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와 한국문화 - 어제와 오늘

목차

도덕성과 생산성
한국의 전통예절
충성․공경․효도
오기와 아량
세상의 소금 같은 인물
족보의 현대적 의의
한국학의 세계화
TV 중계탑과 봉수대

본문내용

그릇은 있어야 한다.
우리의 것보다 앞선 문화, 훌륭한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 문화 속에 용해시키고 더 살찌우는 것이 바로 국제화요 세계화라고 할 때, 자신의 바탕, 틀, 그릇이 없다면 그것을 어디에다 받아들이겠는가. 국제화, 세계화가 더 강하게 요구되면 될수록 우리 것의 위상을 찾아 정립할 필요성도 그만큼 더 커지는 것이다. 한국학의 중요성도 바로 그래서 강조된다.
우선 자기 것을 탄탄히 한 연후에 세계화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한국적 특수성을 세계적인 보편성에다가 접목시키는 일이다. 한국학의 세계화도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
TV 중계탑과 봉수대
흔히들 낡고 쓸모 없는 것으로만 생각해 버리는 우리 전통문화의 우산이 때로 창조적 계승을 통해서 현대의 문화 창출에 값진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우리나라에서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이 텔레비전을 가지고 민심을 효과적으로 사로잡을 수 있다는 인식을 하고는 전국적인 방송 중계망 건설을 서두르도록 지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방송 기술 자체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지만 방송 중계탑 건설과 관련한 기술적 축적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관계자들은 하는 수 없이 방송 분야에서 우리보다 월등히 앞서 가고 있던 일본의 기술을 빌리자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본 NHK 방송의 중계망을 건설한 회사를 상대로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국책 사업의 하청 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전문가들이 가지고 온 것 은 다름 아닌 조선시대의 봉수대(烽燧臺)의 지도 한 장뿐이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이 그린 것이다.
흔히 봉화대라고도 하는 봉수대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로 외적의 침입이나 긴급한 상황을 조정이 있는 서울까지 수식간에 전달할 수 있는 통신수단으로 지금으로 치자면 일종의 송신탑과 같은 것이다. 이 봉수대에는 ‘가시거리 이내에서 최대한 멀리, 그리고 최소한의 숫자’라는 원칙이 적용되어 있다.
이 땅에서 수천 년을 살아 온 우리 선조들은 우리 땅의 현세를 환히 알고 있었기에 이미 경험적으로 가장 경제적인 위치들을 선정해 놓았고 그것이 실제 봉수대의 위치로 표현되어 있었다. 봉수대들이 이미 전국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최상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지도에서 몇 군데만 고쳐 잡으면 중계탑의 위치 선정 작업은 간단히 끝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발상 하나를 떠올리지 못함으로써 막대한 재정을 일본 사람의 손에 쥐어 주어야 하는 서글픈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문제는 이것이다. 우리는 전통문화와는 자진해서 담을 쌓아 버린 단절된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단절된 의식’은 ‘식민지 지식인’시대와 ‘신식민지 지식인’시대를 거치는 동안 광범위하게 진행된 ‘자기 부정’의 결과이다.
우리의 의식이 전통문화와 단절되어 있지만 않았던들, 어제의 것으로 새로운 오늘의 것을 창조하고, 오늘의 것으로 새로운 내일의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자연스런 발상의 흐름이 막혀 있지만 않았던들 우리의 머리에서도 맨 먼저 봉수대 지도부터 떠올랐을 게 틀림없다.
아무리 최첨단을 가는 신문화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불쑥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의 바탕 위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전통문화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응축되어 내려온 것이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을 일신하여야 하겠다. 그리하여 끊어진 맥을 잇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함으로써, 선조들이 남긴 지혜의 응원을 받으며 저 새로운 세기의 문명을 향하여 우리 민족이 앞장서서 달려나가야 하겠다.

키워드

한국문화,   도덕성,   전통예절,   족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