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 3
본론 ………………………………………………………………………… 3
아시아 고등종교들의 세계관 ………………………………………… 3
그리스도 개념의 혼돈 ……………………………………………………… 3
신과 영의 개념 혼돈 …………………………………………………… 6
종교 다원주의가 서론에 미친 영향과 결여 ……………………… 9
결론 ………………………………………………………………………… 9
본론 ………………………………………………………………………… 3
아시아 고등종교들의 세계관 ………………………………………… 3
그리스도 개념의 혼돈 ……………………………………………………… 3
신과 영의 개념 혼돈 …………………………………………………… 6
종교 다원주의가 서론에 미친 영향과 결여 ……………………… 9
결론 ………………………………………………………………………… 9
본문내용
있다는 것과 통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라고 말하며 성령과 인간의 마음과 불성을 모두 동일시 하였으며 성령을 예수의 분신 화신으로 해석했고 범신론적으로 이해했다. 또 예수는 전생의 죄가 많아 금생에서 제자에게 배반 당했다는 6도를 왕생하는 중생중의 하나로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왜곡후 기독교와 타종교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며 그것은 상대적이고 유한한 세계로부터 절대적이고 무한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5) 1991년 2월 7일 제 7차 WCC총회
호주 켄버라에서 열린 총회에서는 특히 이화여대의 정현경박사는 “성령이여 오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버림받은 하갈의 영으로 시작해 예수의 영과 더불어 20가지 한맺힌 영들을 함께 초청하는 등으로 시작하는 강연을 하였다. 이 여자는 이 책의 필자에게 성령과 죽은 사람의 영과의 관계를 “붉은 장미와 그 붉은 빛과 같은 것”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와 병행해 19세기 힌두 라마크리슈나가 같은 사상을 주장했는데, 이를 “우유와 그 흰색처럼, 다이아 몬드와 그 광채처럼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는 불이론적 일원론의 전제하에 모든 종교를 하나로 보는 것이다.
이책의 저자는 성령의 올바른 보편성이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을 의미하며(행 2:39) 또 하나님의 세계 통치를 의미하지만 그것은 범신이나 만신과 혼돈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다원주의적 성령론에 대한 반박
1. 1974년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에서의 로잔 언약
위에서 제시한 혼합주의를 부정하며 그리스도께서 어떤 종교나 어떤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는 식의 대화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손상시킴으로써 이를 거부한다고 단호히 거절 그대신에 상대방을 이해하고 복음에로 초대하기 위한 대화는 불가피하다고 하였다.
2. 1975년 서울에서의 범아시아 선교 협의회의 서울선언문
복음에로 인도하는 방편으로써의 대화는 가능하나 혼합주의를 초래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대화 즉 세계공동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연합세력을 형성한다는 범종교적 대화를 목적하는 대화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혼합주의, 범신론적 공통분모를 찾는 것은 다른 복음을 산출하는 결과인 것이다.
4. 종교 다원주의가 선교에 미친 영향과 결어
범신론적 보편주의와 다원주의적인 신학에 의한 선교관은 성경적인 선교관과 전혀 다르다.
이들의 선교의 목적은 결국 인간화이며 상대적 절대주의를 주장할 뿐이다. 한마디로 종교간의 대화를 통하여 평화공존의 종교혼합 공동체를 실현하자는데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와 동격이 될 수 없으며 그의 역활을 감당할 수도 없다. 그 분만이 유일한 구주시며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길이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죄악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에 의한 속죄함을 받지 않는 이상 자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시아의 범신론엔 속죄사상이 없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보다는 그들의 범신론적 구원관에 의해 구원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데 이는 기독교의 진리와는 다르다. 기독교는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범신론적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성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그가 사망에서 부활하신데 그 핵심이있다. 이것이 사도들의 중심 메시지였고, 어거스틴-루터 그리고 칼빈과 웨슬리의 신앙과 신학의 중심이였다. 범신론 사상과 혼합된 다원주의 신학이나 종교신학은 기독교의 신앙고백을 떠난 신학이므로 기독교신학이 아니다. 종교학 연구의 결과로 우리는 오히려 십자가의 속죄 사건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증거하게 되었고 칭의의 신학을 더욱 발전시켜야 할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주님이며 구주이심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제국주의는 속박을 가져왔으나 복음은 죄에서 자유케 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하며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 그러나 혼합주의의 도전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범세계적이고, 또한 이 혼합주의는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그리스도를 제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통치권에 투쟁한다. 그리고 이 도전과 투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까지 계속될 것이, 그의 재림과 동시에 깨져 버릴 것이다.(살후2:1-8)
결론
현대 사회에서 다원주의는 보편적으로 긍정된다. 다원주의는 인간의 복잡한 현실을 인식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과 의미를 수반하는 삶의 역사 진행을 인정한다. 따라서 문화적이고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사회에서 다원주의는 보편적이고, 종교도 예외는 아니다.
종교다원주의는 더욱더 다양한 상황과 의미를 생각해 봄으로서 그리스도교의 신론과 삼위일체론을 더욱더 풍부하게 하는 긍정적인 공헌을 하였지만 현대 종교다원주의 문제의 형태는 종교 공통의 가치들을 위해서 자신의 것에 대한 깊은 인식이나 성찰 없이 다른 것들에 대한 가치를 상대적으로 인정하고 수긍하는 데서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진정한 다원주의란, ‘자신의 것을 인정하면서’ 다른 것의 가치도 외면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종교 다원주의 시대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신학적인 탐구의 귀결이 아니라 우리보다 앞서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그들이 바라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신앙적 확신을 쥐어잡고, 자신의 전 존재를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를 상대화시키고 어느 것이 진리인가를 가늠하는 것보다, 먼저 실존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천하는 삶에 투신하면서 종교다원 시대에 개방적인 자세로 참여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즉, 타종교에 개방적인 태도로 대화와 공동선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현대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종교와 문화의 다원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그리스도교 정체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체험한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하는 사랑의 자세 또한 필요하다.
라고 말하며 성령과 인간의 마음과 불성을 모두 동일시 하였으며 성령을 예수의 분신 화신으로 해석했고 범신론적으로 이해했다. 또 예수는 전생의 죄가 많아 금생에서 제자에게 배반 당했다는 6도를 왕생하는 중생중의 하나로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왜곡후 기독교와 타종교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며 그것은 상대적이고 유한한 세계로부터 절대적이고 무한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5) 1991년 2월 7일 제 7차 WCC총회
호주 켄버라에서 열린 총회에서는 특히 이화여대의 정현경박사는 “성령이여 오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버림받은 하갈의 영으로 시작해 예수의 영과 더불어 20가지 한맺힌 영들을 함께 초청하는 등으로 시작하는 강연을 하였다. 이 여자는 이 책의 필자에게 성령과 죽은 사람의 영과의 관계를 “붉은 장미와 그 붉은 빛과 같은 것”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와 병행해 19세기 힌두 라마크리슈나가 같은 사상을 주장했는데, 이를 “우유와 그 흰색처럼, 다이아 몬드와 그 광채처럼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는 불이론적 일원론의 전제하에 모든 종교를 하나로 보는 것이다.
이책의 저자는 성령의 올바른 보편성이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을 의미하며(행 2:39) 또 하나님의 세계 통치를 의미하지만 그것은 범신이나 만신과 혼돈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다원주의적 성령론에 대한 반박
1. 1974년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에서의 로잔 언약
위에서 제시한 혼합주의를 부정하며 그리스도께서 어떤 종교나 어떤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는 식의 대화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손상시킴으로써 이를 거부한다고 단호히 거절 그대신에 상대방을 이해하고 복음에로 초대하기 위한 대화는 불가피하다고 하였다.
2. 1975년 서울에서의 범아시아 선교 협의회의 서울선언문
복음에로 인도하는 방편으로써의 대화는 가능하나 혼합주의를 초래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대화 즉 세계공동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연합세력을 형성한다는 범종교적 대화를 목적하는 대화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혼합주의, 범신론적 공통분모를 찾는 것은 다른 복음을 산출하는 결과인 것이다.
4. 종교 다원주의가 선교에 미친 영향과 결어
범신론적 보편주의와 다원주의적인 신학에 의한 선교관은 성경적인 선교관과 전혀 다르다.
이들의 선교의 목적은 결국 인간화이며 상대적 절대주의를 주장할 뿐이다. 한마디로 종교간의 대화를 통하여 평화공존의 종교혼합 공동체를 실현하자는데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와 동격이 될 수 없으며 그의 역활을 감당할 수도 없다. 그 분만이 유일한 구주시며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길이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죄악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에 의한 속죄함을 받지 않는 이상 자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시아의 범신론엔 속죄사상이 없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보다는 그들의 범신론적 구원관에 의해 구원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데 이는 기독교의 진리와는 다르다. 기독교는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범신론적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성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그가 사망에서 부활하신데 그 핵심이있다. 이것이 사도들의 중심 메시지였고, 어거스틴-루터 그리고 칼빈과 웨슬리의 신앙과 신학의 중심이였다. 범신론 사상과 혼합된 다원주의 신학이나 종교신학은 기독교의 신앙고백을 떠난 신학이므로 기독교신학이 아니다. 종교학 연구의 결과로 우리는 오히려 십자가의 속죄 사건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증거하게 되었고 칭의의 신학을 더욱 발전시켜야 할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주님이며 구주이심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제국주의는 속박을 가져왔으나 복음은 죄에서 자유케 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하며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 그러나 혼합주의의 도전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범세계적이고, 또한 이 혼합주의는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그리스도를 제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통치권에 투쟁한다. 그리고 이 도전과 투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까지 계속될 것이, 그의 재림과 동시에 깨져 버릴 것이다.(살후2:1-8)
결론
현대 사회에서 다원주의는 보편적으로 긍정된다. 다원주의는 인간의 복잡한 현실을 인식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과 의미를 수반하는 삶의 역사 진행을 인정한다. 따라서 문화적이고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사회에서 다원주의는 보편적이고, 종교도 예외는 아니다.
종교다원주의는 더욱더 다양한 상황과 의미를 생각해 봄으로서 그리스도교의 신론과 삼위일체론을 더욱더 풍부하게 하는 긍정적인 공헌을 하였지만 현대 종교다원주의 문제의 형태는 종교 공통의 가치들을 위해서 자신의 것에 대한 깊은 인식이나 성찰 없이 다른 것들에 대한 가치를 상대적으로 인정하고 수긍하는 데서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진정한 다원주의란, ‘자신의 것을 인정하면서’ 다른 것의 가치도 외면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종교 다원주의 시대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신학적인 탐구의 귀결이 아니라 우리보다 앞서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그들이 바라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신앙적 확신을 쥐어잡고, 자신의 전 존재를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를 상대화시키고 어느 것이 진리인가를 가늠하는 것보다, 먼저 실존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천하는 삶에 투신하면서 종교다원 시대에 개방적인 자세로 참여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즉, 타종교에 개방적인 태도로 대화와 공동선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현대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종교와 문화의 다원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그리스도교 정체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체험한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하는 사랑의 자세 또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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