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맹덕. 그의 ‘파격’과 ‘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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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조 맹덕. 그의 ‘파격’과 ‘체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숱한 영웅들, 진시황이나 한고조 유방, 한(漢)무제나 당태종 같은 이들도 조조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으면 죽였고, 더 비인간적인 처사를 저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유독 남송의 애국적인 사조에 편승한 조조 비판은 더욱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동진이나 남조에서 은연중 유비를 정통으로 여기고 싶었던 생각은 남송에서 급기야 「촉한정통론」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서 송나라는 망하고 한족은 몽고족인 원나라의 지배 하에서 갖은 핍박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니 이미 「촉한정통론」등으로 미움을 사기 시작한 조조는 더욱더 타기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서민 대중의 뇌리에도 유비는 인군의 표상으로, 조조는 각박한 지도자로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여기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이 바로 나관중의 소설이었던 것이다. 원말명초를 살았던 나관중은 실로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약자응원의 법칙에 익숙한 민중의 여망을 따라 촉한정통의 입장에서 『삼국지연의』를 썼다. 쉽고 재미있는 소설은 어떠한 정사보다도 강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삼국지연의』속의 이야기는 진실인 양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이르렀다. 이재하, 『人間조조』, 서울 : 바다출판사, 1999.
옛 중국인들의 조조에 대한 평가가 이러한 것인데, 지금의 현대인들의 조조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보인다. 조조에 대한 현대의 관점으로 조조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을 이야기 해보자.
역사적 기록으로 존재하고 있는 조조의 ‘파격적’성격과 처세에 대해 살펴보자. 조조의 ‘파격적인’ 성격은 그의 인재등용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건안 15년 조조는 不人不孝 不逞 邪 非情 唯才是擧(얼마만큼 패역한 사람이건, 얼마만큼 불인, 불효한 사람이건 전혀 관계없이 오직 재능만 있으면 등용한다.)라는 내용을 담은 포고문을 공포한다. 이는 동한 광무제 때부터 절개와 의리를 중시하여 ‘도덕적 품성’을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했던 관행을 폐지하는 것이었다. 이 명령에 당시 사대부들은 즉각 반대했다. 2000년 동안, 수많은 유학자들은 조조의 이러한 정책이 재능만을 중시하고 도덕을 내팽개친 인사 정책이라고 대대적으로 비판했다. 조조는 ‘능력과 도덕을 두루 갖춘 인물’을 뽑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 다음으로는 ‘도덕적이지는 않지만 능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어지러운 나라를 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질거나 효성스럽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나라를 다스리고 군대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등용하겠다는 조조의 생각은 이후 비판을 가장 많이 받기도 했다. 건안 22년 8월, 조조는 다시금 「인재를 등용함에 그 사람을 도덕에만 얽매여 평가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그 내용은 “옛날 이윤과 부열은 비천한 노예 출신이었고 …중략…지금 천하에는 비록 민간에 있지만 지극한 덕을 지닌…글 솜씨가 세속적인 하급 관리 수준이더라도 드높은 재주나 기이한 바탕을 갖춰 장수가 될 만 한…더러운 치욕을 입은 이름을 지고 살면서 남들의 조롱을 당하며 어질거나 효성스럽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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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1.02
  • 저작시기2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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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1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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