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남북전쟁 후의 남부
1. 분리되더라도 평등하다면
2. 사적 폭력의 심화
Ⅲ. 린치(Lynch)의 어원
1. 흑인린치의 역사
2. 흑인린치 사례들
3. 흑인린치 사건들의 공통점
Ⅳ. 결론
Ⅱ. 남북전쟁 후의 남부
1. 분리되더라도 평등하다면
2. 사적 폭력의 심화
Ⅲ. 린치(Lynch)의 어원
1. 흑인린치의 역사
2. 흑인린치 사례들
3. 흑인린치 사건들의 공통점
Ⅳ. 결론
본문내용
미취학 아동들부터 심지어 3~4세의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들의 표정을 살펴보면 끔찍한 사건현장 앞에서 찍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또한 린치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시체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은 물론 그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서 가까운 친구나 친지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린치는 백인들이 함께 즐기면서 그들의 공동체 의식을 다시 한 번 공고하게 다져주는 하나의 행사였고, 이를 사진이나 엽서 등의 기록으로 남겨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전국적인 여가활동’의 형태를 띠었던 것이다. 박진빈, 『백색국가 건설사』, 앨피, 2006
Ⅳ. 결론
1863년 노예해방이 이루어졌음에도 인종차별정책이 1960년대에 들어서 법적으로 폐지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금의 흑인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쟁취하기까지 그들에게는 많은 고난이 있었고, 흑인린치는 그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일면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벌어진 흑인린치는 흑인을 노예로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했던 긴 노예역사와 당시 사회진화론, 백인우월주의와 같은 사상들이 함께 맞물려 생긴 끔찍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백인과 흑인. 그리고 아시아인을 포함해 인간을 피부색에 따라 ‘인종’이라고 나누는 이 분류법은 어찌 보면 단순한 논리지만, 이 단순한 논리가 인간에게 심어놓은 왜곡된 인식은 가끔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곤 한다. 피부색만 다를 뿐 우린 결국 모두 똑같은 인간이지만 인종을 넘어 상대방을 나와 똑같은 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거기에 하나, 둘 편견이 더해지기 시작할 때 갈등은 발생하는 것이다.
흑인린치는 인간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잔혹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과거완료로 치부하고 단순히 넘길 수는 없다. 지금도 분명히 미국의 흑백갈등은 존재하고, 미국 어딘 가에선 이 갈등이 흑인을 향한 폭력으로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미국 곳곳에 KKK단이 존재하고 심지어 히틀러와 나치즘을 신봉하는 신나치주의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마 이러한 현상이 완전히 사라지길 바란다는 건 우리들의 소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우만 봐도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수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늘어난 지금, 백인과 달리 흑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과 대우가 사회문제로 자주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시간에 이런 현상이 바뀌길 바라긴 어려울 것이다. 고정관념과 편견이란 것이 그래서 무서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것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우리들로부터 시작한 작은 변화가 언젠간 ‘인종’이란 이름으로 일어나는 차별의 벽과 폭력의 굴레를 완전한 과거사로 만들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박진빈, 『백색국가 건설사』, 앨피, 2006
프란시스 휘트니外, 『미국의 역사』, Human&Books, 2004
손세호, 『하룻밤에 읽는 미국사』, 랜덤하우스, 2007
앨런 브링클리,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휴머니스트, 2005
사루야 가나메, 『검증, 미국사 500년의 이야기』, 행담출판, 2007
케네스 데이비스,『미국에 대해 앍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책과함께, 2004
참고사이트
http://www.withoutsanctuary.org
http://www.blogsandbloggers.com
http://korea.gnu.org/people/chsong/copyleft/us-constitution.html
Ⅳ. 결론
1863년 노예해방이 이루어졌음에도 인종차별정책이 1960년대에 들어서 법적으로 폐지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금의 흑인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쟁취하기까지 그들에게는 많은 고난이 있었고, 흑인린치는 그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일면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벌어진 흑인린치는 흑인을 노예로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했던 긴 노예역사와 당시 사회진화론, 백인우월주의와 같은 사상들이 함께 맞물려 생긴 끔찍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백인과 흑인. 그리고 아시아인을 포함해 인간을 피부색에 따라 ‘인종’이라고 나누는 이 분류법은 어찌 보면 단순한 논리지만, 이 단순한 논리가 인간에게 심어놓은 왜곡된 인식은 가끔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곤 한다. 피부색만 다를 뿐 우린 결국 모두 똑같은 인간이지만 인종을 넘어 상대방을 나와 똑같은 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거기에 하나, 둘 편견이 더해지기 시작할 때 갈등은 발생하는 것이다.
흑인린치는 인간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잔혹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과거완료로 치부하고 단순히 넘길 수는 없다. 지금도 분명히 미국의 흑백갈등은 존재하고, 미국 어딘 가에선 이 갈등이 흑인을 향한 폭력으로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미국 곳곳에 KKK단이 존재하고 심지어 히틀러와 나치즘을 신봉하는 신나치주의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마 이러한 현상이 완전히 사라지길 바란다는 건 우리들의 소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우만 봐도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수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늘어난 지금, 백인과 달리 흑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과 대우가 사회문제로 자주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시간에 이런 현상이 바뀌길 바라긴 어려울 것이다. 고정관념과 편견이란 것이 그래서 무서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것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우리들로부터 시작한 작은 변화가 언젠간 ‘인종’이란 이름으로 일어나는 차별의 벽과 폭력의 굴레를 완전한 과거사로 만들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박진빈, 『백색국가 건설사』, 앨피, 2006
프란시스 휘트니外, 『미국의 역사』, Human&Books, 2004
손세호, 『하룻밤에 읽는 미국사』, 랜덤하우스, 2007
앨런 브링클리,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휴머니스트, 2005
사루야 가나메, 『검증, 미국사 500년의 이야기』, 행담출판, 2007
케네스 데이비스,『미국에 대해 앍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책과함께, 2004
참고사이트
http://www.withoutsanctuary.org
http://www.blogsandbloggers.com
http://korea.gnu.org/people/chsong/copyleft/us-constitutio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