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개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에 관한 부분은 지금까지 경시되고 왜곡되어 왔다. 역사학자 김호동교수(서울대)는 “유목민과 농경민은 인류의 역사를 움직여온 두 개의 수레바퀴였고, 그 어느 하나를 빼놓고는 세계사에 대한 총체적이고 균형 있는 이해가 불가능하다”며 “그것은 동아시아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러시아를 위시한 유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역사상 처음으로 유라시아 대륙 거의 대부분을 통합한 몽골제국은 세계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이번 주에 만나는 르네 그루쎄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는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초원을 배경으로 명멸했던 유목 제국들의 역사를 총괄하는 저작이다.
그동안의 동아시아 역사 연구는 중국 중심이었다. 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유목민의 역사는 외면되어 왔다. 때문에 오랫동안 유목민의 역사는 세계사의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특히 유럽이나 중국은 이들 유목민족을 말을 타고 약탈을 일삼는 야만 종족 정도로 이해해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승자 중심의 역사서술은 세계사의 왜곡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왜곡과 편견을 뛰어넘어 유목민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중앙아시아 지역 수많은 유목민족의 흥망성쇠를 전개하고 있는 이 책은 특히 유목민족이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중국이나 유럽과 대등한 관계였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짧은 시간에 정주민들을 비롯한 주변을 정복하고 또한 쇠퇴했는지를 추적한다.
중국의 역사서에 따르면 유목민족은 기원전 8세기 ‘스키타이’와 ‘흉노’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 유목 민족이 세운 제국은 18세기 몽골의 마지막 제국인 준가르 한국(汗國)의 멸망으로 막을 내린다.
이 책 역시 시대적으로 18세기 중반 최후의 유목제국이 사라질 때까지를 담고 있다. 스키타이· 훈· 돌궐· 몽골 등 유목민족과 6∼13세기 러시아 초원을 지배했던 하자르와 볼가르 제국, 서남아시아를 위협했던 티무르 제국도 망라되어 있다. 그 제국들을 이끈 영웅들의 역사도 그려진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유목민의 ‘야만성’ 을 재해석하고, 정주민에 비해 물질문화가 뒤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1300년 동안 끊임없이 명멸을 이어가며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분석해 강조한다.
중국인들이 유목민들을 ‘잔인하고 미개한 족속 오랑캐’로 부르면서 이들을 정주민들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대해 저자는 ‘경작지역에 대한 유목민들의 주기적 침투는 자연의 법칙’이라며 야만성의 문제를 재해석한다. 가뭄으로 메말라버린 초원을 떠나 이동을 계속해야하는 그들에게 곡식을 쌓아놓은 정주문명의 호화스러움은 잔인한 약탈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유목민들은 강력한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정주도시를 공격해 정복했으며 중국의 대칸, 페르시아의 임금, 인도의 황제, 이슬람의 술탄이 되어 그들 속에 동화돼갔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또 물질문화가 발전하지 못했지만 오랜 시기 동안 정복과 소멸을 되풀이하며 존속한 이유를 정주민들의 문명에 비해 훨씬 뛰어났던 군사력에서 찾는다. 초원의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목민들이 선택했던 ‘기마궁사’의 민첩성과 조직력은 곧 유럽인들조차 떨게 했던 군사적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뛰어난 군사력은 결국 강력한 대포에 의해 무력화된다. 러시아의 이반과 중국의 강희제가 ‘기마궁사’를 향해 강한 대포를 겨누었을 때 유목민은 한낱 수렵민의 신세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르네 그루쎄가 펼쳐내는 초원의 주인공 유목민들의 거대한 장정, 그 역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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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원의 초기 역사:스키타이와 훈
-상고시대 초원문명
초원의 고대 역사에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점차로 양식화 되어가는 동물예술의 발전이다. 이것은 유목민들의 사치의 한 형식, 장신구와 마구 위에 구리와 은 또는 금제의 판금 장식을 위해 도안된 것이다. 앗시리아-바빌로니아 양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러한 예술품은 중기 미노아 시기의 예술품과 같은 시대의 것인데, 탈그렌은 이를 기원전 1600-1500년경의 것으로 추정한다.
기원전 1200년경부터 흑해 북부의 러시아 초원을 차지했던 것으로 추정되는(탈그렌에 따르면) 키메르인(인도-유럽계통, 트라키아-프리기아에 기원을 둔)들에 의한 문명은 상고시대 초원문명의 중심을 이룬다. 키메르 문명은 기원전 1150-950년의 시기, 흑해 북부에서 발전하면서 볼가에서 우랄로, 투르키스탄으로 전파되었음이 여러 유물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러시아 초원의 키메르 청동기 시대 마지막 단계 동안에는 오스트리아 할쉬타트와 코카서스의 철기문명과 연결되어 있었던 점이 주목된다. 할쉬타트로부터 온 철제 칼은 초기 스키타이는 물론, 키메르 문화의 상층부에서 발견되고 있다.
-스키타이
스키타이는 기원전 7-3세기 사이에 러시아 초원의 지배자로 군림한 유목민족이다.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기원전 9세기 경 키메르인과 함께 유목민화한 이들은 민첩하고 강력한 기마민족이 되어 기원전 7세기 소아시아 ·시리아 방면을 침범했으며, 기원전 750-700년 사이에는 키메르인들을 남러시아 초원으로부터 캅카스의 쿠반강 유역으로 쫓아냈다. 이후에도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키메르로부터 역시 위협을 느끼고 있던 앗시리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키메르인들을 격파했다. 또한 카파도키아에서 메디아까지, 코카서스에서 시리아로 약탈품을 좆아 질주했는데, 당시의 상황을 저자는 ‘남쪽에 있는 구 문명에 대한 북방초원 유목민들의 역사상 최초의 난입이었다’고 해석한다.
서아시아의 패자가 된 페르시아도 스키타이에 대한 대대적인 원정(퀴루스, 다리우스)에 나섰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덕분에 스키타이인들은 페르시아 영향에서 벗어나 그 후 3세기 동안 남러시아에서 평화롭게 남아있게 되었고, 페르시아 역시 적어도 유목민의 침입으로부터는 서아시아를 방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 후반, 서방 초원에 있던 사르마트인이 볼가강을 건너 러시아 초원에 침입했을때 스키타이는 크리미아 쪽으로
우리가 이번 주에 만나는 르네 그루쎄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는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초원을 배경으로 명멸했던 유목 제국들의 역사를 총괄하는 저작이다.
그동안의 동아시아 역사 연구는 중국 중심이었다. 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유목민의 역사는 외면되어 왔다. 때문에 오랫동안 유목민의 역사는 세계사의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특히 유럽이나 중국은 이들 유목민족을 말을 타고 약탈을 일삼는 야만 종족 정도로 이해해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승자 중심의 역사서술은 세계사의 왜곡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왜곡과 편견을 뛰어넘어 유목민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중앙아시아 지역 수많은 유목민족의 흥망성쇠를 전개하고 있는 이 책은 특히 유목민족이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중국이나 유럽과 대등한 관계였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짧은 시간에 정주민들을 비롯한 주변을 정복하고 또한 쇠퇴했는지를 추적한다.
중국의 역사서에 따르면 유목민족은 기원전 8세기 ‘스키타이’와 ‘흉노’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 유목 민족이 세운 제국은 18세기 몽골의 마지막 제국인 준가르 한국(汗國)의 멸망으로 막을 내린다.
이 책 역시 시대적으로 18세기 중반 최후의 유목제국이 사라질 때까지를 담고 있다. 스키타이· 훈· 돌궐· 몽골 등 유목민족과 6∼13세기 러시아 초원을 지배했던 하자르와 볼가르 제국, 서남아시아를 위협했던 티무르 제국도 망라되어 있다. 그 제국들을 이끈 영웅들의 역사도 그려진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유목민의 ‘야만성’ 을 재해석하고, 정주민에 비해 물질문화가 뒤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1300년 동안 끊임없이 명멸을 이어가며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분석해 강조한다.
중국인들이 유목민들을 ‘잔인하고 미개한 족속 오랑캐’로 부르면서 이들을 정주민들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대해 저자는 ‘경작지역에 대한 유목민들의 주기적 침투는 자연의 법칙’이라며 야만성의 문제를 재해석한다. 가뭄으로 메말라버린 초원을 떠나 이동을 계속해야하는 그들에게 곡식을 쌓아놓은 정주문명의 호화스러움은 잔인한 약탈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유목민들은 강력한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정주도시를 공격해 정복했으며 중국의 대칸, 페르시아의 임금, 인도의 황제, 이슬람의 술탄이 되어 그들 속에 동화돼갔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또 물질문화가 발전하지 못했지만 오랜 시기 동안 정복과 소멸을 되풀이하며 존속한 이유를 정주민들의 문명에 비해 훨씬 뛰어났던 군사력에서 찾는다. 초원의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목민들이 선택했던 ‘기마궁사’의 민첩성과 조직력은 곧 유럽인들조차 떨게 했던 군사적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뛰어난 군사력은 결국 강력한 대포에 의해 무력화된다. 러시아의 이반과 중국의 강희제가 ‘기마궁사’를 향해 강한 대포를 겨누었을 때 유목민은 한낱 수렵민의 신세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르네 그루쎄가 펼쳐내는 초원의 주인공 유목민들의 거대한 장정, 그 역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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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원의 초기 역사:스키타이와 훈
-상고시대 초원문명
초원의 고대 역사에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점차로 양식화 되어가는 동물예술의 발전이다. 이것은 유목민들의 사치의 한 형식, 장신구와 마구 위에 구리와 은 또는 금제의 판금 장식을 위해 도안된 것이다. 앗시리아-바빌로니아 양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러한 예술품은 중기 미노아 시기의 예술품과 같은 시대의 것인데, 탈그렌은 이를 기원전 1600-1500년경의 것으로 추정한다.
기원전 1200년경부터 흑해 북부의 러시아 초원을 차지했던 것으로 추정되는(탈그렌에 따르면) 키메르인(인도-유럽계통, 트라키아-프리기아에 기원을 둔)들에 의한 문명은 상고시대 초원문명의 중심을 이룬다. 키메르 문명은 기원전 1150-950년의 시기, 흑해 북부에서 발전하면서 볼가에서 우랄로, 투르키스탄으로 전파되었음이 여러 유물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러시아 초원의 키메르 청동기 시대 마지막 단계 동안에는 오스트리아 할쉬타트와 코카서스의 철기문명과 연결되어 있었던 점이 주목된다. 할쉬타트로부터 온 철제 칼은 초기 스키타이는 물론, 키메르 문화의 상층부에서 발견되고 있다.
-스키타이
스키타이는 기원전 7-3세기 사이에 러시아 초원의 지배자로 군림한 유목민족이다.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기원전 9세기 경 키메르인과 함께 유목민화한 이들은 민첩하고 강력한 기마민족이 되어 기원전 7세기 소아시아 ·시리아 방면을 침범했으며, 기원전 750-700년 사이에는 키메르인들을 남러시아 초원으로부터 캅카스의 쿠반강 유역으로 쫓아냈다. 이후에도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키메르로부터 역시 위협을 느끼고 있던 앗시리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키메르인들을 격파했다. 또한 카파도키아에서 메디아까지, 코카서스에서 시리아로 약탈품을 좆아 질주했는데, 당시의 상황을 저자는 ‘남쪽에 있는 구 문명에 대한 북방초원 유목민들의 역사상 최초의 난입이었다’고 해석한다.
서아시아의 패자가 된 페르시아도 스키타이에 대한 대대적인 원정(퀴루스, 다리우스)에 나섰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덕분에 스키타이인들은 페르시아 영향에서 벗어나 그 후 3세기 동안 남러시아에서 평화롭게 남아있게 되었고, 페르시아 역시 적어도 유목민의 침입으로부터는 서아시아를 방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 후반, 서방 초원에 있던 사르마트인이 볼가강을 건너 러시아 초원에 침입했을때 스키타이는 크리미아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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