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Ⅱ. [인간과 과학] 교재를 읽고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과학의 앎과 틀을 중심으로
정리
1. 앎의 틀로서의 과학
2. 일상적인 앎의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앎
3. 앎의 틀과 내용
4. 과학적 새 앎의 틀로서의 <고전역학>
5. <상대성이론>
6. <양자역학>
7. <통계역학>
8. <자연과학>
9. 새로운 과학적 앎과 틀의 추구 명분
10. 새로운 과학적 앎과 틀의 전망
Ⅲ. 결 론
[참고 자료]
Ⅱ. [인간과 과학] 교재를 읽고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과학의 앎과 틀을 중심으로
정리
1. 앎의 틀로서의 과학
2. 일상적인 앎의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앎
3. 앎의 틀과 내용
4. 과학적 새 앎의 틀로서의 <고전역학>
5. <상대성이론>
6. <양자역학>
7. <통계역학>
8. <자연과학>
9. 새로운 과학적 앎과 틀의 추구 명분
10. 새로운 과학적 앎과 틀의 전망
Ⅲ. 결 론
[참고 자료]
본문내용
에서 동물의 해부학적 실험을 통하여 하비가 혈액이 순환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1세기가 늦은 18c이후 화학은 라부아지에 의해서 그 이전에는 연금술과 연관 지어 심미적이었던 화학을 물 분해나 금속의 연소를 통하여 측정된 무게를 비교함으로써 근대과학의 특성인 양화(수치화 또는 정량화)를 통해 근대과학으로서 변모시켰으며, 생물학에서는 다윈이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섬을 탐험한 후에 이를 근거로 종의기원을 발표하였다. 이로서 그는 자연선택설에 근거한 진화론을 제시하고 이로서 생물학도 근대과학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물론, 멘델에 의한 콩의 유전실험은 나중에 중요한 진화의 과학적 근거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이 근대과학은 기존의 유기체적인 자연관인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관을 배제하고 자연을 무생물적으로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양적으로 다룸으로서 결국 자연을 지배하고 이를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이후의 산업혁명이나 근대계몽사회 혹은 현대의 과학기술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로 긍정적인 면에서 우리의 현대문명을 이룩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
예컨대, 첨단 IT산업이나, 우주산업 등을 통하여 삶의 질이 향상 되었고, 자동차, 컴퓨터, 핸드폰 등의 발명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새로운 지적 도전을 할 새로운 형태의 지적 능력이 절실해지는 시기이므로 지적 안목을 제공할 기초학문의 소양은 너무나 중요한 지적 자산이 될 수가 있다.
한편, 자연에 폭력을 가하는 실험 조작(예를 들어 라부아지에의 물의 분해)등이 아무 의식적 여과가 없이 이루어져 자연을 파괴하게 되고 현대에 이르러 환경파괴, 지구온난화 등의 문제를 낳고 있기도 하다.
급기야는 인간복제 등의 윤리 문제 등 많은 부정적인 문제가 야기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근대과학 시기에 비록 괴테와 같은 자연철학자들이 뉴턴과학과 같은 자연에 대한 기계론적 세계관과 인위적 조작을 철저히 반대하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아 하나의 유기체로서 접근해야한다는 사상과 같은 그런 흐름도 절대로 무사하지 말고 현대에 새롭게 상기시켜 자연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 태도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축적된 과학적, 기술적, 경제적 능력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초인류사회이므로 보다 더 창의적 시스템의 가동으로 환경문제등과 같은 역경들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Ⅲ. 결 론
앎은 객관적인 지식이다. 앎은 대상세계의 전체를 이론화하여 개념으로 표현하는 지식의 통일체이다. 앎의 주체에서 본다면 감각을 통한 사유적인 활동이다.
인간은 의식의 사유활동을 통해 세계를 자기화(Aneignung)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유활동은 참된 앎을 전제로 하며 그 결과는 앎으로 귀착이 된다.
이러한 앎에는 그 본질 이론 방법 체계 종류 목적과 앎의 실천영역으로 분류된다.
예로부터 철학은 앎의 활동과 암의 가능성과 보편성 그리고 그 범위에 관하여 문제를 삼아 왔다. 여기서 앎의 목적은 앎의 실천과 연결이 된다. 앎은 객관적 대상이 사고의 동일률에 의하여 개념화 되면서 주체의 인식에 반영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을 지배하면서 그 본질을 파악하게 된다. 즉, 창조적 활동은 삶의 목적을 세우는 것이며, 삶의 가치기준을 세워 선과 악을 평가하고 가장 고귀한 삶을 추구하는 도구의 역할을 하게 된다. 앎의 행위가 사회생활에서는 꼭 필수적인 것이다.
삶의 체험은 반성의 연속인데 반성의 원천이 곧 앎이다.
체험의 세계가 넓혀짐은 지식이 늘어남을 의미하며 앎의 한계에 부딪히면 의식의 활동이 새로운 지식을 만들게 되고, 의식의 활동은 장애물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원활히 활동하여 자연의 비밀을 깨내서 문제를 풀어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대적 앎과 구체적 앎이 보편적 지식으로 정립이 되고 이 보편적 지식에 따라 과학과 역사와 문화가 형성되며 편의적 삶이 과학화되고 윤리적 삶이 정립되어진다.
특히, 현대는 지적 자산이 가장 큰 무기가 되고 발 빠른 정보 습득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현대에 지적 안목을 습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지적인 자산이 된다.
더 나아가 삶의 참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계 전체와 우리 인간 자신의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과학적 앎을 통하여 밝은 눈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비단 일부 학자나 교육자, 기술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앎이란 일상적인 앎이나 과학적인 앎은 그 구성에 있어서 비슷하다.
하지만 앎은 일상적인 앎과 과학적인 앎으로 구분할 수가 있으며 전자는 일상적인 앎의 틀을 활용하여 단순한 정보의 출입에만 관심을 두는 반면, 후자는 체계적인 앎의 틀을 통하여 의식적으로 얻어지는 정보를 통틀어서 말한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적으로 습득되는 일상적인 앎에 비하여 후자인 과학적인 앎은 의도적으로 지적노력과 의식적인 고통이 함께 수반된다고 볼 수 있다.
혹은 일상적 앎의 체계는 그대로 전수 받을 수가 있으나 새로운 앎의 틀인 과학적인 앎의 틀은 단순히 전수되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후자의 앎을 추구하는 것은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과학적 앎의 추구는 우리들에게 매우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특히 교양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어, 근대 과학 혁명기에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 등이 일상적 앎을 버리고 새로운 앎의 틀인 태양 중심 체계(지동설)를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지금도 여전히 태양이 지구주위를 돈다는 거짓을 믿고 살아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즉, 과학적 앎의 추구를 통하여 자연의 진리를 알게 되었던 그들처럼 우리도 과학적 앎을 현명하게 추구해야만 자연의 진실을 올바로 파악하는 지각 뿐 만 아니라, 세계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가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장회익, 저인간과 과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2010
이필렬, 인간과과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2001
예지각 편집부, 인간과 과학, 예지각, 2009
은하출판사 편집국, Prime 인간과 과학, 은하출판사, 2011
그리고 1세기가 늦은 18c이후 화학은 라부아지에 의해서 그 이전에는 연금술과 연관 지어 심미적이었던 화학을 물 분해나 금속의 연소를 통하여 측정된 무게를 비교함으로써 근대과학의 특성인 양화(수치화 또는 정량화)를 통해 근대과학으로서 변모시켰으며, 생물학에서는 다윈이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섬을 탐험한 후에 이를 근거로 종의기원을 발표하였다. 이로서 그는 자연선택설에 근거한 진화론을 제시하고 이로서 생물학도 근대과학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물론, 멘델에 의한 콩의 유전실험은 나중에 중요한 진화의 과학적 근거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이 근대과학은 기존의 유기체적인 자연관인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관을 배제하고 자연을 무생물적으로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양적으로 다룸으로서 결국 자연을 지배하고 이를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이후의 산업혁명이나 근대계몽사회 혹은 현대의 과학기술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로 긍정적인 면에서 우리의 현대문명을 이룩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
예컨대, 첨단 IT산업이나, 우주산업 등을 통하여 삶의 질이 향상 되었고, 자동차, 컴퓨터, 핸드폰 등의 발명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새로운 지적 도전을 할 새로운 형태의 지적 능력이 절실해지는 시기이므로 지적 안목을 제공할 기초학문의 소양은 너무나 중요한 지적 자산이 될 수가 있다.
한편, 자연에 폭력을 가하는 실험 조작(예를 들어 라부아지에의 물의 분해)등이 아무 의식적 여과가 없이 이루어져 자연을 파괴하게 되고 현대에 이르러 환경파괴, 지구온난화 등의 문제를 낳고 있기도 하다.
급기야는 인간복제 등의 윤리 문제 등 많은 부정적인 문제가 야기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근대과학 시기에 비록 괴테와 같은 자연철학자들이 뉴턴과학과 같은 자연에 대한 기계론적 세계관과 인위적 조작을 철저히 반대하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아 하나의 유기체로서 접근해야한다는 사상과 같은 그런 흐름도 절대로 무사하지 말고 현대에 새롭게 상기시켜 자연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 태도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축적된 과학적, 기술적, 경제적 능력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초인류사회이므로 보다 더 창의적 시스템의 가동으로 환경문제등과 같은 역경들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Ⅲ. 결 론
앎은 객관적인 지식이다. 앎은 대상세계의 전체를 이론화하여 개념으로 표현하는 지식의 통일체이다. 앎의 주체에서 본다면 감각을 통한 사유적인 활동이다.
인간은 의식의 사유활동을 통해 세계를 자기화(Aneignung)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유활동은 참된 앎을 전제로 하며 그 결과는 앎으로 귀착이 된다.
이러한 앎에는 그 본질 이론 방법 체계 종류 목적과 앎의 실천영역으로 분류된다.
예로부터 철학은 앎의 활동과 암의 가능성과 보편성 그리고 그 범위에 관하여 문제를 삼아 왔다. 여기서 앎의 목적은 앎의 실천과 연결이 된다. 앎은 객관적 대상이 사고의 동일률에 의하여 개념화 되면서 주체의 인식에 반영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을 지배하면서 그 본질을 파악하게 된다. 즉, 창조적 활동은 삶의 목적을 세우는 것이며, 삶의 가치기준을 세워 선과 악을 평가하고 가장 고귀한 삶을 추구하는 도구의 역할을 하게 된다. 앎의 행위가 사회생활에서는 꼭 필수적인 것이다.
삶의 체험은 반성의 연속인데 반성의 원천이 곧 앎이다.
체험의 세계가 넓혀짐은 지식이 늘어남을 의미하며 앎의 한계에 부딪히면 의식의 활동이 새로운 지식을 만들게 되고, 의식의 활동은 장애물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원활히 활동하여 자연의 비밀을 깨내서 문제를 풀어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대적 앎과 구체적 앎이 보편적 지식으로 정립이 되고 이 보편적 지식에 따라 과학과 역사와 문화가 형성되며 편의적 삶이 과학화되고 윤리적 삶이 정립되어진다.
특히, 현대는 지적 자산이 가장 큰 무기가 되고 발 빠른 정보 습득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현대에 지적 안목을 습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지적인 자산이 된다.
더 나아가 삶의 참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계 전체와 우리 인간 자신의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과학적 앎을 통하여 밝은 눈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비단 일부 학자나 교육자, 기술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앎이란 일상적인 앎이나 과학적인 앎은 그 구성에 있어서 비슷하다.
하지만 앎은 일상적인 앎과 과학적인 앎으로 구분할 수가 있으며 전자는 일상적인 앎의 틀을 활용하여 단순한 정보의 출입에만 관심을 두는 반면, 후자는 체계적인 앎의 틀을 통하여 의식적으로 얻어지는 정보를 통틀어서 말한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적으로 습득되는 일상적인 앎에 비하여 후자인 과학적인 앎은 의도적으로 지적노력과 의식적인 고통이 함께 수반된다고 볼 수 있다.
혹은 일상적 앎의 체계는 그대로 전수 받을 수가 있으나 새로운 앎의 틀인 과학적인 앎의 틀은 단순히 전수되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후자의 앎을 추구하는 것은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과학적 앎의 추구는 우리들에게 매우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특히 교양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어, 근대 과학 혁명기에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 등이 일상적 앎을 버리고 새로운 앎의 틀인 태양 중심 체계(지동설)를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지금도 여전히 태양이 지구주위를 돈다는 거짓을 믿고 살아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즉, 과학적 앎의 추구를 통하여 자연의 진리를 알게 되었던 그들처럼 우리도 과학적 앎을 현명하게 추구해야만 자연의 진실을 올바로 파악하는 지각 뿐 만 아니라, 세계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가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장회익, 저인간과 과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2010
이필렬, 인간과과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2001
예지각 편집부, 인간과 과학, 예지각, 2009
은하출판사 편집국, Prime 인간과 과학, 은하출판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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