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리더쉽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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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히틀러의 리더십 분석
1) 히틀러의 리더십에 대한 전반적 이해
① 사회적 상황
② 리더역할 ‐ 지도자로써의 히틀러
③ 조직의 구성원 ‐ 대중적 지지
2) 이론을 통한 리더십의 전반적 이해
① 상황적합성 이론
② 경로‐목표 이론
③ 수명주기 이론
④ 히틀러가 갖는 리더십의 특징
3) 리더십을 통한 히틀러의 업적
① 국내
② 국외

2. 히틀러의 리더십 평가
1) 성공적 리더십 가능요인
① 시대적 요인
② 성격적 요인
③ 뛰어난 언변
④ 히틀러의 매력
2) 실패한 리더십 가능 요인 ‐ 패망의 원인 히틀러의 리더십
3) 히틀러와 처칠 비교

본문내용

오히려 좁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선이 어려워 상황에 있을 때 불안한 그의 심정을 표현하듯 본부를 자주 옮겼는데 이에 중요한 정보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신경 쓰지 못한 체 정보가 버려지기 일쑤였다. 참모들이 히틀러의 전략에 대해 객관성과 일관성이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을 때 그는 자신에 대한 반발이라고 생각했고 명령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 것은 적군의 저항 때문이 아니라 참모들의 무능과 불복종 탓으로 돌렸다.
그는 전투에 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군의 급습이 시작되었을 때 히틀러는 전선에서 2000킬로미터나 떨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므로 그 결과 위기 상황에 적절한 대응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 발생한 위기를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는 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으면서도 의사결정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세밀한 부분까지도 작전을 감독하려고 했다. 그가 이러한 방식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바로 그의 ‘총통원칙’이었다. 그는 총통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기술적 진보로 가능했고 이것이 오히려 불행을 안겨준 셈이다. 반면 연합군 ‘분별 있는 개입’ 즉 책임의 분담으로 철저하게 분담하였다. 예를 들어 처칠은 전투의 과정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전선에 위기가 고조되면 간섭하지 않았다. 기술이 진보하여 보고를 받게 되어도 치열한 전선의 상황을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까지 전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평가들은 만약 히틀러의 전쟁이 승리로 끝났다면 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세계의 영웅이 되었을 것이고 우리는 역사시간에 ‘나의 투쟁’을 배워야 하는 결과를 초래했을지도 모른다.
3) 히틀러와 처칠 비교
사상 최강의 군사력으로 무장한 나치 독일이 영국 침략에 나서 런던 시가지를 공습하자 당시 총리였던 처칠은 시가를 문 채 태연히 거리를 활보했다고 한다. 떨고 있는 런던 시민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당시 영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기나 탄약이 아니라 자신감과 사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두 라이벌인 히틀러와 처칠은 상반된 리더십을 통해 진정한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리더십은 권위적인 리더십인 히틀러와 영감을 주는 리더십인 치칠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두 사람은 태생과 교육환경, 성격까지 정반대였다.
처칠은 부유한 귀족집안 출신의 부모의 후광으로 순탄하게 정치에 입문했지만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시골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혼자 힘을 권력의 정점까지 올랐다. 또한 두 사람은 독일제국 건설, 대영제국 건설이라는 비전을 공통으로 제시했지만 실상을 달랐다. 히틀러는 교묘하게 조성한 초인의 이미지와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질투와 불만이라는 사악한 감정을 촉발시켜 국민들에게 적개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처칠은 문명화된 가치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자신감과 용기, 희망을 갖도록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처칠은 토론을 즐기며 조언을 받아들일 줄 알았지만 히틀러는 참모들을 억압했고 전황이 불리해지자 야전사령관의 지휘권을 일일이 간섭하며 사기를 떨어뜨렸다.
또 처질은 오랜 친구이자 동료를 식품 부 차관에 기용했지만 그가 추문에 연루되자 가차없이 퇴진시킨 반면 히틀러는 능력이나 도덕성보다는 자신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사람을 판단했다. 처칠의 위대함은 자신에게 거역할 줄 아는 부하를 기용해 그들의 조언을 따랐던 점에서 찾을 수 있는데 참모총장을 중용, 생산적 긴장관계를 통해 자신의 단점을 메웠다. 그러나 히틀러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자신의 충복에겐 관대했다. 히틀러는 장악하려 들었고 처칠은 배분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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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8.09
  • 저작시기2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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