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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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석탑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韓國 石塔의 發生과 그 樣式

彌勒寺址의 雙塔 配置

新羅 始源石塔과 그 樣式

韓國 石塔의 典型樣式

石塔 樣式의 變形과 異型塔

본문내용

뚜렷하게 볼 수 있어서 이같은 전설은 후인의 傅會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신라 당시에 외국의 기공이 내왕하였을 것이나 그렇다고 바로 이 탑이 그의 손으로 이루어졌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후대에 이르러 외국의 영향을 보이든지 또는 직접 그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고 추정되는 탑이 있으나 그들은 모두 우리나라 석탑의 주류를 이루는 일반형에 속하는 방형 석탑들이 아니요, 그 자체가 특수 양식에 속하며 한국 석탑의 전통 主脈에서 벗어난 조형임을 지적할 수 있다. 일인이 이같은 전설을 다시 없는 구실로 꼬집어서 불국사와 석굴암의 우수 작품을 아마도 唐土로부터 도래한 우수한 기술자의 손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공언한 것은 그들의 편견이요, 고대 미술의 전통에 눈이 어둡고 상고의 광영을 왜곡하려는 섬나라 사람들의 심정이기도 하다.
이같은 일반형 석탑은 그후, 더욱이 9세기에 이르러서는 신라 고유의 版圖 뿐 아니라 전 국토 내에 전파되었는데 모두 규모에 있어서 축소되고 그에 따라 각부 양식에서-그것은 주로 기단과 옥개의 양부에서- 略化와 장식의 수법이 증가하였음을 보겠다. 이와 같이 탑파 자체에 대한 장엄과 간략화의 수법은 기단과 옥개에 가하여졌는데 이것은 탑이 건축적인 웅대함에서 공예적이고 장식적인 존재로 변하여 가는 과정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경주 遠願寺址 동서 3층탑에는 상층 기단에 十二支像 제1탑신에 사천왕상을 조각하였으며 경주 南山里 등 3층탑에서는 상층 기단에 八部衆을, 求禮 華嚴寺 서5층탑에는 십이지와 팔부중과 사천왕을 기단과 제1탑신에 조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일반형 석탑 자체에 대한 彫飾은 한도가 있는 것임에 탑파에 대한 시대의 장엄 의욕이 증대함에 따라 마침내 8세기 중엽으로부터 위에서 설명하여 온 일반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석탑이 창안 건립케 되었으니 이를 가리켜 異型 탑파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에 속하는 신라의 대표적인 유례로서 경주에서 2기, 지방에서 2기를 들어서 간략히 설명하여 보겠다.
경주 불국사의 多寶塔은 이 계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내외인의 많은 칭찬을 받아 왔다. 서의 석가탑이 간결한 수법과 직선적인 구성과 명쾌한 효과를 기하였음에 대하여 동탑은 기발한 의장과 곡선의 혼용과 우아한 조법을 따르고 있다. 원래 동서에 석가다보의 양탑을 배치함은 法華經의 ‘釋迦如來常住說法 多寶如來常住證明’을 구상한 것으로서 특히 이 다보탑의 기본 구조에 대하여서는 경문에도 설명되어 있으나 석재를 구사하여 方과 圓의 층단을 이루는 그 조형의 妙는 오직 한국 석조탑과 미술의 오랜 전통과 기술 위에서 神工의 출현을 기다려 비로소 이룩할 수 있었다.
오늘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석가다보 양탑에서 고대 석조 미술의 정화를 몸소 깨닫게 됨은 또한 그들을 낳은 당대의 미술 문화에 대한 예찬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오늘에 완존함이 고마울 따름이다.
다음에 전남 구례 화엄사 四獅三層石塔을 들어야 하겠는데 智異山麓인 孝臺 위에 자리잡은 이 탑이야말로 또한 신라 석조 미술의 조화를 보이는 명탑의 하나이다. 방형 하층 기단에는 飛天의 舞樂座像이 돌려 있고 상층 기단은 전통적 양식을 벗어나 四隅柱 대신에 4구의 사자좌상을 배치하고 그 중앙에는 擦柱를 대신하여 等身大의 合掌供養像을 직립케 하였으며, 그 위의 넓은 판석에는 3층의 방형 탑신을 받게 하였다. 이같은 사자탑의 전통은 고려에도 계승되어 경남 咸安, 강원 堤川淮陽 등지에 동계의 작품을 남기고 있는 것은 다보탑이 다시 유례를 남기지 못한 사실과 대비되는 바이다.
이상의 다보사자의 양탑은 모두 이형 석탑의 대표적 작품으로서 한반도의 동서에서 때를 전후하여 이룩된 명탑의 쌍벽을 이루고 있는 바 그 외에도 異型塔으로서 경주 玉山의 淨惠寺址 13층 석탑은 목조 건축을 模한 방형의 초층 탑신 위에 12의 층급이 상륜과도 같이 솟아 있는 현존 유일의 신라 작품이며 전북 남원 實相寺 百丈庵 3층 석탑은 목탑을 模하여 각층마다 난간을 돌린 탑신과 추녀 받침을 蓮花紋石으로 대신한 옥개 양식도 특이하거니와 탑 전체에 불상과 奏樂의 비천좌상을 조식한 것은 또한 다른 동대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아윤하고 섬세한 작품이다. 위에서 들은 4기의 이형탑은 모두 신라 작품이었거니와 고려에 들어서는 다각 다층석탑이 주로 북한 지방을 부대로 삼아 유행하였으니 강원 五臺山 月精寺 9층 석탑이나 일본 동경으로 반출된 평남 大同郡 栗里 8각 5층 석탑 일본 東京 大倉集古館에 건립되고 있는데 중요 미술품으로 지정되었다.
또는 靑石塔으로서 金山寺 6각 다층탑들은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또 고려 말에 이르러 몽고의 영향 밑에서 이루어진 개성 敬天寺址 10층탑은 同系의 유례를 이조에 들어 서울 圓覺寺에 남기었는데 전자는 한말에 일인에 의하여 일본 동경으로 피탈 대파되고 그후 반환되었는데 작년에 재건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일제시에 우리 석탑이 입은 피해로서는 주로 寺址에 고립하던 신라고려의 유구를 함부로 뜯어서 서울로, 일본으로 또는 개인의 정원으로 반출하였으며, 또는 탑내의 사리 보물을 약탈코자 무수한 고대 석탑을 파괴하고야 말았으니 이같은 야만적인 행위는 오늘도 그 상처를 전국 산야 도처에 남기고 있다. 작년 漆谷 松林寺 塼塔에서 창건 당대의 사리 장치가 발견되어서 그 장엄화식이 세인을 놀라게 한 사실은 이러한 파괴 행동을 다시금 자극할까 매우 우려되는 바 있었다. 고대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탑은 신앙과 禁忌가 석탑을 인위적인 파괴에서 人災에서 보존하여 왔었다. 그러나 금일 과연 그들에 대한 국가의 보존책과 국민의 보호 정신이 그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의 탑은 양과 질의 수위에서 우리 고대 문화 유산을 대표하고 있으니 그에 대한 애호와 연구가 겸비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이상 양회에 걸친 소론에서 언급하지 못한 고려의 석탑이나 고승대덕의 묘탑으로서 신라 이래 특이한 발달을 이루는 浮屠에 대하여는 다른 기회를 얻고자 하는 바이다. 탑파에 대한 전문적인 논의로서는 고 高裕燮 선생의 遺著가 있다. 韓國塔婆의 硏究(乙酉文化社 刊, 1948년). 韓國塔婆의 樣式變遷 東方學志 第2輯 1955년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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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1.21
  • 저작시기201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49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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