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친일(親日)의 가벼움 -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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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 론

2. 춘원 이광수의 生涯

3.民族改造인가, 春園改造인가
 3-(1) 민족개조론와 그 구조
 3-(2) 민족개조의 방법 그리고 「민족적경륜」

4. ‘개조’를 둘러싼 견해 차이와 대립
 4-(1) 개조의 대상: 내적 개조와 외적 개조
 4-(2) 개조의 주체: 엘리트냐 민중이냐
 4-(3) 개조의 방식.위상:초월적.非정치적이냐, 혁명적,정치적이냐

5. 이광수의 친일문학의 양상 및 의의

6. 맺 음 말

본문내용

위한 논의들은 진정한 문제로 제기되지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적 근대화 및 근대의 초극 모두는 시민사회를 기초로 한 정치적 자주독립 및민족국가의 성립이라는 근대의 과제와 끊임없이 결부되거나, 그것이 성취된 이후에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같은 역사적 객관성 자체를 근대의 타자인 식민지인으로서 넘어서려고 하였을 때 가능했던 것은, 고대의 신화적 세계로 복귀함으로써 근대국가를 획득한 일본과 주관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국가적 정체성의 욕망 또는 동양이라는 공간성에 호소, 일제의 전쟁에서 그 “후천”적이고 “보살도”적인 현실태를 자기기만적으로 발견하고자 하는 일종의 주관적, 종교적 낭만서으이 추구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이는 근대 세계사를 지배한 서구적 거대서사에 대해 제출한 일제의 또 다른 제국주의적 거대서사에 편승했다는 것일 터인데, 포스트모던을 논하는 현재와 관련해 춘원의 친일문학이 던지는 고통스런 의의는 바로 그 점에 있을 것이다. 이경훈, 이광수의 친일문학연구, 태학사, 1998, p356~357.
6. 맺 음 말
한국인과 그 역사에 깊은 정신적 상흔을 남긴 친일파 문제는 이제 개인적인 친일 행적을 파헤치는 현상적인 단계를 넘어 식민지 지배정책의 차원에서 구조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해방 후 신국가건설에서 최대 쟁점이 되었던 친일파 처벌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채 가해자로서 반민족적 행위를 자행했던 친일파들은 반성보다는 자기변명으로 일관하였고, 사회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이를 용인해왔다.
그들은 어두운 과거를 묻어버리고 고백이 아닌 자기 과시만으로 일관한 기록들과 일제의 일방정 보고기록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민족주의자에서 하루아침에 친일파로 전락하게 된 인간적 고뇌와 친일의 논리가 부재된 채 행위만이 남아 더욱더 파렴치한이 되었다.
사회적 명망을 갖은 엘리트로서 3·1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일제의 기만적인 문화통치정책에 매몰되어 식민체제 안에서 개량적 민족운동을 통해 민족의 실력양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고, 더불어 민족운동계의 비난으로 입지가 좁아지자 친일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 중에 지금까지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이광수를 주목했다.
그중의 민족 개조론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는데 그 내용을 정리하자면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고 볼 수 있다. 첫 부분에서는 민족개조의 의의와 역사, 두번째 부분에서는 민족개조의 취지와 가능성, 세번째 부분에서는 민족개조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다. 도덕적 허위를 배척하여 진실한 인간이 되는 일이 그 하나이며, 이를 위한 단체를 조직하여 멸사봉공의 정신을 기르는 일이 다른 하나이다. 이러한 주지의 민족개조론은, 이광수 자신이 이 글의 서두에서 암시적으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도산 안창호의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이 시기의 또 다른 논설 중추 계급과 사회(1921), 소년에게(1922) 등에서부터 민족적 경륜(1924)을 거쳐 1930년대 『동광』지에 실린 여러 논설에 이르기까지 수미일관하게 관철되고 있다. 또한 이광수는 수양동맹회와 동우회 활동을 주도함으로써 스스로 사상의 실천에 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족개조론은 투쟁적인 독립운동에 대해 명백한 거부의 태도를 보이고 1910년대까지의 민족운동의 의의를 부정함으로써 격렬한 비판과 반론을 야기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으며, 민족개조는 곧 민족성 개조라는 주지를 강조하기 위해 민족의 정신적 타락을 강조함으로써 일제의 침략 논리와 상통하는 논리적 모순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모순이 본격화된 것은 1930년대로, 이는 민족개조론의 논리가 궁극적으로는 자민족중심주의, 더 나아가서는 제국주의와 동일한 논리적 지평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민족개조론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민족개조론에 등장하는 도덕에 대한 강조가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한 수단적인 것에 불과하다면 제국주의의 침략논리, 곧 힘의 윤리와 다를 것이 없으며, 반대로 도덕에 대한 강조가 그 자체로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거기에는 그 어떤 민족의식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생각해야할 문제는 ‘친일행적’에만 너무 집착하면 안된 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과거에 친일에 관해서 비판할 수 밖에 없는 당연한 입장이다. 만약 우리가 그 시대, 그 상황에 직면했다면 친일유혹상황 속에서 어떠한 판단을 내릴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함을 통해 친일의 옹호, 이해가 아닌 합리적으로 친일을 어떻게 평가하고, 처리해야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민족적 자부심과 자아를 상실하고 자기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불신과 조국의 현실과 민족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입장을 갖고 열등감에 빠져버린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히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특히 이광수는 명망있는 지식인이었다. 지식정도에 걸맞는 우리민족의 중심인물이 되주길 바라는 우리민족의 소망을 처참히 짓밟았다는 사실에는 큰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필자는 장차 조국을 수호하는 군인이 되고자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조국과 민족을 포기하고 등 돌리는 일이 후사에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비판받을 만한 일인지 깨달았다. 그런 점에서 이광수가 생각하는 선진된 조국, 근대화 조국을 자신의 나라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볼 수는 없었을까? 혹자가 말하길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우리 민족의 찬란한 역사속 다시한번 어두운 그림자가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은 추호도 없으나, 충분히 우리는 기억하고 되새겨야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기에......
※ 참고문헌
민족문제연구소, 친일파란 무엇인가, 아세아문화사, 1999
반민족문제연구소, 친일파 99인, 돌베게, 1994
박노자허동현,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 푸른역사, 2009
강준만, 한국근대사산책6, 인물과사상사, 2006
허수, 제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개조론의 확산과 한국 지식인, 한국근대사 연구 제50집, 2009
한승옥, 이광수:비극적 세계인식과 초월의지,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5
조맹기, 한국언론인물사상사, 나남출판, 2006
이중오, 이광수를 위한 변명, 중앙M&B, 2000
이경훈, 이광수의 친일문학 연구, 태학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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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1.25
  • 저작시기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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