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1. 왕건 그는 실로 능력 있는 왕이었다.
2-2. 궁예는 왕건에 비해 부족한 인물이었을까
2-3. 왕건의 쿠테타, 그의 대의명분은 무엇이었을까.
3. 결론
2-1. 왕건 그는 실로 능력 있는 왕이었다.
2-2. 궁예는 왕건에 비해 부족한 인물이었을까
2-3. 왕건의 쿠테타, 그의 대의명분은 무엇이었을까.
3. 결론
본문내용
왕건에게 협력하던 문인들이었다는 점 등 파고들수록 의혹투성이이며 허술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왕건이 신하들의 청으로 떠밀리다시피 하여 쿠테타를 일으켰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밤에 이루어진 모의로 그날 밤 일으킨 쿠테타가 그토록 성공적이고 깔끔할 수 있었을까. 대체 궁예의 부하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대체 왕건의 부하들은 얼마나 날랜 것일까. 일찍부터 준비된 계획이었으며 치밀한 준비 끝에 이를 성공으로 이끈 것이었을 것이다. 한나라의 왕을 바꾸려는 시도가 그토록 쉬웠을리 없다. 위의책, pp293~306
왜 왕건은 이렇듯 쿠테타가 성공하고 나서도 자신의 대의명분을 다듬으려하였고 심지어 거짓까지 넣어가며 정당성을 불어넣으려고 했을까. 물론 궁예가 세력이 커져가는 왕건을 견제하였으며 왕건이 당시 뛰어난 활약으로 백성들과 신하들의 기 한다. 이 사건은 역사가들에 의해 거의 꾸며진 이야기라고 치부되고 있다. 너무나도 몽환대를 받던 인물임은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궁예의 폭정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고 아니 자신의 안위를 위해 몸을 피하고서 쿠테타를 모의해 이를 성공시켰다는 것으로 보아 왕건은 충신이라기보다는, 2인자로 만족할 만한 그릇이 아니었으며 아버지때부터 그토록 바라던 왕권에 대한 욕심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3. 결론
여기까지 왕건의 쿠테타가 정당성이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았다. 왕건과 궁예 그들은 역사속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다. 둘 중 하나가 없었다면 이 둘의 위상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음은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두 호걸은 말년에 들어 그 인생이 극명하게 다른 길을 걷는다. 게다가 한명이 다른 이를 집어 삼키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더 큰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렇기에 이 두 호걸의 관계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앞서 보았듯 왕건과 궁예 이 둘은 그 누가 더 뛰어나다고 말하기 힘들 만큼 커다란 그릇을 가진 이들이었으며 출생부터 인생의 황금기까지 남부러울 것 없는 업적을 쌓았다. 하지만 궁예가 왕위에 오르고 왕건은 2인자의 위치였다. 용호상박이란 말처럼 우열을 가리기 힘든 두 영웅들에게 이 신분적 괴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경계할 수밖에 없는 족쇄이지 않았을까. 왕건의 쿠테타.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큰 사건이며 왕건이 태조의 자리에 올라 이룬 업적들을 볼 때 그의 생애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해주는 사건임이 분명하다. 허나 그의 쿠테타 과정에서의 대의명분은 조금 부족하다. 그는 신하의 입장에서 궁예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노력해야 했으며 왕권에 오르고자하는 야망을 숨기지 못했다. 이는 분명 흠이며 지탄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서론에서 말했든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다. 그렇기에 궁예는 우리가 아는 것만큼 타락하지 않았을 수 있고, 왕건은 그렇게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야망을 품고 그 야망을 난세에서 펼치며 샛별처럼 빛나던 두 영웅은 호탕하게 서로를 용서하고는 어깨를 맞대고 자신들이 세기를 넘나들며 후대에게 회자되고 있음에 뿌듯해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왕건이 신하들의 청으로 떠밀리다시피 하여 쿠테타를 일으켰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밤에 이루어진 모의로 그날 밤 일으킨 쿠테타가 그토록 성공적이고 깔끔할 수 있었을까. 대체 궁예의 부하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대체 왕건의 부하들은 얼마나 날랜 것일까. 일찍부터 준비된 계획이었으며 치밀한 준비 끝에 이를 성공으로 이끈 것이었을 것이다. 한나라의 왕을 바꾸려는 시도가 그토록 쉬웠을리 없다. 위의책, pp293~306
왜 왕건은 이렇듯 쿠테타가 성공하고 나서도 자신의 대의명분을 다듬으려하였고 심지어 거짓까지 넣어가며 정당성을 불어넣으려고 했을까. 물론 궁예가 세력이 커져가는 왕건을 견제하였으며 왕건이 당시 뛰어난 활약으로 백성들과 신하들의 기 한다. 이 사건은 역사가들에 의해 거의 꾸며진 이야기라고 치부되고 있다. 너무나도 몽환대를 받던 인물임은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궁예의 폭정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고 아니 자신의 안위를 위해 몸을 피하고서 쿠테타를 모의해 이를 성공시켰다는 것으로 보아 왕건은 충신이라기보다는, 2인자로 만족할 만한 그릇이 아니었으며 아버지때부터 그토록 바라던 왕권에 대한 욕심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3. 결론
여기까지 왕건의 쿠테타가 정당성이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았다. 왕건과 궁예 그들은 역사속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다. 둘 중 하나가 없었다면 이 둘의 위상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음은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두 호걸은 말년에 들어 그 인생이 극명하게 다른 길을 걷는다. 게다가 한명이 다른 이를 집어 삼키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더 큰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렇기에 이 두 호걸의 관계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앞서 보았듯 왕건과 궁예 이 둘은 그 누가 더 뛰어나다고 말하기 힘들 만큼 커다란 그릇을 가진 이들이었으며 출생부터 인생의 황금기까지 남부러울 것 없는 업적을 쌓았다. 하지만 궁예가 왕위에 오르고 왕건은 2인자의 위치였다. 용호상박이란 말처럼 우열을 가리기 힘든 두 영웅들에게 이 신분적 괴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경계할 수밖에 없는 족쇄이지 않았을까. 왕건의 쿠테타.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큰 사건이며 왕건이 태조의 자리에 올라 이룬 업적들을 볼 때 그의 생애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해주는 사건임이 분명하다. 허나 그의 쿠테타 과정에서의 대의명분은 조금 부족하다. 그는 신하의 입장에서 궁예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노력해야 했으며 왕권에 오르고자하는 야망을 숨기지 못했다. 이는 분명 흠이며 지탄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서론에서 말했든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다. 그렇기에 궁예는 우리가 아는 것만큼 타락하지 않았을 수 있고, 왕건은 그렇게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야망을 품고 그 야망을 난세에서 펼치며 샛별처럼 빛나던 두 영웅은 호탕하게 서로를 용서하고는 어깨를 맞대고 자신들이 세기를 넘나들며 후대에게 회자되고 있음에 뿌듯해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