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생애와 저술
(2) 스피노자의 실체관과 인식론
(3) 스피노자의 정서론
(4) 인간의 굴레
(5) 인간의 자유와 지복
(6) 스피노자의 윤리설에 대한 평가
(2) 스피노자의 실체관과 인식론
(3) 스피노자의 정서론
(4) 인간의 굴레
(5) 인간의 자유와 지복
(6) 스피노자의 윤리설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나의 행위가 외부의 어떤 것에 의해서 좌우됨이 없이 나 스스로의 내적 원인에 의하여 결정되도록 하는 것’이다.
④ 나의 외부의 원인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는 행위의 유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이성적인 타당한 관념을 근거로 행해진 행위이며 두 번째는 신의 영원하고 필연적인 질서를 파악하고 이에 따르는 행위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외부적 원인으로부터 생겨난 격정이나 정념에 휘말림으로써 전혀 정상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고 내적인 동요를 일으키게 되며 이것이 윤리적 문제의 근원이 된다.
⑤ 그렇다면 외부적 원인으로부터 생겨나 인간을 묶는 굴레가 되는 격정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이성적인 타당한 관념을 올바로 인식하여 이성의 인도에 따르는 것과 신의 필연적 질서를 파악하고 주변의 모든 일이 그러한 질서의 전개임을 깨닫고 수용하는 현자의 관조에 도달하는 것이다.
* 그러나 그의 윤리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점에서의 비판이 가능하다. 우선 그의 윤리설이 운명론 또는 숙명론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극단적 정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여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는 충분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주변의 모든 일을 신적 질서의 필연적 전개로 보고 그대로 수용하여 정서적 동요를 피하여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매우 소극적이고 현실도피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이는 물론 현자의 관조일 수도 있지만 달리 표현하면 현실적 체념과 도피일 수도 있다. 윤리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것이 세계의 질서이며 전개라고 보고 수용하는 것은 무척 편리한 사고방식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결코 이러한 수동적 수용과 도피가 바람직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현자의 관조에 도달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것이라고 스피노자 자신도 인정하고 있지만 과연 그러한 일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하여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런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를 보편적인 윤리적 목표로 내세우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 또한 그가 생각한 신의 관념도 문제시된다. 그는 자연과 세계 그리고 신을 동일시하는 범신론적인 형이상학적 신의 관념으로부터 논의를 진행시켰다. 그런데 윤리적 측면과 관련해서는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나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등의 요소를 도입하면서 마치 인격신을 연상시키는 언급을 하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유일 실체로서의 비인격적 신이 어떻게 인간을 사랑하며 또한 인간은 어떻게 그러한 신을 사랑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신과 인간의 합일을 주장하는 신비주의적 색채까지도 보이고 있다. 이는 종교적 측면에서는 수용할 수 있을지 몰라도 철저히 논리적이고 추론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던 스피노자 철학의 결론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 그리고 현대의 분석 윤리적인 논의를 도입하여 검토할 경우에도 스피노자의 윤리설에서는 많은 난점들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모든 개체가 자기를 보존하려는 끝없는 노력을 경주한다’는 그의 기본 전제가 실지로 모든 존재는 자기 보존의 노력을 경주한다는 심리적인 사실 기술의 명제인지 아니면 모든 존재는 그렇게 하여야만 함을 주장하는 윤리적인 가치 규정적 명제인지가 불분명하다. 그리고 스피노자 자신은 ≪에티카≫의 각 부분에서 이 명제를 심리적, 윤리적 측면 모두를 의미하는 것으로 혼용하고 있다. 그리고 두 측면 중 어떤 쪽으로 해석하더라도 이 명제 자체는 증명되어야만 하는 것이지 결코 자명한 원리는 아니다.
* 스피노자의 철학은 당시에 크게 유행하였거나 그가 죽은 후 하나의 학파로 형성되지는 않았다. 특히 그의 주저인 ≪에티카≫가 출판된 직후 가톨릭의 금서 목록에 올랐고 125년 후인 1802년에 이르러서야 보급이 허락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철학을 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스피노자와 거의 동시대에 등장한 라이프니츠의 철학이 독일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하였으므로 스피노자의 영향은 거의 무시되었다. 그러나 Lessing, Goethe 등을 중심으로 스피노자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이루어졌고 그 후 많은 철학자들이 그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사상 중 범신론적 성격이나 자아실현의 노력 등이 크게 주목받은 반면 그의 윤리설은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비교적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였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와서는 자연 개념을 중시하는 그의 실체관을 환경 철학의 기본 입장과 연결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④ 나의 외부의 원인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는 행위의 유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이성적인 타당한 관념을 근거로 행해진 행위이며 두 번째는 신의 영원하고 필연적인 질서를 파악하고 이에 따르는 행위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외부적 원인으로부터 생겨난 격정이나 정념에 휘말림으로써 전혀 정상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고 내적인 동요를 일으키게 되며 이것이 윤리적 문제의 근원이 된다.
⑤ 그렇다면 외부적 원인으로부터 생겨나 인간을 묶는 굴레가 되는 격정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이성적인 타당한 관념을 올바로 인식하여 이성의 인도에 따르는 것과 신의 필연적 질서를 파악하고 주변의 모든 일이 그러한 질서의 전개임을 깨닫고 수용하는 현자의 관조에 도달하는 것이다.
* 그러나 그의 윤리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점에서의 비판이 가능하다. 우선 그의 윤리설이 운명론 또는 숙명론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극단적 정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여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는 충분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주변의 모든 일을 신적 질서의 필연적 전개로 보고 그대로 수용하여 정서적 동요를 피하여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매우 소극적이고 현실도피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이는 물론 현자의 관조일 수도 있지만 달리 표현하면 현실적 체념과 도피일 수도 있다. 윤리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것이 세계의 질서이며 전개라고 보고 수용하는 것은 무척 편리한 사고방식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결코 이러한 수동적 수용과 도피가 바람직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현자의 관조에 도달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것이라고 스피노자 자신도 인정하고 있지만 과연 그러한 일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하여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런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를 보편적인 윤리적 목표로 내세우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 또한 그가 생각한 신의 관념도 문제시된다. 그는 자연과 세계 그리고 신을 동일시하는 범신론적인 형이상학적 신의 관념으로부터 논의를 진행시켰다. 그런데 윤리적 측면과 관련해서는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나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등의 요소를 도입하면서 마치 인격신을 연상시키는 언급을 하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유일 실체로서의 비인격적 신이 어떻게 인간을 사랑하며 또한 인간은 어떻게 그러한 신을 사랑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신과 인간의 합일을 주장하는 신비주의적 색채까지도 보이고 있다. 이는 종교적 측면에서는 수용할 수 있을지 몰라도 철저히 논리적이고 추론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던 스피노자 철학의 결론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 그리고 현대의 분석 윤리적인 논의를 도입하여 검토할 경우에도 스피노자의 윤리설에서는 많은 난점들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모든 개체가 자기를 보존하려는 끝없는 노력을 경주한다’는 그의 기본 전제가 실지로 모든 존재는 자기 보존의 노력을 경주한다는 심리적인 사실 기술의 명제인지 아니면 모든 존재는 그렇게 하여야만 함을 주장하는 윤리적인 가치 규정적 명제인지가 불분명하다. 그리고 스피노자 자신은 ≪에티카≫의 각 부분에서 이 명제를 심리적, 윤리적 측면 모두를 의미하는 것으로 혼용하고 있다. 그리고 두 측면 중 어떤 쪽으로 해석하더라도 이 명제 자체는 증명되어야만 하는 것이지 결코 자명한 원리는 아니다.
* 스피노자의 철학은 당시에 크게 유행하였거나 그가 죽은 후 하나의 학파로 형성되지는 않았다. 특히 그의 주저인 ≪에티카≫가 출판된 직후 가톨릭의 금서 목록에 올랐고 125년 후인 1802년에 이르러서야 보급이 허락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철학을 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스피노자와 거의 동시대에 등장한 라이프니츠의 철학이 독일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하였으므로 스피노자의 영향은 거의 무시되었다. 그러나 Lessing, Goethe 등을 중심으로 스피노자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이루어졌고 그 후 많은 철학자들이 그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사상 중 범신론적 성격이나 자아실현의 노력 등이 크게 주목받은 반면 그의 윤리설은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비교적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였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와서는 자연 개념을 중시하는 그의 실체관을 환경 철학의 기본 입장과 연결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이루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