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사돌레토에의 답신
2.성만찬 소고
(1) 성만찬 제정의 이유
(2) 성찬의 유익
(3) 성찬의 올바른 사용
(4) 성찬을 부패시키는 오류들
2.성만찬 소고
(1) 성만찬 제정의 이유
(2) 성찬의 유익
(3) 성찬의 올바른 사용
(4) 성찬을 부패시키는 오류들
본문내용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지를 고백케 한다는 것이다.
) Ibid., 98Whr.
또한 성찬의 유익은 우리가 거룩하게 살게 하고, 특히 우리 안에 사랑과 형제애을 지키도록 강력히 촉구하는 데 있다.
) cf. H. Beveridge and J. Bonnet (ed), Selected Works of Calvin (Tracts and Letters), Volume 2, Baker Book House, 1983, pp.173-174.
왜냐하면 성찬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머리되신 그와 하나가 됨으로 그의 지체가 된 까닭에, 우선 우리를 그의 청결과 순결(purity and innocence)에 부합시키고 또한 특히 동일한 몸의 지체가 가져야 할 그런 사랑과 일치(charity and concord)를 서로 가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 Ibid., p.174
(3) 성찬의 올바른 사용
성찬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누구든지 이 성찬에 업신여김(contempt)이나 무관심(indifference)으로 접근하여 우리 주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따라가는 데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자는 성찬을 사악하게 능욕하는 자요 더럽히는 자이다. 하나님이 그토록 거룩하게 하신 것을 더럽히고 오염시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신성모독(intolerable blasphemy)이다.
) Ibid., p.174
칼빈에 의하면, 하늘과 땅위에 주님의 몸과 피보다 더 귀하고 더 존엄한 것이 없을진대, 경망스럽고 준비없이(inconsiderately and without being well prepared)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사소한 실수일 수는 없다.
) Ibid., p.174
또한, 주님의 성찬에서 합당한 영양(proper nourishment)을 얻기 위해선 마땅히 우리 영혼은 기근으로 고통당하여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야 하는 것이다.
) Ibid., p.176. ...our souls must be pressed with famine and have a desire and ardent longing to be fed,...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 특히 교회에서 하나가 된 그리스도인을 미워하거나 그에게 원한을 품고서 성찬을 대하려 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함께 섞여 있는 것 같이, 우리 역시 끊을 수 없는 우정(indissoluble friendship)으로 하나가 됨이 마땅하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서로 싸우고 다툰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여러 조각으로 찢게 되며 하나님을 모독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 Ibid., p.177
칼빈은 성찬에 참여하는 자의 태도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믿음이 불완전하다고 느끼며 우리의 양심이 수많은 죄악들을 책망하지 못할 정도로 순결치는 못하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그것이 주의 거룩한 식탁에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 Ibid., p.178. 물론 이런 연약함 가운데서도 마음에 위선(hypocrisy)이나 기만이 없어야 한다.
성찬은 우리의 허약함(our weakness)을 돕고 우리의 믿음을 강건케 하며 우리의 사랑을 증가시키고 더욱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치료책(remedy)인 까닭에, 우리가 질병으로 억압된 느낌을 받으면 받을수록 성찬을 삼가하기 보다 더욱 활용해야 한다.
) Ibid., p.179
칼빈에 의하면, 성찬의 사용 횟수에 관해서는 어떤 확실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때로는 어떤 사람에게 성찬을 삼가해야 할 특별한 경우도 있다. 더우기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일 억지로 성찬을 이요케 하기 위해 성찬을 제공하라는 명백한 명령을 받은 일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주님이 의도하셨던 목적을 신중히 고려해보면, 성찬의 사용은 지금 많은 곳에서 하고 있는 것보다 더 빈번하게 해야한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연약함이 우리를 억누르면 누를수록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확고히 해주고 순결한 삶(purity of life)으로 우리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이 성찬에 의지함이 더욱 더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수요할 능력(capacity)에 따라 자주 성찬을 거행하는 습관이 모든 교회에 잘 세워져야 한다.
) Ibid., p.179. 칼빈에 의하면, 합당치 못하다는 이유로 성찬을 오랫동안 삼가해서는 안된다.
(4) 성찬을 부패시키는 오류들
칼빈에 의하면, 사탄은 성찬의 유익을 오류와 미신으로 더럽히며, 그 열매를 부패시키려고 전력을 다했다. 마침내는 주님의 성찬을 거짓과 허식으로 뒤바꿔 놓기까지 했다. 성찬을 희생 제사(sacrifice)로 보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다.
칼빈은 로마교회의 화체설을 거부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에 아무런 기초가 없고 고대 교회로부터의 어떤 흔적도 없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되고 조화되지 않는다.
성찬의 빵 앞에 부복하거나, 또 마치 그리스도가 그 빵에 포함되어 있는 듯이 빵 속에 그리스도께 경배하는 것은 우상을 성찬으로 바꿔놓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명령은 그것을 경배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 먹으라는 것이다.
로마교회는 또한 피의 상징을 분배하지 않는다. 이처럼 불행히도 가려한 신자들은 우리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선물을 사기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양식으로 주님의 피를 받는 것이 적지 않은 유익일진대 이것을 탈취하는 것은 잔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칼빈에 의하면, 성찬은 하나님의 은밀하고 기이한 능력에 의해(by the secret and miraculous power of God) 완성된다. 또한 하나님의 영은 성찬의 참여의 띠(the bond of participation)이시다. 이 때문에 성찬은 영적이라고 불리운다.
우리는 주님의 지시에 따라 신앙으로 성찬을 받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진정한 실체(the proper substance of the body and blood of Jesus Christ)에 참으로 참여하게 된다.
) Ibid., 98Whr.
또한 성찬의 유익은 우리가 거룩하게 살게 하고, 특히 우리 안에 사랑과 형제애을 지키도록 강력히 촉구하는 데 있다.
) cf. H. Beveridge and J. Bonnet (ed), Selected Works of Calvin (Tracts and Letters), Volume 2, Baker Book House, 1983, pp.173-174.
왜냐하면 성찬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머리되신 그와 하나가 됨으로 그의 지체가 된 까닭에, 우선 우리를 그의 청결과 순결(purity and innocence)에 부합시키고 또한 특히 동일한 몸의 지체가 가져야 할 그런 사랑과 일치(charity and concord)를 서로 가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 Ibid., p.174
(3) 성찬의 올바른 사용
성찬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누구든지 이 성찬에 업신여김(contempt)이나 무관심(indifference)으로 접근하여 우리 주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따라가는 데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자는 성찬을 사악하게 능욕하는 자요 더럽히는 자이다. 하나님이 그토록 거룩하게 하신 것을 더럽히고 오염시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신성모독(intolerable blasphemy)이다.
) Ibid., p.174
칼빈에 의하면, 하늘과 땅위에 주님의 몸과 피보다 더 귀하고 더 존엄한 것이 없을진대, 경망스럽고 준비없이(inconsiderately and without being well prepared)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사소한 실수일 수는 없다.
) Ibid., p.174
또한, 주님의 성찬에서 합당한 영양(proper nourishment)을 얻기 위해선 마땅히 우리 영혼은 기근으로 고통당하여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야 하는 것이다.
) Ibid., p.176. ...our souls must be pressed with famine and have a desire and ardent longing to be fed,...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 특히 교회에서 하나가 된 그리스도인을 미워하거나 그에게 원한을 품고서 성찬을 대하려 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함께 섞여 있는 것 같이, 우리 역시 끊을 수 없는 우정(indissoluble friendship)으로 하나가 됨이 마땅하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서로 싸우고 다툰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여러 조각으로 찢게 되며 하나님을 모독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 Ibid., p.177
칼빈은 성찬에 참여하는 자의 태도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믿음이 불완전하다고 느끼며 우리의 양심이 수많은 죄악들을 책망하지 못할 정도로 순결치는 못하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그것이 주의 거룩한 식탁에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 Ibid., p.178. 물론 이런 연약함 가운데서도 마음에 위선(hypocrisy)이나 기만이 없어야 한다.
성찬은 우리의 허약함(our weakness)을 돕고 우리의 믿음을 강건케 하며 우리의 사랑을 증가시키고 더욱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치료책(remedy)인 까닭에, 우리가 질병으로 억압된 느낌을 받으면 받을수록 성찬을 삼가하기 보다 더욱 활용해야 한다.
) Ibid., p.179
칼빈에 의하면, 성찬의 사용 횟수에 관해서는 어떤 확실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때로는 어떤 사람에게 성찬을 삼가해야 할 특별한 경우도 있다. 더우기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일 억지로 성찬을 이요케 하기 위해 성찬을 제공하라는 명백한 명령을 받은 일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주님이 의도하셨던 목적을 신중히 고려해보면, 성찬의 사용은 지금 많은 곳에서 하고 있는 것보다 더 빈번하게 해야한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연약함이 우리를 억누르면 누를수록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확고히 해주고 순결한 삶(purity of life)으로 우리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이 성찬에 의지함이 더욱 더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수요할 능력(capacity)에 따라 자주 성찬을 거행하는 습관이 모든 교회에 잘 세워져야 한다.
) Ibid., p.179. 칼빈에 의하면, 합당치 못하다는 이유로 성찬을 오랫동안 삼가해서는 안된다.
(4) 성찬을 부패시키는 오류들
칼빈에 의하면, 사탄은 성찬의 유익을 오류와 미신으로 더럽히며, 그 열매를 부패시키려고 전력을 다했다. 마침내는 주님의 성찬을 거짓과 허식으로 뒤바꿔 놓기까지 했다. 성찬을 희생 제사(sacrifice)로 보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다.
칼빈은 로마교회의 화체설을 거부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에 아무런 기초가 없고 고대 교회로부터의 어떤 흔적도 없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되고 조화되지 않는다.
성찬의 빵 앞에 부복하거나, 또 마치 그리스도가 그 빵에 포함되어 있는 듯이 빵 속에 그리스도께 경배하는 것은 우상을 성찬으로 바꿔놓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명령은 그것을 경배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 먹으라는 것이다.
로마교회는 또한 피의 상징을 분배하지 않는다. 이처럼 불행히도 가려한 신자들은 우리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선물을 사기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양식으로 주님의 피를 받는 것이 적지 않은 유익일진대 이것을 탈취하는 것은 잔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칼빈에 의하면, 성찬은 하나님의 은밀하고 기이한 능력에 의해(by the secret and miraculous power of God) 완성된다. 또한 하나님의 영은 성찬의 참여의 띠(the bond of participation)이시다. 이 때문에 성찬은 영적이라고 불리운다.
우리는 주님의 지시에 따라 신앙으로 성찬을 받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진정한 실체(the proper substance of the body and blood of Jesus Christ)에 참으로 참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