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종교의 정의
1. 부정적인 정의
2. 긍정적인 정의
1) 주지주의적인 정의
2) 주정주의적인 정의
3) 주의주의적인 정의
4) 주지적이고 주정적이고 주의적인 정의
Ⅲ. 종교의 역할
Ⅳ. 종교의 합리화
Ⅴ. 종교의 해방
Ⅵ. 종교의 수용
1. 종교수용과 종교 간의 대화
2. 종교수용을 저해하는 몇 가지 요소
1) 극단적인 배타주의
2) 극단적인 포괄주의
3) 일반적인 병행주의
3. 종교수용을 위한 문제점과 수용의 위한 제안
Ⅶ. 종교와 과학
1. 터툴리아누스와 아구스티누스
2. 중세 과학의 선구자
3. 16세기 : 과학과 신학의 투쟁기
1) 코페르닉스(1473-1543)
2) 부루노(Giordano Bruno,1548-1600)
3) 케플러(J.Kepler,1571-1630)
4) 갈릴레이(Galileo Galilei,1564-1642)
5) 종교개혁자들의 견해
Ⅷ. 종교와 문화
Ⅸ. 결론 및 시사점
참고문헌
Ⅱ. 종교의 정의
1. 부정적인 정의
2. 긍정적인 정의
1) 주지주의적인 정의
2) 주정주의적인 정의
3) 주의주의적인 정의
4) 주지적이고 주정적이고 주의적인 정의
Ⅲ. 종교의 역할
Ⅳ. 종교의 합리화
Ⅴ. 종교의 해방
Ⅵ. 종교의 수용
1. 종교수용과 종교 간의 대화
2. 종교수용을 저해하는 몇 가지 요소
1) 극단적인 배타주의
2) 극단적인 포괄주의
3) 일반적인 병행주의
3. 종교수용을 위한 문제점과 수용의 위한 제안
Ⅶ. 종교와 과학
1. 터툴리아누스와 아구스티누스
2. 중세 과학의 선구자
3. 16세기 : 과학과 신학의 투쟁기
1) 코페르닉스(1473-1543)
2) 부루노(Giordano Bruno,1548-1600)
3) 케플러(J.Kepler,1571-1630)
4) 갈릴레이(Galileo Galilei,1564-1642)
5) 종교개혁자들의 견해
Ⅷ. 종교와 문화
Ⅸ. 결론 및 시사점
참고문헌
본문내용
주의적 종교개념으로부터 종교와 문화의 관계를 궁극적 관심으로서의 종교는 의미를 주는 자로서의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기본적 관심이 그 자신을 표현한 형체들의 총계라 한다. 문화 활동 속에서 종교는 실체이며, 종교 활동 속에서 문화는 형식이다. 즉 종교가 의미를 유입케 하는 무조건적인 어떤 것에 의지적으로 초점 맞추어지는 것이라면 문화는 의미의 형태나 내용에 실체적으로 초점 맞추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意識이 의미의 특별한 형태들이나 그 형태들의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면 문화와 관계하고 있는 것이며, 의식이 무조건적인 것이나 의미를 유입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면 종교를 갖는 것이 된다라 한다. 문화가 특수한 형태의 의미의 성취와 그들의 통합을 지향하는 모든 영적 행위의 總計라면 종교는 의미 통합의 성취를 통하여 무조건적인 의미(The Unconditioned Meaning)를 파악하려고 지향하는 모든 靈的 행위의 總計이다. 문화와 종교가 만나는 영역은 의미의 통합을 향한다는 공동 지향성에 있다.
문화와 종교는 둘 다 의미의 표현들인데 전자가 실존적 형식이나 내용을 통하는 것임에 반해 후자는 본질적 유입을 통하는 것이다. 어떠한 문화적 표현들도 비록 그들의 의도가 종교적이지는 아닐지라도 종교적 실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즉 문화 신학은 문화 속의 종교적 핵심을 발견하기 위한, 문화의 실체에 관한 체계적 분석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문화 인류학이 의미 체계의 분석에 주로 관심을 둔다면 신학이나 종교학은 의미의 擔持者로서의 象徵의 분석과 우리에게 드러나는 存在(Being)의 의미에 주로 관심을 두며 철학은 존재 자체의 구조에 주로 관심을 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P.Tillich의 견해는 Martin Heidegger가 이해 자체에 본유하고 있는 시간성이 언제나 과거 현재 미래에 의해 보고 있음 속에 있으며 이해는 인간이 실존적 생활세계 안에서의 그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파악할 힘이라고 말하면서 이해를 해석의 근거로 본 입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M.Heidegger는 해석에 있어서 이해는 다른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해는 자기자신이 되는 것이며 그러한 해석은 실존론적으로 이해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이해가 해석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해석은 이해된 것을 납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해 속에 企投된 가능성을 완성하는 것이다라 한다. 따라서 이렇듯 조건적으로 드러나는 해석의 다양한 現狀性과 해석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는 무조건적인 것인 이해의 先在性으로 해석과 이해를 이분법적으로 설명한 입장은 존재의 의미와 존재 자체로 나누어 전개하는 논조와 같은 思惟의 Paradigm인데, 이는 의미 체계로서의 문화와 의미의 담지자로서의 무조건적 존재를 지향하는 종교로 나누어 설명하는 데에도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문화 혹은 그것의 역사성이란 인간이 그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지각하면서 해석함인데 의미의 추궁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낸다. 인간의 역사란 관계의 지각에 관한 인간의 해석이며 그것의 파악은 의미의 해석을 통해서이다. E.Cassirer(1874-1945)가 말했던 것처럼 역사는 이해된 관계(의미)이며, 역사가 의미의 체험적 범주에 의해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는 그러한 새로운 실제의 차원에 관한 인간의 해석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의미는 역사의 본질이다.
의미의 추궁 혹은 의미의 해석이라는 점에서 문화 혹은 역사성은 다양성과 상대성을 띠게 되는 것이며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이해의 선재성을 요청하면서 그것의 상대성으로부터 빚어질 수 있는 문화 갈등의 融和를 위한 상징 체계를 요청한다.
Ⅸ. 결론 및 시사점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안, 근심, 혼란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들은 종교를 개인의 무사태평과 안일한 삶을 위한 방패로 인식하고 있는 점이 문제이다. 이런 부류의 종교인들은 현세에서의 물질적인 풍요가 내세까지도 계속 되어지기를 바라며, 한번도 진정한 자기반성을 하지 못하고, 깊은 신앙심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맹목적으로 죽음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이비 종교집단에 휘말려서 우상숭배를 하고, 진정한 신앙심 없이 그저 안일한 생각으로 종교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비판하는 것이 곧 현대의 무신론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겪는 고통과 불안, 죽음 등의 실체에 대해 알아 보았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인간의 삶의 일부이며 인간이 생각하기에 따라서 고통이 될 수도 있고, 희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이러한 두려움의 대상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종교에 귀속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요즘은 인간의 종교에 대한 안일한 생각을 무신론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사람들이 겪는 모든 고통이나 불안은 그 사람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이런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종교에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그것에 맞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불안과 절망 속에서 희망적인 생각을 하면서 자신이 지금 처해있는 상황에 성실히 대처하 나감으로써 점점 불안을 희망으로 승화시켜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겪는 병 또한 아무리 뛰어나 의학의 힘을 빌린다 하더라도 그 근본적 치로는 의학이 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전문화되고 자동화되어가는 현대산업사회 속에서 인간은 점점 개성을 잃어가고 그날그날 무사히 견딜 수 있기만을 바라는 그런 나약한 존재가 되 버렸다. 사람에게 있어서 절망과 불안, 고통, 죽음에 대한 초조가 있다면 반면에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고 희망이 있고, 그것을 극복할 스스로의 의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인간적 고통을 종교의 힘이 아닌 인간 본연의 힘으로 극복되어질 때야 비로소 인간은 죽음과 고통의 불안으로부터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 가브리엘 모란, 사미자 역(1988), 종교교육발달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 니니안 스마트, 강돈구 역(1986), 현대 종교학, 청년사
◎ 이돈희(1986), 도덕교육, 교육과학사
◎ 이안베버, 종교와 과학
◎ 정진홍(1985), 종교문화의 만남, 신학사상
◎ 존 H. 힉, 황필호 역(1984), 종교철학개론, 종로서적
문화와 종교는 둘 다 의미의 표현들인데 전자가 실존적 형식이나 내용을 통하는 것임에 반해 후자는 본질적 유입을 통하는 것이다. 어떠한 문화적 표현들도 비록 그들의 의도가 종교적이지는 아닐지라도 종교적 실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즉 문화 신학은 문화 속의 종교적 핵심을 발견하기 위한, 문화의 실체에 관한 체계적 분석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문화 인류학이 의미 체계의 분석에 주로 관심을 둔다면 신학이나 종교학은 의미의 擔持者로서의 象徵의 분석과 우리에게 드러나는 存在(Being)의 의미에 주로 관심을 두며 철학은 존재 자체의 구조에 주로 관심을 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P.Tillich의 견해는 Martin Heidegger가 이해 자체에 본유하고 있는 시간성이 언제나 과거 현재 미래에 의해 보고 있음 속에 있으며 이해는 인간이 실존적 생활세계 안에서의 그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파악할 힘이라고 말하면서 이해를 해석의 근거로 본 입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M.Heidegger는 해석에 있어서 이해는 다른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해는 자기자신이 되는 것이며 그러한 해석은 실존론적으로 이해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이해가 해석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해석은 이해된 것을 납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해 속에 企投된 가능성을 완성하는 것이다라 한다. 따라서 이렇듯 조건적으로 드러나는 해석의 다양한 現狀性과 해석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는 무조건적인 것인 이해의 先在性으로 해석과 이해를 이분법적으로 설명한 입장은 존재의 의미와 존재 자체로 나누어 전개하는 논조와 같은 思惟의 Paradigm인데, 이는 의미 체계로서의 문화와 의미의 담지자로서의 무조건적 존재를 지향하는 종교로 나누어 설명하는 데에도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문화 혹은 그것의 역사성이란 인간이 그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지각하면서 해석함인데 의미의 추궁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낸다. 인간의 역사란 관계의 지각에 관한 인간의 해석이며 그것의 파악은 의미의 해석을 통해서이다. E.Cassirer(1874-1945)가 말했던 것처럼 역사는 이해된 관계(의미)이며, 역사가 의미의 체험적 범주에 의해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는 그러한 새로운 실제의 차원에 관한 인간의 해석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의미는 역사의 본질이다.
의미의 추궁 혹은 의미의 해석이라는 점에서 문화 혹은 역사성은 다양성과 상대성을 띠게 되는 것이며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이해의 선재성을 요청하면서 그것의 상대성으로부터 빚어질 수 있는 문화 갈등의 融和를 위한 상징 체계를 요청한다.
Ⅸ. 결론 및 시사점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안, 근심, 혼란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들은 종교를 개인의 무사태평과 안일한 삶을 위한 방패로 인식하고 있는 점이 문제이다. 이런 부류의 종교인들은 현세에서의 물질적인 풍요가 내세까지도 계속 되어지기를 바라며, 한번도 진정한 자기반성을 하지 못하고, 깊은 신앙심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맹목적으로 죽음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이비 종교집단에 휘말려서 우상숭배를 하고, 진정한 신앙심 없이 그저 안일한 생각으로 종교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비판하는 것이 곧 현대의 무신론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겪는 고통과 불안, 죽음 등의 실체에 대해 알아 보았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인간의 삶의 일부이며 인간이 생각하기에 따라서 고통이 될 수도 있고, 희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이러한 두려움의 대상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종교에 귀속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요즘은 인간의 종교에 대한 안일한 생각을 무신론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사람들이 겪는 모든 고통이나 불안은 그 사람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이런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종교에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그것에 맞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불안과 절망 속에서 희망적인 생각을 하면서 자신이 지금 처해있는 상황에 성실히 대처하 나감으로써 점점 불안을 희망으로 승화시켜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겪는 병 또한 아무리 뛰어나 의학의 힘을 빌린다 하더라도 그 근본적 치로는 의학이 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전문화되고 자동화되어가는 현대산업사회 속에서 인간은 점점 개성을 잃어가고 그날그날 무사히 견딜 수 있기만을 바라는 그런 나약한 존재가 되 버렸다. 사람에게 있어서 절망과 불안, 고통, 죽음에 대한 초조가 있다면 반면에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고 희망이 있고, 그것을 극복할 스스로의 의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인간적 고통을 종교의 힘이 아닌 인간 본연의 힘으로 극복되어질 때야 비로소 인간은 죽음과 고통의 불안으로부터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 가브리엘 모란, 사미자 역(1988), 종교교육발달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 니니안 스마트, 강돈구 역(1986), 현대 종교학, 청년사
◎ 이돈희(1986), 도덕교육, 교육과학사
◎ 이안베버, 종교와 과학
◎ 정진홍(1985), 종교문화의 만남, 신학사상
◎ 존 H. 힉, 황필호 역(1984), 종교철학개론, 종로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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