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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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난설헌의 생애

3. <蘭雪軒集>에 관하여
1) <蘭雪軒集>의 간행 배경
2) 당시의 평가

4. 난설헌 시의 영향
1) 가정적 영향
2) 악부시 수용

5. 난설헌의 세가지 恨

6. 난설헌의 시 세계

7. 난설헌 시의 문학사적 위상

본문내용

문학사적 위상
난설헌의 시를 통한 그 정서의 흐름을 파악해 보면 사회와 가정의 환경, 여인에게 주어지던 일반적인 환경, 이상과 현실의 갈등에서 오는 요인 등 한마디로 대변할 수 없는 많은 요인이 遊仙詞로 지향하게 하는 유발요인이 되고 있었으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사랑의 비극’이었다. 현실적인 사랑을 주제로 읊은 시 23首, 선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시 27首, 이외에도 宮詞(궁가)-塞上(새상)에서 추출된 사랑에 대한 시는 난설헌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현실에서도 선계에서도 비극성 짙은 戀詞(연사)가 또한 이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 이로 보건대 그녀는 현실에서 겪는 사랑의 고통을 선계에서 갈망했으며, 선계의 환몽 속에서 사랑의 조우를 끝내 이루지 못했을 때 현실 도피적인 유선세계의 한계를 느끼고 마침내는 현실을 직시하며 하염없는 눈물로 사랑의 갈증을 쓸어내리게 된 것이다. 87首에 이르는 유선사의 마지막 작품을 보면,
六葉羅裙色曳烟, 여섯 폭 비단치마를 안개에 끌면서,
阮郞相喚上芝田. 완랑을 불러 향기로운 땅으로 올라간다.
笙歌暫香花間盡, 피리 소리 문득 꽃 사이에 스러지니
便是人一萬年. 그 사이 인간세상에선 일만년이 흘러갔구나
이 시의 주인공은 바로 난설헌 자신이다.
그녀는 여섯 폭 아름다운 비단치마를 입고는 안개속에서 완랑을 불러 향기로운 땅을 찾아간다. 두사람이 향기로운 꽃 사이에서 마주 바라보며 서 있는데 은은히 울리던 피리소리 갑자기 끊긴다. 그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그 사이에 인간세상에서는 일만년이 흘러갔다. 현실 세계의 모든 고통과 좌절분노, 이로부터의 탈출 시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과 도전, 이 모든 것이 한순간의 부질없는 꿈이었던가. 아니면 난설헌 혼자 힘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었던 조선의 울타리였던가. 인간세상의 부질없는 욕망의 헛됨을 깨달으면서 대단원의 遊仙詞는 막을 내린다.
규방시인에게 있어서 사랑의 결핍은 삶의 기본 정서를 파괴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며, 이 결핍된 정서는 한문학 속에서 정서를 보완함으로써 생명의 장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난설헌 이전에 규방의 한문학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폐쇄된 사회는 한문학의 기회조차 여인에게 주지 않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창출해 내는 여인들은 생명의 문학을 그래도 수없이 이루어 왔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만의 공간이었을 뿐 보일수도, 전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피울래야 피울 수 없는 규방여인의 한문학이었다.
그러나 전무했던 바는 아니니 규방문학의 특질을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규방문학의 정수를 담음은 물론, 남성문학의 한계성을 뛰어넘어 본질에 보다 더 접근할 수 있는 지름길을 들어선 이가 바로 난설헌이다. 그녀는 폐쇄공간 속에서 삶의 공간을 형성하기 위한 생명력을 창출함으로써 인간의 근원적인 정을 바탕으로 인간미를 형상화 하였다. 자기표현의 비통한 해부로 말미암아 그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강렬한 생명력을 피워낸 난설헌의 작품은 문학정신과 함께 한국한문학사상 규방문학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선구자로서 그 업적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감각적 형상화를 통한 정서 전달이 두드러지고 풍부한 정서적 함축과 여운의 추구, 장면의 회화적 묘사를 통한 영상미 등, 형상화의 수법에서 탁월했다. 이러한 난설헌의 시적 표현 장치들은 그녀의 작품들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미학적 경지에 이르게 하였다. 남성 작가들이 보여 주었던 것과는 다른 고유한 정서와 의식을 바탕으로 여성만의 섬세한 정감들을 표현하였고, 시적 표현 장치를 통한 미학적 형성화는 한시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결코 작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蘭雪軒集>의 발간이후 많은 여인들이 한문학의 영역에서 이름을 남기게 되었으며,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으니 일부에서나마 이러한 움직임의 기폭제 역할을 <난설헌집>이 맡아 해냈다면 이 또한 여인 한문학사의 큰 공헌이 아닐 수 없다.
난설헌은 짧은 27세의 일생을 살았다. 그러나 난설헌이 남긴 시는 내용과 형식, 지향했던 시상과 의식적 심상으로 보아서 한국의 어느 시인도 그 자리를 대치할 수 없는 큰 시인이다.
-연보-
1세(1563,명종18년): 허난설헌은 강릉 초당 생가에서 초당 허엽의 삼남 삼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8세(1570,선조 3년):『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었으며 뒷날 주옥같은 시 213수를 남겼다.
15세(1577,선조10년): 난설헌은 이 때 서당 김성립에게 시집간 것으로 보인다.
23세(1585,선조17년): 자기의 죽음을 예언하는 시『몽유광산산』를 지었다.
27세(1589,선조21년): 짧은 나이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지월리 경수산에 묻혔다.
1590년(선조23): 이 해 11월 남동생 허균이 친정에 흩어져 있던 난설헌의 시를 모으고, 자신이 암기 하고 있던 것 을 모아서『난설헌집』초고를 만들고, 유성룡에게 서문을 받았다.
1592년(선조25): 난설헌의 남편 김성립이 임진왜란에 참가하여 전쟁 중에 싸우다가 죽었다.
1598년(선조31): 이 해 봄 정유재란 때 명나라에서 원정 나온 문인 오명제에게 허균이 난설헌의 시 200여편을 보여주었다. 이 시가 『조선시선』『열조시선』등에 실렸다.
1606년(선조39년): 허균은 이 해 3월 27일 중국사신 주지번, 양유년 등에게 난설헌의 시를 모아서 전 해주어『난설헌집』은 사후 18년 뒤에 중국에서 간행되었다.
1607년(선조40년): 4월 허균이 『난설헌집』을 목판본으로 출판하였다.
1711년: 일본에서 분다이야 지로베이에 의하여 『난설헌집』이 간행되었다.
1913년: 1월 10일 허경란이 난설헌의 시를 읽고 감화받아 자신이 소설헌 이라고 칭하며 시를 지은 『소설헌집』이 활자본으로 신해음사에서 출판되었다.
참고문헌
김명희,『허부인 난설헌, 시 새로읽기』, 이회문화사, 2002
-----,『허난설헌의 문학』,집문당, 1987
김성남,『許蘭雪軒-시대를 앞서간 천재여류시인』, 문예신서, 2003
이숙희,『허난설헌시론』, 새문사, 1988
한성금,「허난설헌 한시의 미학」, 조선대 박사논문, 2006
허미자,『許蘭雪軒硏究』, 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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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0.13
  • 저작시기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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