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잉카의 나라 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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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여행, 잉카의 나라 페루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페루의 지형
2. 페루의 주민구성
3. 페루의 경제
4. 한국과의 관계
5. 페루의 역사문명
① 남미 최초의 문명 차빈 문명
② 놀라운 직조기술을 가진 빠라까스 문명
③ 금속무기와 여러 악기를 남긴 비쿠스 문명
④ 인간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본따 토기를 만든 모치까(모체) 문명(기원전 200년~서기 700년)
⑤ 거대한 지상화를 남긴 나스까(Nazca) 문명(서기 300년~650년)
⑥ 거대한 도시를 남긴 치무문명(서기 1100년~1465년)
⑦ 잉카문명

본문내용

2의 면적에 신전과 3000개가 넘는 계단, 테라스식 정원으로 이루어진 성채도시예요. 원주민어로 ‘높은 봉우리’란 뜻을 가진 이 도시는 ‘하늘의 정원’. ‘공중의 도시’ 등으로 불리며 잉카제국의 찬란한 문명을 알려주고 있답니다.
16세기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제국을 정복했을 당시만 해도 이 도시는 있는 줄도 몰랐어요. 20세기 고고학계의 최대발견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마추피추는 어떤 목적으로 건설되어졌고 이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온통 수수께끼 투성이지요.
과학자들은 종교의식과 천문관측을 위해 사용된 종교중심도시 또는 아마존과 잉카를 연결하는 물류와 교역중심도시 아니면 당시 잉카왕의 여름별장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을 뿐이에요. 잉카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이 전혀 없어 이 도시가 과연 어떤 도시인지 알아내는데 어려움이 많답니다. 최근 스페인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와 인골 등 유품들을 분석해 본 결과 이 도시는 잉카 제 9대 왕 빠차꾸띠가 건설한 왕의 직할도시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견이 설득력을 갖고 있다. 한편 페루정부는 현재 이 도시 발견자인 빙험교수가 연구목적으로 가져간 도자기, 인간유골 등 5,000여 점의 마추픽추 유품반환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다.
마추피추의 발견(고고학자 하이렘 빙험의 이야기로 흐름을 이어갑니다.
‘…우리는 비탈에 납작 붙어서 아래로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땅에 손가락을 찔러 꽂은 뒤 미끄러운 풀을 밀어 헤치면서 몸을 위쪽으로 끌어올렸다. 아득한 낭떠러지 저 아래에서는 우리가 밧줄을 잡고 건너온 우루밤바 강의 성난 급류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고 있었다. 인디언 안내인이 이 근처에는 사냥감을 뒤에서 공격하는 페루드란스 독사가 많다고 신음하듯이 일러 주었다.’
미국 예일대학에서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가르치던 서른 다섯 살 난 하이렘 빙험 하이렘 빙험(Hiram Binghem 1875~1956)
이 마추피추를 발견한 1911년 7월 24일의 일을 기록한 글이다. 탐험대는 빙험과 그의 대학 동료 두 사람, 통역과 길 안내를 맡은 페루군 하사관 1명, 거기에 노새 몇 마리 그들은 잉카 제국의 마지막 수도였던 빌까밤바를 찾으려고 들끓는 모기와 지독한 더위와 위험한 급류를 무릅쓰고 우루밤바 강을 따라 이미 페허가 된 잉카시대의 유적지들을 모조리 조사하고 있었다. 일행들이 빌까밤바 계곡에서 야영하고 있던 어느 날 한 인디언이 나타나 그들의 바로 앞에 깎아지른 듯이 솟은 바위산 등성이에 거대한 폐허가 있다고 알려 주었다.
‘꽤 높이 올라갔는데도 폐허 같은 것은 없었다. 모두가 몹시 지쳤다. 그 때 인디언 몇 사람이 샘물을 담은 호리병을 가지고 다가왔다. 물을 정신없이 들이키고 가슴 가득히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자 정신이 한결 맑아졌다. 인디언들은 조금 더 가서 산모퉁이를 돌면 폐허가 있다면서 한 소년을 알려 주었다….’
빙험 일행이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과연 잉카 시대의 계단식 경작지가 보이고 돌 건축물이 나타났다. 거대한 계단 같은 것을 몇 단 겹쳐 쌓은 큰 건축물은 나아갈수록 더 많아졌다. 모두가 길이 30m, 높이 3m가 넘는 돌벽으로 쌓여져 있었다. 한 건축물의 끝까지 걸어가니 맞은편에 나무가 이끼 낀 돌벽 속에서 솟아 있었다. 엄청나게 큰 돌들은 서로 꽉 맞물려 있었다.
그 벽은 가옥의 일부였다. 벽은 옆에도 그 맞은편에도 있었다. 바위 선반 아래에 동굴이 있었다. 벽에 벽감이 나란히 설치된 왕족의 무덤이었다. 그 위쪽에는 쿠스코에 있는 태양의 신전처럼 바깥 벽이 경사진 반원형 건물이 있었다. 돌계단은 광장으로 이어졌고 거기에는 흰 화강암으로 지은 대사원이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비탈 아래에는 건물들이 미로처럼 배열되어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안데스산 중에 해발 4570m 높이로 우뚝 솟은 바위산. 그 중턱에 만여 명이 살 수 있는 비밀 도시가 있었다니! 바퀴를 모르던 잉카인들은 흙과 돌을 사람이 지고 날라다가 이 도시를 세웠던 것일까? 길이가 수백 m나 되는 축대를 100개나 쌓고 거기에 흰 화강암을 빈틈없이 이어 쌓은 벽과 집들. 샘에서 수돗물을 끌어와 계단식 밭을 일구고 외부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도록 신전과 묘지까지도 갖춘 완벽한 도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바깥 세상과 소식을 끊은 채 수십 년 동안 살다가 늙어 죽은 듯했다. 어떤 군대라도 막아낼 수 있도록 삼면이 낭떠러지인 이 요새는 그 뒤로 400년 동안이나 사람 그림자가 얼씬하지 못한 채 두꺼운 이끼에 덮여 있었다.
하이렘 빙험은 빌까밤바를 찾았다고 확신했다. 눈앞의 옛 도시가 스페인군에 쫓긴 잉카의 황제의 피난처이자 저항의 근거지로 삼은 최후의 수도라고… 산 위에서는 계곡이 다 내려다보이지만 계곡에서는 어디에서 올려다보아도 보이지 않는 요새. 바위산 꼭대기에 있으면서도 천여 명이 살았던 자급자족의 도시. 계곡 일대에 흩어져 살고 있던 만여 명을 관장한 거점 도시. 신전 중심의 시설로 가득한 신성한 도시. 과연 마추피추는 누가 세웠고 왜 버려졌을까…
마추피추의 전경
① 마추피추로 들어가는 유입한 입구 ‘뱀의 문’
사다리꼴로 쌓아올린 좁은 이 문은 한 사람씩 통과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입구를 통과하면 물이 흐르는 수로와 나란히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을 내려가야 마추피추로 들어갈 수 있다.
② 인띠 와따나(Inti Huatana)
커다란 하나의 단단한 바위로 복잡한 기하학적인 모양의 곡선과 여러 각도로 잘 다듬어져 잉카 석재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인띠 와따나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12월 21일(페루는 남반부로 한국과 반대) 하지의 태양이 자리를 잡는다는 의미로 ‘태양을 잡아매는 말뚝 또는 태양을 가두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곳에 서면 도시 전경과 외곽의 계단식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③ 마추피추의 풍경(스케치 형식으로 전체 풍경을 다양한 참고그림자료로)
왕궁과 정원, 광장, 제사장 등 귀족들이 사용하던 저택과 일반인들이 사용하던 집, 시가지, 병영, 감옥, 적의 침입을 막는 방어선 구실도 하던 끝없이 이어진 계단식 밭과 지금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인 물이 흐르는 관개수로시설과 16개의 양수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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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09
  • 저작시기2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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