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며
2. 제1권 - 해방에서 한국 전쟁까지
3. 제2권 - 휴전에서 10․26까지
4. 제3권 - 1980년에서 90년 초까지
5. 맺으며
2. 제1권 - 해방에서 한국 전쟁까지
3. 제2권 - 휴전에서 10․26까지
4. 제3권 - 1980년에서 90년 초까지
5. 맺으며
본문내용
위기는 보다 심각했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급작스런 죽음이 또 다른 독재자를 불러올 수 있게 된 원인에는 이 같은 남한의 혼란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3. 제3권 - 1980년에서 90년 초까지
군부, 행정부, 정당 등 각종 권력기구들을 한 손에 거머쥐고 있던 박정희가 갑작스레 죽어버리자, 대한민국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박정희는 자신이 어느 순간 사망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지침을 내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사망 당시, 전두환은 보안사령관의 직책에 있었다. 그리고 전두환을 위시한 ‘하나회’ 회원들은 실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군부 내 실권자의 위치에 있었다. 이들 전두환과 그 졸개들은 박정희가 살아 있을 당시 독재자에 의해 잉태되고, 양육된 세력이었다. 즉 박정희에게 충성을 바칠 충성세력을 키워왔던 것이다. 그리고 독재자에 의해 길러진 괴물들은 또 한 번의 내란을 획책한다. 바로 1212사태이다.
전두환은 보안사령관으로서 군부 내의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 정승화 육참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박정희 죽음과 연관하여 체포해버린다. 이제 전두환을 막을 사람은 남한에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전두환은 철저한 친미주의자였고, 이 점은 미국에게 희소식이었다. 미국이 전두환 및 그 졸개들을 남한 지역의 새로운 지배자로 승인해줬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승만에게 대항했고, 박정희와 투쟁했던 그 민주화의 맥은 여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이들은 새로운 적으로 등장한 전두환과 일전을 벌여야만 했다. 그러나 전두환은 초반에 확실한 기선제압을 하고 나섰다. 바로 광주 518 사태가 그것이다. 민간인을 상대로 군인을, 그것도 특수전 임무를 수행하는 특전여단을 투입한 전두환은, 거친 군화발로 광주를 짓이겨버림으로써 차후 저항의 실마리를 끊어놓고자 했다.
전두환 일당은 김대중을 내란의 수괴로 몰아갔으며, 하나의 소설처럼 ‘빨갱이 집단’을 기획했다. 그리고 이 소설에 이름이 적힌 민주화 인사들은 혹독한 고문과 탄압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민중의 저항의 불씨는 결코 꺼지지 않았으며 이 정신이야말로 빼앗긴 들에 다시금 봄을 찾아오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 민중 저항 정신은 610 항쟁으로 빛을 발한다.
전두환은 그의 충실한 후계자 노태우에게 정권을 이양하고자 했다. 직선제를 두려워한 전두환과 노태우는, 전두환이 그랬듯이 또 다시 체육관에서 대선을 치루고자 했다. 그러나 다시 군인에게 지배 받아야 할 것에 절망한 민중은, 이 커다란 절망을 거친 분노로 표출했다. 바로 610항쟁인 것이다.
과거의 시위가 학생 위주였다면, 이 운동은 소위 ‘넥타이 부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제 사회의 기득권층에 진입함으로써 안정된 생활을 향유할 수 있었던 회사원들조차 지긋지긋한 독재에 신물을 낸 것이다. 회사원마저 정치적 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은 대한민국 전체가 전두환을 증오하고, 그의 파렴치한 간선제를 저지하고자 했음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결국 민중이 승리했고, 독재자는 패배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직선제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비극은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 것일까? 입으로는 민주주의와 국민의 복지를 외쳤던 자칭 김대중, 김영삼 등은 그들의 공적(公敵)인 노태우에 각개격파 당하고 만다. 야당후보 단일화에 성공했더라면, 노태우가 정권을 창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김대중과 김영삼 두 명 중 한명은 상대에게 대선후보 자리를 양보했어야 했다. 이것이야말로 입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한 민주주의인 것이다.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위선적 지도자가 아닌, 스스로 희생함으로서 전체를 위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둘은 끝내 병적인 대통령 집착에 의해 단일화에 실패하였고, 이들의 위선적 행태는 결국 노태우를 대통령 자리에 앉혀주고 만다. 과연 전두환과 노태우만이 역사의 죄인일까? 김대중, 김영삼에게 스스로 죄를 자인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대한민국이 저런 내환으로 시달릴 때, 세계정세는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군사적, 경제적 유일 초강대국이던 미국은 몰락해갔고, 세계 경제권은 다원화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공공연히 핵무장을 시도하고 있었으며,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 공산주의를 몰락했다.
이처럼 우리를 지배하던 열강들이 몰락해가고, 다원주의적 세계정세가 막을 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만큼 한민족에게 자유가 부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1990년대는 통일을 위한 절호의 기회이다. 이 기회를 놓쳐버리면 역사의 조류는 어디로 흘러갈지 장담할 수 없다. 우리의 미래가 탁류가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민중과 그 지도자들의 몫에 달려 있는 것이다.
4. 맺으며
본문을 시작하면서 물음을 던졌다. 왜 책 제목이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인가 하고 말이다. 왜 꼭 다시 써야만 할까? 그 동안 감춰져왔거나 왜곡되었던 거짓이 사실인양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책은 바로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서 시작한다. 일제 수탈로부터 해방되자 우리는 그야말로 ‘광복’을 찾은 듯했다. 하지만 그 광복은 민중의 것이 아닌 지배층의 것에 불과했다. 이승만과 그의 협조자였던 미국, 박정희와 그의 후원자였던 미국, 전두환과 그의 지지자였던 미국은 단 한 번도 이 땅의 평화와 민중의 복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오직 일신의 영달과 권력의 계속적 점유만을 추구했던 것이다.
북한은 또 어떠한가? 김일성을 위시한 북조선공산당은 해방 후 민중의 편에 서서 지주, 자본가 등의 재산을 빼앗았지만, 결국 그것들을 독식하진 않았는가? 공산주의라는 미명 하에 북한 지역 내 모든 자산을 국유화함으로써 사실상 김일성 개인의 사유물로 만들진 않았는가? 이처럼 남한이든 북한이든 권력자들은 늘 역사를 그들의 입장에서만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이것을 고치기 위해 민중들은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대한민국의 자유, 복지, 평등은 바로 과거 이 땅 민중들의 피의 대가인 것이다. 우리가 선대의 고마움을 깨닫고, 우리의 왜곡됐던 역사를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 권좌에 앉은 자들의 입장이 아닌 민중의 입장에서 말이다.
3. 제3권 - 1980년에서 90년 초까지
군부, 행정부, 정당 등 각종 권력기구들을 한 손에 거머쥐고 있던 박정희가 갑작스레 죽어버리자, 대한민국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박정희는 자신이 어느 순간 사망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지침을 내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사망 당시, 전두환은 보안사령관의 직책에 있었다. 그리고 전두환을 위시한 ‘하나회’ 회원들은 실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군부 내 실권자의 위치에 있었다. 이들 전두환과 그 졸개들은 박정희가 살아 있을 당시 독재자에 의해 잉태되고, 양육된 세력이었다. 즉 박정희에게 충성을 바칠 충성세력을 키워왔던 것이다. 그리고 독재자에 의해 길러진 괴물들은 또 한 번의 내란을 획책한다. 바로 1212사태이다.
전두환은 보안사령관으로서 군부 내의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 정승화 육참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박정희 죽음과 연관하여 체포해버린다. 이제 전두환을 막을 사람은 남한에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전두환은 철저한 친미주의자였고, 이 점은 미국에게 희소식이었다. 미국이 전두환 및 그 졸개들을 남한 지역의 새로운 지배자로 승인해줬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승만에게 대항했고, 박정희와 투쟁했던 그 민주화의 맥은 여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이들은 새로운 적으로 등장한 전두환과 일전을 벌여야만 했다. 그러나 전두환은 초반에 확실한 기선제압을 하고 나섰다. 바로 광주 518 사태가 그것이다. 민간인을 상대로 군인을, 그것도 특수전 임무를 수행하는 특전여단을 투입한 전두환은, 거친 군화발로 광주를 짓이겨버림으로써 차후 저항의 실마리를 끊어놓고자 했다.
전두환 일당은 김대중을 내란의 수괴로 몰아갔으며, 하나의 소설처럼 ‘빨갱이 집단’을 기획했다. 그리고 이 소설에 이름이 적힌 민주화 인사들은 혹독한 고문과 탄압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민중의 저항의 불씨는 결코 꺼지지 않았으며 이 정신이야말로 빼앗긴 들에 다시금 봄을 찾아오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 민중 저항 정신은 610 항쟁으로 빛을 발한다.
전두환은 그의 충실한 후계자 노태우에게 정권을 이양하고자 했다. 직선제를 두려워한 전두환과 노태우는, 전두환이 그랬듯이 또 다시 체육관에서 대선을 치루고자 했다. 그러나 다시 군인에게 지배 받아야 할 것에 절망한 민중은, 이 커다란 절망을 거친 분노로 표출했다. 바로 610항쟁인 것이다.
과거의 시위가 학생 위주였다면, 이 운동은 소위 ‘넥타이 부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제 사회의 기득권층에 진입함으로써 안정된 생활을 향유할 수 있었던 회사원들조차 지긋지긋한 독재에 신물을 낸 것이다. 회사원마저 정치적 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은 대한민국 전체가 전두환을 증오하고, 그의 파렴치한 간선제를 저지하고자 했음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결국 민중이 승리했고, 독재자는 패배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직선제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비극은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 것일까? 입으로는 민주주의와 국민의 복지를 외쳤던 자칭 김대중, 김영삼 등은 그들의 공적(公敵)인 노태우에 각개격파 당하고 만다. 야당후보 단일화에 성공했더라면, 노태우가 정권을 창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김대중과 김영삼 두 명 중 한명은 상대에게 대선후보 자리를 양보했어야 했다. 이것이야말로 입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한 민주주의인 것이다.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위선적 지도자가 아닌, 스스로 희생함으로서 전체를 위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둘은 끝내 병적인 대통령 집착에 의해 단일화에 실패하였고, 이들의 위선적 행태는 결국 노태우를 대통령 자리에 앉혀주고 만다. 과연 전두환과 노태우만이 역사의 죄인일까? 김대중, 김영삼에게 스스로 죄를 자인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대한민국이 저런 내환으로 시달릴 때, 세계정세는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군사적, 경제적 유일 초강대국이던 미국은 몰락해갔고, 세계 경제권은 다원화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공공연히 핵무장을 시도하고 있었으며,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 공산주의를 몰락했다.
이처럼 우리를 지배하던 열강들이 몰락해가고, 다원주의적 세계정세가 막을 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만큼 한민족에게 자유가 부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1990년대는 통일을 위한 절호의 기회이다. 이 기회를 놓쳐버리면 역사의 조류는 어디로 흘러갈지 장담할 수 없다. 우리의 미래가 탁류가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민중과 그 지도자들의 몫에 달려 있는 것이다.
4. 맺으며
본문을 시작하면서 물음을 던졌다. 왜 책 제목이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인가 하고 말이다. 왜 꼭 다시 써야만 할까? 그 동안 감춰져왔거나 왜곡되었던 거짓이 사실인양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책은 바로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서 시작한다. 일제 수탈로부터 해방되자 우리는 그야말로 ‘광복’을 찾은 듯했다. 하지만 그 광복은 민중의 것이 아닌 지배층의 것에 불과했다. 이승만과 그의 협조자였던 미국, 박정희와 그의 후원자였던 미국, 전두환과 그의 지지자였던 미국은 단 한 번도 이 땅의 평화와 민중의 복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오직 일신의 영달과 권력의 계속적 점유만을 추구했던 것이다.
북한은 또 어떠한가? 김일성을 위시한 북조선공산당은 해방 후 민중의 편에 서서 지주, 자본가 등의 재산을 빼앗았지만, 결국 그것들을 독식하진 않았는가? 공산주의라는 미명 하에 북한 지역 내 모든 자산을 국유화함으로써 사실상 김일성 개인의 사유물로 만들진 않았는가? 이처럼 남한이든 북한이든 권력자들은 늘 역사를 그들의 입장에서만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이것을 고치기 위해 민중들은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대한민국의 자유, 복지, 평등은 바로 과거 이 땅 민중들의 피의 대가인 것이다. 우리가 선대의 고마움을 깨닫고, 우리의 왜곡됐던 역사를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 권좌에 앉은 자들의 입장이 아닌 민중의 입장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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