
이 시는 이미 본격적으로 도시화와 공업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쓰여졌다. 이 시에는 따라서 도시의 온갖 소란스러움과 구속을 피해서 自然의 평화 속에 파묻히고 싶은 시인의 염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시의 화자는 도시에 살고 있지만 그 곳을 떠나 自然이 주는 소박하고 평화로운 삶 속에 파묻히는 꿈을 꾼다. 하지만 결국 이 시의 화자는 도시를 떠나지 못하며 그에게는 自然에 대한 깊은 동경만이 남을 뿐이다.
이 시에서는 自然과 문명 사이에 끼여서 어느 한쪽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현대인의 갈등을 잘 드러내 준다. 현대인에게 自然은 숨막히는 도시 생활이 가져다 주는 스트레스와 질곡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피난처인 듯이 보이지만, 그에게 自然으로의 완전한 회귀는 이미 불가능한 꿈에 불과한 것이다. 예이츠의 “이니스프리 호도”는 自然과 문명과의 관계에 대한 시인의 깊은 사색의 결정이다.
이 시는 피상적으로 읽으면 문명 생활에 염증을 느낀 시인의 自然으로의 도피를 그리고 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만일 현실 도피가 시인의 목적이었다면 이시는 2연에서 끝났어야 한다. 하지만 시인은 인간은 自然과 하나가 되어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것은 시인에게 뼈아픈 인식이었
겠지만 시인은 그러한 현실을 솔직히 받아드리고 있다. 더군다나 시인이 꿈꾸었던 평화로운 삶에 대한 비전은 결코 맥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시인에게 갈등과 소란스러움으로 가득한 문명 세계를 변화시킬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이츠의 이 시는 시인의 사상과 정서가 여러 가지 시적인 요소들을 통해서 어떻게 예술적으로 통합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 가지 좋은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성기조의 시집의 후기인 ‘책 뒤에’에서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 그가 자각하고 있는 말의 내용과 다음의 시의 내용은 일치한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는 죽으면 썩어 흙이 된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하여(흙-30)>
보잘 것 없는 무덤뿐인
흙 한줌
그 속에서 萬年 살 것 같아도
금방 썩어 흙이 되는 주검
결국 살아 있음이 죽어 흙이 되는 것-
[중략]
주검으로 거둬들여
다시 흙이 되는
엄청난 造化를 부린다.
그러나 썩어 흙이 된 존재는 영원히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난다는 것을 서정적 자아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부활(흙-31)>
흙 속에서
새 싹이 솟았어요.
뾰족하지만
여리디 여린
힘 없는 싹이란 말이예요.
그런데 요게 그 무거운
흙을 뚫고 나왔군요
昨年에 거둬 두었던
씨앗에서 새 순이 나와
흙을 꿰뚫었어요
그러니 이게 復活이 아닌가요.
이리하여 흙은 부활의 모태가 된다. 다시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가 된다. 어머니의 품에서 탄생한 모든 생명체는 자라나 죽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갔다가 부활하는 것을 되풀이한다. 그리하여 흙은 다시 다음과 같이 죽음과 부활의 통로가 된다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이 된다.
Ⅲ. 결론
인간은 선사 이래로 무한한 문명의 발달과 함께 현대에 이르렀다. 여기서 인간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정신적 피폐함을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혹은 미래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인간이 존재하는 한 自然(自然)은 모든 삶의 바탕을 넉넉하게 감싸고 있는 중요한 인자(因子)인 것이다. 인간이 自然의 속성을 대할 때 自然의 진실을 느낄 수 있으며, 自然의 진실을 느끼고 그 自然과 일치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질서, 조화, 진실 및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시에 나타난 自然의 이미지가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1)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 (2) 인간 삶의 터전 (3) 사후의 존재 (4) 범접할 수 없는 공간 (5) 하나가 되고 싶은 존재 (6) 부활의 모태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을 自然과 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면,
첫째, 自然과 인간의 관계는 어머니와 태아의 관계와 같다. 이 때 흙과 인간의 사이에 있는 동식물은 어머니와 태아의 사이에 있는 태반과 탯줄에 해당한다.
인간은 이 태반과 탯줄을 통하여 흙으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인간에게 있어서 흙과의 단절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한국시에서는 인간과 自然의 관계를 좀 더 밀접하고 自然과의 조화와 공존을 노래하는 한편, 영미시에서는 신에 의해 창조되어 지고 인간과는 분리되어 객관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둘째, 自然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곳이다. 한국시에서 인간은 죽어 마침내 自然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흙의 자궁에서 모든 생명체가 탄생하고, 자라나 활동하며, 죽어 흙 곧 내가 되고, 다시 새로운 생명체로 탄생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나와 自然의 경계는 없어지고, 나와 만물의 경계 또한 없어진다. 만물과 나는 한 몸인 것이다.
반면에 영미시에서 인간은 도시의 온갖 소란스러움과 구속을 피해서 自然의 평화 속에 파묻히고 싶어 하며 돌아가고 싶지만 인간은 自然과 하나가 되어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성기조의 시는 인간과 흙, 인간과 만물 사이의 단절을 극복케 함으로써 그의 고민인 인간과 “모든 것으로부터의 단절”을 극복하는 토대를 마련함과 동시에 죽음이란 한계 상황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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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1.26
  • 저작시기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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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78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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