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오히려 여러 가지의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해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이는 한국교회 속에서 예배와 삶의 부재에서 오는 몇 가지 문제점들 때문이다.
한국교회 만큼 예배의 횟수가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예배는 많이 이루어지지만 대부분의 예배가 “교회 성장”이라는 과제를 향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배학적인 자기 이론 없이 무분별하게 예배의 유형과 내용을 가져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배의 본질을 망각하게 되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예배의 본질인데도 불구하고, 오늘의 교회가 하나님을 만난다는 명목 하에 자기를 만족시키고 인간이 예배의 주체가 되어 “무질서”를 즐기는 성향까지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만남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실천적 모델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엘머타운즈 목사의 “예배 전쟁의 종결”은 우리에게 좋은 지침서가 된다. 저자가 서론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예배를 어떻게 계획할 것인가?” 또는 “학문적 예배 방법론”이 저술의 동기는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교회의 성향과 시도들을 상세하게 보면서 우리 한국교회의 잘못된 예배 형식과 불필요한 예배의 형태들을 가려낼 수 있는 지침서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계속적으로 예배 전재에 대하여 질문을 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예배 전쟁의 일선에서 피 튀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 그것이 설령 한국교회가 부르짖는 숫자와의 싸움이거나, 부흥이라는 명목 하에 저지르는 개척교회 죽이기, 그리고 어느 정도의 교세로 성장하면 누구나 하는 교회 건축 등 우리는 예배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에 더욱 혈안이 되어 있다. 정작 예배는 뒷전일 때가 많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예배 현실에 저자가 던져주는 여섯 가지 예배의 형태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현대 교회의 예배 모습과 성도들의 성향, 예배의 미래까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저자는 여섯 가지의 예배 형태들을 통하여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등 신학적인 문제로 인한 예배 전쟁의 시대가 아닌, 예배의 형태가 어떠한가에 대한 예배의 전쟁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
저자는 여섯 가지 예배의 형태에 나타난 장점과 단점들을 아주 상세히 밝히면서 시의적절한 그 사례까지 제시하면서, 모든 예배의 형태는 성경적 원리에서 파생된 것이므로 서로의 예배의 형태에 대해서 인정을 강력히 요구한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예배 형식은 각자의 개성과 은사와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지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비판보다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는 각각의 예배에 대한 약점과 강점을 자세하게 설명을 하지만 모든 사례들이 미국교회에 국한되어 있어서 한국교회의 예배와는 또 다른 이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여러 가지 유익한 정보와 사례들은 예배에 좋은 자료가 되지만 개혁주의 입장에서 수용할 수 없는 것 또한 있었다.
최근 한국교회의 예배는 전통적인 설교 중심 예배에 음악적인 요소들과 문화적인 도구들을 대폭 가미하여 예배 형식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 특히 예배당 중앙이나 천정에 자리 잡은 대형 스피커와 대중악기들의 동반, 빈번한 CCM의 사용과 영상미디어 활용은 긍정적으로는 예배가 살아있는 느낌을 갖게 되는 반면, 예배의 진지함이나, 거룩함이 결여된 모습으로 예배의 역사와 전통과도 거의 단절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급변하는 한국교회의 예배형식은 분명히 문제가 된다. 비록 한국교회의 예배 변화가 시대의 흐름에 상응하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기독교 본래의 예배 예전과는 분명히 다른 문제점을 가진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통적인 예배의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고착화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우리 교단의 예배 예전을 다시 연구해야 한다. 세대는 결국 변하고 있고 문화는 변하게 되어 있다. 이 옷을 잘 파악하여 예배의 도구로 만드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이제 한국교회도 이러한 예배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다양한 형태의 예배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다양한 형태의 예배가 난무하면서 오늘날 한국 교회 예배는 혼란을 빚고 있다. 이것은 저자가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형태의 예배들 속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예배 인도자들이 분명히 성경적, 역사적, 신학적인 입장에서 예배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예배는 세속화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보다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을 위한 예배로 전락될 위험성은 매우 농후하다. 예배 인도자의 고민은 전통과 문화의 사이에 놓인 긴장을 과연 어떻게 지혜롭게 잘 분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이다. 분명히 예배는 현대의 흐름에 강력한 요소들을 잘 분별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것처럼 더 나은 예배로 진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의 목적은 “근본을 깨닫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듯 과거에 드렸던 어떤 예배보다도 더 많은 확신을 예배에서 경험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예배가 회복해야 할 일이다.
본서에서 제시된 미국교회의 예배 형태는 아마도 한국교회의 미래의 예배형태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예배형식의 나침반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이었다. 저자는 농축된 경험과 자료들을 통하여 이 시대에 어떤 형태의 예배가 적합한지, 교회와 개인의 취향과 능력에 맞게 취사선택할 수 있도록 많은 자료들을 제시하는 것 또한 유익했다. 또한 예배에 대한 논쟁들과 예배 형태들을 통한 적절한 제시와 더불어 기억해야할 원리들을 통한 제안들은 저자의 탁월한 예배의 안목이 가져다주는 좋은 조언임에는 틀림이 없다. 앞으로 어떻게 예배 전쟁을 방지 할 것인가에 대한 열아홉 가지 관찰들과 제안들은 목회를 하는 동안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 주신 교수님께 감사를 드리며, 한 학기 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교회 만큼 예배의 횟수가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예배는 많이 이루어지지만 대부분의 예배가 “교회 성장”이라는 과제를 향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배학적인 자기 이론 없이 무분별하게 예배의 유형과 내용을 가져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배의 본질을 망각하게 되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예배의 본질인데도 불구하고, 오늘의 교회가 하나님을 만난다는 명목 하에 자기를 만족시키고 인간이 예배의 주체가 되어 “무질서”를 즐기는 성향까지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만남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실천적 모델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엘머타운즈 목사의 “예배 전쟁의 종결”은 우리에게 좋은 지침서가 된다. 저자가 서론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예배를 어떻게 계획할 것인가?” 또는 “학문적 예배 방법론”이 저술의 동기는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교회의 성향과 시도들을 상세하게 보면서 우리 한국교회의 잘못된 예배 형식과 불필요한 예배의 형태들을 가려낼 수 있는 지침서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계속적으로 예배 전재에 대하여 질문을 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예배 전쟁의 일선에서 피 튀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 그것이 설령 한국교회가 부르짖는 숫자와의 싸움이거나, 부흥이라는 명목 하에 저지르는 개척교회 죽이기, 그리고 어느 정도의 교세로 성장하면 누구나 하는 교회 건축 등 우리는 예배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에 더욱 혈안이 되어 있다. 정작 예배는 뒷전일 때가 많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예배 현실에 저자가 던져주는 여섯 가지 예배의 형태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현대 교회의 예배 모습과 성도들의 성향, 예배의 미래까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저자는 여섯 가지의 예배 형태들을 통하여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등 신학적인 문제로 인한 예배 전쟁의 시대가 아닌, 예배의 형태가 어떠한가에 대한 예배의 전쟁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
저자는 여섯 가지 예배의 형태에 나타난 장점과 단점들을 아주 상세히 밝히면서 시의적절한 그 사례까지 제시하면서, 모든 예배의 형태는 성경적 원리에서 파생된 것이므로 서로의 예배의 형태에 대해서 인정을 강력히 요구한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예배 형식은 각자의 개성과 은사와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지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비판보다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는 각각의 예배에 대한 약점과 강점을 자세하게 설명을 하지만 모든 사례들이 미국교회에 국한되어 있어서 한국교회의 예배와는 또 다른 이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여러 가지 유익한 정보와 사례들은 예배에 좋은 자료가 되지만 개혁주의 입장에서 수용할 수 없는 것 또한 있었다.
최근 한국교회의 예배는 전통적인 설교 중심 예배에 음악적인 요소들과 문화적인 도구들을 대폭 가미하여 예배 형식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 특히 예배당 중앙이나 천정에 자리 잡은 대형 스피커와 대중악기들의 동반, 빈번한 CCM의 사용과 영상미디어 활용은 긍정적으로는 예배가 살아있는 느낌을 갖게 되는 반면, 예배의 진지함이나, 거룩함이 결여된 모습으로 예배의 역사와 전통과도 거의 단절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급변하는 한국교회의 예배형식은 분명히 문제가 된다. 비록 한국교회의 예배 변화가 시대의 흐름에 상응하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기독교 본래의 예배 예전과는 분명히 다른 문제점을 가진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통적인 예배의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고착화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우리 교단의 예배 예전을 다시 연구해야 한다. 세대는 결국 변하고 있고 문화는 변하게 되어 있다. 이 옷을 잘 파악하여 예배의 도구로 만드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이제 한국교회도 이러한 예배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다양한 형태의 예배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다양한 형태의 예배가 난무하면서 오늘날 한국 교회 예배는 혼란을 빚고 있다. 이것은 저자가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형태의 예배들 속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예배 인도자들이 분명히 성경적, 역사적, 신학적인 입장에서 예배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예배는 세속화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보다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을 위한 예배로 전락될 위험성은 매우 농후하다. 예배 인도자의 고민은 전통과 문화의 사이에 놓인 긴장을 과연 어떻게 지혜롭게 잘 분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이다. 분명히 예배는 현대의 흐름에 강력한 요소들을 잘 분별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것처럼 더 나은 예배로 진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의 목적은 “근본을 깨닫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듯 과거에 드렸던 어떤 예배보다도 더 많은 확신을 예배에서 경험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예배가 회복해야 할 일이다.
본서에서 제시된 미국교회의 예배 형태는 아마도 한국교회의 미래의 예배형태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예배형식의 나침반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이었다. 저자는 농축된 경험과 자료들을 통하여 이 시대에 어떤 형태의 예배가 적합한지, 교회와 개인의 취향과 능력에 맞게 취사선택할 수 있도록 많은 자료들을 제시하는 것 또한 유익했다. 또한 예배에 대한 논쟁들과 예배 형태들을 통한 적절한 제시와 더불어 기억해야할 원리들을 통한 제안들은 저자의 탁월한 예배의 안목이 가져다주는 좋은 조언임에는 틀림이 없다. 앞으로 어떻게 예배 전쟁을 방지 할 것인가에 대한 열아홉 가지 관찰들과 제안들은 목회를 하는 동안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 주신 교수님께 감사를 드리며, 한 학기 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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