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들어가며
-예술을 사랑한 왕
-인물조사 (루이14세, 륄리, 몰리에스)
-예술을 사랑한 왕
-인물조사 (루이14세, 륄리, 몰리에스)
본문내용
필생의 본거지로 삼았다. 또한 1662년 20세 연하인 여배우 아르망드 베자르와 결혼하였다. 그의 공적은 그때까지 비극보다 한 단계 낮은 장르로 취급되었던 희극의 지위를 높인 데에 있다. 그 작법은 인물 풍속의 적확한 묘사,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을 첫째로 두는 전개, 인물의 내면에 드라마를 인정하려고 하는 성격 심리극의 지향으로 요약된다. 연기 낭송법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견해를 가지고, 기성극단의 비극배우에서 볼 수 있는 과장을 배제한 자연스러운 발성법과 연기를 강조하였다. 1664년 5월 루이 14세는 신궁전 베르사유에서 1주간에 걸친 페스티벌 <마법섬의 환락>을 열고 몰리에르와 작곡가 J.B. 륄리가 연극 음악을 담당했는데, 이 페스티벌에 《타르튀프(3막)》가 상연되었다. 이단 신자를 주제로 한 이 작품은 당시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던 교회, 특히 예수회파의 결사 <성체비적협회(聖體秘蹟協會)>를 자극하여 1667년 1회의 공연으로 상연이 금지되었다. 위선자에 대한 분개는 《동 쥐앙(1665)》이나 그 이듬해에 발표된 《인간혐오자》에서도 강하게 표출되었다. 《타르튀프》 이후의 이 두 작품은 모두 주인공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 있는 대작이다. 만년의 작품 경향은 《타르튀프》 《인간혐오자》로 대표되는 본격 희극보다는 극 구성의 양식화를 목표로 한 경쾌한 희극으로 지향한 점을 엿볼 수 있다. 주요 작품은 중세의 파블리오에서 소재를 얻은 《마음에도 없이 의사가 되어(1666)》, 그리스신화의 형식으로 궁정을 은유한 《앙피트리옹(1668)》, 륄리 작곡의 코미디 발레를 대표하는 《평민귀족(1670)》, 이탈리아풍의 소극(笑劇)을 균형잡힌 구도로 재현한 《스카팽의 간계(1671)》가 있다. 또 구두쇠의 전형을 그린 《수전노(1668)》와 《재치를 뽐내는 여인들》에서 다루었던 재치있는 여인들을 다시 소재로 쓴 사회풍자극 《여학자(1672)》는 대작으로 주목된다. 이 작품들에서 특히 눈에 띄는 줄거리는 가장권(아버지)에 대항하는 젊은이(아들 딸)의 사랑과 그것을 도와주는 하인이라는, 《타르튀프》 이래의 테마로, 이 도식은 더욱 긴밀한 형태를 취하여 드라마를 움직이고 있다. 의학 풍자희극 《기분으로 앓는 사나이》가 몰리에르의 최후 작품인데, 그 상연에서 흉부질환을 무릅쓰고 주인공역을 맡은 그는 공연 4일째, 1673년 2월 17일 연기 도중 기침 발작이 일어났으나 무사히 연극을 끝낸 뒤 그대로 쓰러져, 집으로 옮겼으나 각혈 끝에 숨을 거두었다. 몰리에르의 사후에 미망인 아르망드는 배우들을 이끌고 게네고극장으로 옮겼으나, 1680년 국왕의 명령으로 경쟁세력이었던 오텔 드 부르고뉴극장과 합병함으로써 새로이 <국왕의 극단>이 결성되었다. 이것은 현재의 국립극장 코메디 프랑세즈의 전신이다. 몰리에르의 작품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극장의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로서 상연을 거듭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작품들이 시대풍속에 대한 예민한 시각과 비판정신에 뒷받침되어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상을 묘사한 때문으로 평가되고 있다.
-야후 백과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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