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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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항우본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대들을 위해서 포위를 뚫고 적장(敵將)을 참살하고 적군의 깃발을 쓰러뜨려서 그대들로 하여금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님을 알게 하고 싶노라
라고 하고는 그 기병을 넷으로 나누어 사방으로 향하게 하였다. 한군이 겹겹이 포위하니, 항왕은 그 기병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대를 위해서 저 장수를 베리라"라고 하고는 기병들에게 사방으로 말을 달려 내려가도록 하고 산의 동쪽 세 군데에서 나누어 만날 것을 약조하였다. 그러고 난 뒤 항왕은 크게 소리치며 아래로 말을 달려가니, 한군은 바람에 초목이 쓰러지듯이 모두 전멸당하였고, 항왕은 마침내 한나라 장수 한 명의 목을 베었다. 이때 기장(騎將)이었던 적천후(赤泉侯)가 항왕을 추격하자 항왕이 눈을 부릅뜨고 꾸짖으니 적천후는 사람과 말이 모두 놀라서 몇리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이리하여 항왕은 산의 동쪽 세 군데에서 그의 기병들을 만났다. 한군은 항왕의 소재를 알 길이 없자 군사를 셋으로 나누어 초군을 다시 포위하였다. 이에 항왕이 말을 달려서 한나라 도위(都尉) 한 명을 참살하고 100여 명을 죽인 뒤 다시 그의 기병들을 모으니 기병 2명이 죽었을 뿐이었다. 이에 항왕이 기병들에게 "어떠냐?"라고 묻자, 기병들이 모두 엎드려서 말하기를 "대왕의 말씀과 같사옵니다"라고 하였다.
이때에 항왕은 동쪽으로 오강(烏江)을 건너려고 하였다. 그런데 오강의 정장(亭長)이 배를 강언덕에 대고 기다리다가 항왕에게 말하기를 "강동(江東)이 비록 작으나 땅이 사방 천리요, 백성들의 수가 수십만에 이르니, 그곳 또한 족히 왕이 되실 만한 곳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얼른 건너십시오. 지금 신(臣)에게만 배가 있어 한군이 이곳에 온다 해도 강을 건널 수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항왕이 웃으며 말하기를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데, 내가 건너서 무얼 하겠나? 또한 내가 강동의 젊은이 8,000명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었는데, 지금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했거늘 설사 강동의 부형(父兄)들이 불쌍히 여겨 나를 왕으로 삼아준다고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대하겠나? 설사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해도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하고는 정장에게 말하기를 "나는 그대가 후덕한 사람임을 알고 있다. 나는 5년 동안 이 말을 탔는데, 이 말에 대적할 것이 없었으며 하루에도 천리를 달렸다. 내 차마 이 말을 죽일 수 없어 그대에게 주겠소"라고 하고는 기병들로 하여금 모두 말에서 내려 걷도록 하고는 손에 짧은 무기만을 들고 싸움을 벌여서 항우 혼자서 죽인 한군이 수백명이었다. 항왕도 몸에 10여 군데 부상을 입었다. 항왕은 한나라 기사마(騎司馬) 여마동(呂馬童)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너는 예전에 내 부하가 아니었더냐?"라고 하자 여마동이 항왕을 바라보면서 왕예에게 항왕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가 바로 항왕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항왕이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한왕이 나의 머리를 천금과 만호의 읍(邑)으로 사려고 한다 하니, 내 그대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리라"라고 하고는 이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왕예가 항왕의 머리를 가지고, 다른 기병들이 서로 짓밟으며 항우의 몸을 쟁탈하다가 서로 죽인 자가 수십명이 되었다. 마지막에는 낭중기(郎中騎) 양희와 기사마 여마동, 낭중(郎中) 여승(呂勝)과 양무(楊武)가 각기 항왕의 몸 한 쪽씩을 차지하였다. 다섯 사람이 모두 자신이 차지한 항왕의 몸을 맞추어보니 모두가 틀림없었다. 그러므로 그 땅을 다섯으로 나누어 여마동을 중수후(中水侯)에 봉하고, 왕예를 두연후(杜衍侯)로 봉하고, 양희를 적천후(赤泉侯)에 봉하고 양무를 오방후(吳防侯)에 봉하고, 여승을 열양후(涅陽侯)에 봉했다.
항왕이 죽자 초나라 모든 지역이 모두 한나라에 투항했는데, 유독 노현(魯縣)만이 항복하지 않았다. 이에 한왕은 천하의 병사를 이끌고 노현을 도륙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노현 백성들은 예의를 고수하며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절개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었으므로 한왕은(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항왕의 머리를 가지고 가서 노현 백성들에게 보였다. 그러자 노현의 부형들이 투항하였다. 처음에 초 회왕이 항적을 노공(魯公)으로 봉했고, 지금 그가 죽자 비로소 노현이 함락되었으므로 노공이라는 봉호에 대한 예우로 항왕을 곡성(穀城)에 안장하였다. 한왕이 항왕을 위해서 발상(發喪)하고 흐느끼며 떠났다.
한왕은 여러 항씨 일족들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그리고 항백(項伯)을 사양후(射陽侯)에 봉하였고, 도후(桃侯), 평고후(平皐侯), 현무후(玄武侯)는 모두 항씨였으나 그들에게 유씨(劉氏) 성을 하사하였다.
태사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주생(周生)에게서 '순(舜)의 눈은 아마도 눈동자가 둘이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또 항우도 눈동자가 둘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항우가 어찌 순(舜)의 후예이겠는가? 그러면 항우가 어떻게 갑작스럽게 일어났는가? 진나라가 실정(失政)하자 진섭이 처음 난을 일으키고 호걸들이 봉기하여 서로 다투었으니 그 수를 이루 다 셀 수 없었다. 그러나 항우는 세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으면서도 진 말(秦末)의 대세를 틈타 민간에서 흥기하여 3년 만에 마침내 다섯 제후를 거느리고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리고는 천하를 분할하여 왕, 후를 봉하니 모든 정령(政令)이 항우에게서 나왔으며 자신을 '패왕(覇王)'이라고 칭하였다. 그 왕위가 비록 끝까지 가지는 않았으나 이는 근고(近古) 이래로 없었던 일이다. 그러다가 항우가 관중을 버리고 초나라를 그리워하고, 의제를 쫓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어 왕후들이 자신을 배반한 것을 원망하기에 이르자 상황은 어렵게 되었다. 항우는 스스로 공로를 자랑하고 자신의 사사로운 지혜만을 앞세워 옛것을 스승삼지 아니하며, 패왕의 공업(功業)이라고 하고는 무력으로 천하를 정복하고 다스리려고 하다가 5년 만에 마침내 나라를 망치고 몸은 동성(東城)에서 죽으면서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책망하지 않았으니 이는 잘못된 것이었다. 그리고는 끝내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결코 내가 싸움을 잘하지 못한 죄가 아니다'라는 말로 핑계를 삼았으니 어찌 잘못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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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5.10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09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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