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말
2. 구림마을과 왕인설화
3. 왕인의 탄생지로 구림이 지목된 이유
4. 왕인축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
5. 맺음말
2. 구림마을과 왕인설화
3. 왕인의 탄생지로 구림이 지목된 이유
4. 왕인축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
5. 맺음말
본문내용
지역축제의 발전방향》 ,p7
한 지역의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것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 지역의 역사성에서 추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지역축제는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그 소재를 찾기 마련이다. 특히 그 지역과 관련된 유명한 인물이나 사건은, 그 지역의 명성을 드러내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에 각각의 지역축제에는 대중적으로 명망있는 인물과 사건이 동원되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러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출발하여, 전라남도 영암군의 <왕인문화축제>에 있어서 지역축제와 지역사의 연결고리를 올바르게 설정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왕인문화축제>의 중요한 소재를 구성하고 있는 ‘왕인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그 축제의 무대를 이루는 ‘영암 구림이라는 지역’의 상호 관련성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왕인문화축제>는 구림리 성기동에서 탄생했다고 전해지는 왕인탄생설화와 지역내 다양한 문화행사 등이 결합된 전남의 대표적인 지역축제 중의 하나이다. <왕인문화축제>가 열리는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일대는 지역 특유의 장소적 매력요인이 왕인 탄생설화와 결합되어 외부 관광객들을 유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왕인의 구림 탄생설화는 일제시대 때의 내선일체라는 불순한 의도로 조작된 설화임의 가능성이 있다. 이를 근거로 하는 영암의 <왕인문화축제>는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영암의 <왕인문화축제>는 왕인이 영암 구림에서 태어났다는 전제 하에 개최되고 있는데 이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그 이유는 왕인의 영암 구림의 출생설은 일제시대 일본인 조선인을 대상으로 내선일체정책으로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것으로 즉, 일본이 왕인을 내세우고 선양한 것은 대동아정책의 일환이었으며 특히 내선일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또 내선일체만이 조선지배의 근간임을 강조하였다. 이를 확립하기 위해 백제와 일본의 돈독한 관계를 강조하면서 일본인이 존경하는 학자 왕인을 추앙하고 일본과 한국의 내선일체를 내세웠다. 이렇듯 왕인출생설의 전제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영암의 <왕인문화축제>는 일제시대 일본의 불순한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내선일체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왕인의 출생설을 활용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암의 <왕인문화축제>가 갖는 의미가 있다.
왕인의 출생설에 대해 일제가 표방한 내선일체라는 불순한 의도와 목포 영암을 중심으로 일제시대의 한중일를 연결하는 대동아정책의 일환이 내포되어 있다. 이것은 비평하여 마땅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영암을 살펴보면 서남해단지와 대불공단의 발달 가능성과 함께 고대시대의 국제적인 항구 구림(상대포)은 한중일을 연결하는 국제항구 역할과 문화를 연결하였다. 이런 사실을극대화시켜 국제적인 영암이미지를 창출하려는 목적으로 축제를 기획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림마을을 왕인의 탄생지로 지목했던 것의 또 다른 의미를 찾으려 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축제에 대한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주민들의 영암이 국제도시라는 자부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지역을 사랑하는 애즛심을 가지는 계기와 축제를 통한 지역활성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영암의 <왕인문화축제>는 일본의 불순한 의도로 영암에서 출생되었다는 설을 내포하였지만, 영암에서 행해지고 있는 축제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고 한중일을 연결하는 국제적인 도시라는 이미지를 살려 축제를 기획한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왕인문화축제>의 질적 성장을 위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될 과제이다. 또 영암지역의 총체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지역문화환경의 내적 성장을 위한 지역내 역량 있는 문화단체를 발굴, 육성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이런 영암의 <왕인문화축제>에 대한 축제의 정당성과 타당성에 대한 물음의 해답은 하루빨리 해답을 찾아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섣부른 판단을 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래서 (저의) 해답은 물음표(?)와 느낌표(!)이다.
5. 맺음말
왕인은 고대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 등의 선진문물를 전해준 학자로서 일본 고대문화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이다. 왕인은 영암의 구림에서 태어났다는 ‘영암출생설‘은 일제시대에 일본인 조선인을 대상으로 내선일체(內鮮一體)정책으로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즉, 일본이 왕인을 내세우고 선양한 것은 대동아정책의 일환이었으며 특히 내선일체(內鮮一體)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왕인의 영암출생설은 일제의 불순화된 의도에서 조작된 설화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구림마을 이외의 어떤 다른 지역에서도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왕인에 대한 설화가 구림마을에만 구체성과 총체성을 띠면서 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왕인 설화에 대한 의미를 달리 살펴볼 수가 있다.
먼저, 왕인이 도일했다는 구림마을의 상대포는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와 있듯이, 고대 국제항구로 명성을 날리던 곳이었다. 그 시기는 구림마을 일대에는 영간강유역 해상세력이 3~6세기에 ’옹관고분사회‘가 존속된 시기로서 우연이지만, 의미 있는 우연이다. 이들은 서남해 바다와 영산강을 통로로 하여 문화적 정치적 연대를 강화해 갔던 한편으로 역시 바다를 통해서 한반도 내의 타 세력집단과는 물론, 중국대륙 및 일본과도 세력집단들과도 문화교류를 활발히 진행되어 갔다. 후대에 이르러 구림이 왕인의 출생지로 알려지게 된 것은 고대 해양교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구림지역의 지정학적 조건과 관계가 있다. 이처럼 고대 항구와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영암출신의 학자 왕인은, 옹관고분사회에 존속하던 시대에 서남부지방의 해양문화를 뒷받침해 주고 있는 상징적 인물이 될 만하다.
이를 통해 매년 4월에 영암에서는 왕인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일제가 표방한 내선일체의 불순한 의도 자체는 비평되어 마땅하지만, 역사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고대의 구림(상대포)은 한중일을 연결하는 국제항구로 현대의 시점에서 국제도시 영암이라는 긍적적인 측면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축제를 기획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리고 영암의 왕인문화축제의 정당성과 타당성에 대한 해답은 물음표(?)와 느낌표(!)이다.
한 지역의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것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 지역의 역사성에서 추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지역축제는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그 소재를 찾기 마련이다. 특히 그 지역과 관련된 유명한 인물이나 사건은, 그 지역의 명성을 드러내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에 각각의 지역축제에는 대중적으로 명망있는 인물과 사건이 동원되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러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출발하여, 전라남도 영암군의 <왕인문화축제>에 있어서 지역축제와 지역사의 연결고리를 올바르게 설정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왕인문화축제>의 중요한 소재를 구성하고 있는 ‘왕인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그 축제의 무대를 이루는 ‘영암 구림이라는 지역’의 상호 관련성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왕인문화축제>는 구림리 성기동에서 탄생했다고 전해지는 왕인탄생설화와 지역내 다양한 문화행사 등이 결합된 전남의 대표적인 지역축제 중의 하나이다. <왕인문화축제>가 열리는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일대는 지역 특유의 장소적 매력요인이 왕인 탄생설화와 결합되어 외부 관광객들을 유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왕인의 구림 탄생설화는 일제시대 때의 내선일체라는 불순한 의도로 조작된 설화임의 가능성이 있다. 이를 근거로 하는 영암의 <왕인문화축제>는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영암의 <왕인문화축제>는 왕인이 영암 구림에서 태어났다는 전제 하에 개최되고 있는데 이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그 이유는 왕인의 영암 구림의 출생설은 일제시대 일본인 조선인을 대상으로 내선일체정책으로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것으로 즉, 일본이 왕인을 내세우고 선양한 것은 대동아정책의 일환이었으며 특히 내선일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또 내선일체만이 조선지배의 근간임을 강조하였다. 이를 확립하기 위해 백제와 일본의 돈독한 관계를 강조하면서 일본인이 존경하는 학자 왕인을 추앙하고 일본과 한국의 내선일체를 내세웠다. 이렇듯 왕인출생설의 전제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영암의 <왕인문화축제>는 일제시대 일본의 불순한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내선일체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왕인의 출생설을 활용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암의 <왕인문화축제>가 갖는 의미가 있다.
왕인의 출생설에 대해 일제가 표방한 내선일체라는 불순한 의도와 목포 영암을 중심으로 일제시대의 한중일를 연결하는 대동아정책의 일환이 내포되어 있다. 이것은 비평하여 마땅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영암을 살펴보면 서남해단지와 대불공단의 발달 가능성과 함께 고대시대의 국제적인 항구 구림(상대포)은 한중일을 연결하는 국제항구 역할과 문화를 연결하였다. 이런 사실을극대화시켜 국제적인 영암이미지를 창출하려는 목적으로 축제를 기획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림마을을 왕인의 탄생지로 지목했던 것의 또 다른 의미를 찾으려 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축제에 대한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주민들의 영암이 국제도시라는 자부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지역을 사랑하는 애즛심을 가지는 계기와 축제를 통한 지역활성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영암의 <왕인문화축제>는 일본의 불순한 의도로 영암에서 출생되었다는 설을 내포하였지만, 영암에서 행해지고 있는 축제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고 한중일을 연결하는 국제적인 도시라는 이미지를 살려 축제를 기획한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왕인문화축제>의 질적 성장을 위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될 과제이다. 또 영암지역의 총체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지역문화환경의 내적 성장을 위한 지역내 역량 있는 문화단체를 발굴, 육성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이런 영암의 <왕인문화축제>에 대한 축제의 정당성과 타당성에 대한 물음의 해답은 하루빨리 해답을 찾아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섣부른 판단을 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래서 (저의) 해답은 물음표(?)와 느낌표(!)이다.
5. 맺음말
왕인은 고대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 등의 선진문물를 전해준 학자로서 일본 고대문화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이다. 왕인은 영암의 구림에서 태어났다는 ‘영암출생설‘은 일제시대에 일본인 조선인을 대상으로 내선일체(內鮮一體)정책으로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즉, 일본이 왕인을 내세우고 선양한 것은 대동아정책의 일환이었으며 특히 내선일체(內鮮一體)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왕인의 영암출생설은 일제의 불순화된 의도에서 조작된 설화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구림마을 이외의 어떤 다른 지역에서도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왕인에 대한 설화가 구림마을에만 구체성과 총체성을 띠면서 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왕인 설화에 대한 의미를 달리 살펴볼 수가 있다.
먼저, 왕인이 도일했다는 구림마을의 상대포는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와 있듯이, 고대 국제항구로 명성을 날리던 곳이었다. 그 시기는 구림마을 일대에는 영간강유역 해상세력이 3~6세기에 ’옹관고분사회‘가 존속된 시기로서 우연이지만, 의미 있는 우연이다. 이들은 서남해 바다와 영산강을 통로로 하여 문화적 정치적 연대를 강화해 갔던 한편으로 역시 바다를 통해서 한반도 내의 타 세력집단과는 물론, 중국대륙 및 일본과도 세력집단들과도 문화교류를 활발히 진행되어 갔다. 후대에 이르러 구림이 왕인의 출생지로 알려지게 된 것은 고대 해양교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구림지역의 지정학적 조건과 관계가 있다. 이처럼 고대 항구와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영암출신의 학자 왕인은, 옹관고분사회에 존속하던 시대에 서남부지방의 해양문화를 뒷받침해 주고 있는 상징적 인물이 될 만하다.
이를 통해 매년 4월에 영암에서는 왕인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일제가 표방한 내선일체의 불순한 의도 자체는 비평되어 마땅하지만, 역사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고대의 구림(상대포)은 한중일을 연결하는 국제항구로 현대의 시점에서 국제도시 영암이라는 긍적적인 측면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축제를 기획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리고 영암의 왕인문화축제의 정당성과 타당성에 대한 해답은 물음표(?)와 느낌표(!)이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