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서에 나타난 계약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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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 론

1. 호세아와 계약전승의 관계

2. 호세아의 계약전승 선포양식

결 론

본문내용

요하다. 호세아서에 나타나고 있는 그 대표적 양식은 6:1-3 ; 14:1-3[2-4] ; 그리고 12:6[7]와 10:12 등에서 그 대표적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양조(樣造)는 <촉구명령>+<명령이유제시>로서 구성되었다. 즉
6:1-3
14:1-3[2-4]
촉구명령 :
명령이유 :
촉구명령 :
오라! 돌아가자! 야훼에게로(1a)
왜냐하면(ki) 그는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 (1b-2)
야훼를 알자! 힘써 야훼를 알자! ·········과 같으신 그 분을!(3)
돌아오라! 너의 하나님 야훼에게로!(1a)
왜냐하면(ki) 네가 불의함으로 인하여 엎드려졌기 때문에(1b)
······ 야훼에게로 돌아가라! 그리고 그에게 아뢰어라 ······ (2-3)
12:6[7]
10:12
촉구명령 :
명령이유 :
나는 너희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라 <헷세드>와 공의를 지켜라! 항상 너희 하나님을 기다리라!(6)
너희를 위하여 정의의 씨를 뿌려라! <헷세드>의 열매를 거두라!
묵은 땅을 기경하라(12a)
왜냐하면 지금은 구원을 비처럼 내리시도록 하기 위하여 야훼를 찾을 때이기 때문이다(12b).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은 예언자적 촉구명령양식은, 부르지만에 의하면, cf. Brueggemann, ibid., pp.82-83.
계약공동체의 옛 계약전승으로부터 왔다. 그러나, 옛 계약의식들은 깨어진 계약의 회복과 관련되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옛 계약양식은 “존재치 않았던” 계약을 수립하고 비준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지 깨어진 옛 것의 회복을 위하여 고안된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회개촉구의 양식과 옛 계약의식과는 연결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는 않다. 그들 사이의 접촉점은 <철저한 실천의 추구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옛 계약의식은 배타적 충성을 요구하고 있는데 옛 계약의식의 배타적 충성촉구는 호세아서에 나타나는 새로운 계약수립의 촉구와 상응하고 있다. Brueggemann은 이들 사이의 상응을 지지해주는 학자로서 Edwin M. Good와 J. Wijngaards를 든다. cf. Ibid., p.154.
따라서 호세아서의 회개촉구의 양식은 여러 개약들에서 발견되는 배타적 충성의 요구가 생사의 결단 요구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생사의 결단을 촉구하는 초기의 계약전승의 한 양식은 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십계명 30:19b
촉구명령 : 내가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 즉 너는 <생명을 선택하라>
명령이유 : 왜냐하면 (lemaan) 너와 네 후손이 살기 위하여
위의 “선택하라”라는 촉구명령은(비교 : 수 24:15 ;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날 선택하라!) 호세아서의 “돌아오라”와 동일한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여기에 나오는 “생명”은 호세아서에서는 공의, 신의, 헷세드, 하나님에 대한 지식 등의 계약에의 충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계약의식의 컨텍스트에서 볼 때 호세아서의 회개 촉구는 야훼의 배타적 충성요구에 해당한다 하겠다.
이상의 제(諸) 관찰들을 통해서 볼 때, 예언자는 시대의 파수군으로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야훼에게로 돌아와 <계약>안에 살도록 촉구하는 <회개촉구자> Brueggemann은 “예언자란 회개의 교사(敎師)”라는 개념을 배척하는 C. Westermann의 견해 Basic forms of Prophetic를 반박한다(Basic Words, p.19).
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동시에 예언자는, 계약이 깨어진 현실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징벌이 온다는 것을 선포해야 함과 동시에(고소와 선고) 또한 역사의 주권자는 야훼이시기 때문에 징벌은 또한 역시 피할 수 있는 것이다는 <구원신탁>을 함께 선포해야 했던 자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예언자적 외침의 근거는 어디까지나 옛 전승의 양식에 두고 있었다.
결 론
예언자의 기능은 전승과 무관한 “새로운 말”을 창조해내거나 영적 혜안을 가지고 미래를 점정(占定)하는 일은 아니다. 예언자적 신탁은 결코 예언자 제 멋대로의 진술에 의해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잘 다듬어진 전문용어에 의해서 구성되었다. 즉 이상의 논구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에 의하면, 예언자야 말로 가장 옛 전승에 충실했던 자임을 알았다. 실로, 전승은 예언자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부표>(浮漂:buoy)였다. 이스라엘 예언자들, 예언자들의 개혁과 비판, 그리고 현실고발, 그 뿐만 아니라 구원신탁까지도 어디까지나 옛 전승이 물려 준 텍스트를 근거한 것이었고 예언자 자신의 분노(prophetic anger)의 표현이나 예언자 자신의 감정변화의 표현 또는 예언자 자신의 자기 이념의 구현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또한 기존의 텍스트에만 매여 있는 전통주의자, 또는 율법주의자들도 물론 아니었다. 호세아의 전승응용 양식에 관한 고찰을 통해서 보아온대로, 예언자는 옛 전승의 가장 본질적인 캐리그마를 “오늘”에 적용시키고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자였다. 예언자는 개혁가가 아니라 전승의 해석가였다. 그러나, 그 전승들을 해석하는 해석의 근거는 어디까지나 전혀 배타적으로 “야훼”였고 그리고 그 야훼께서 자기계시의 실체로서 주신 “계약”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제의의 규범과 관습을 비판한 것은 전혀 계약율법 속에 담긴 야훼의 뜻을 사수하기 위함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계약전승의 배경을 떠난 예언자적 사명은 거짓이요 기만일 뿐이다. 예언자는 오직 야훼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야훼의 뜻 즉, 계약의 뜻은, 구원[약속]신탁 양식에서 만이 아니라 초기 예언서에서 “더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심판선포[재판]양식 속에서도 궁극적으로는 야훼와 이스라엘이 “깨어지지 않은 계약”(an unbroken covenant) 아래 있는 것이라는 것 cf. C. Westermann, The OT and Jesus Christ, p.40.
을 호세아는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는 야훼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파악을 통하여 옛 계약신학의 전승을 신학적으로 재해석한 가장 탁월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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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4.18
  • 저작시기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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