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정치사] 한국전쟁 전반의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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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쟁과 정치사] 한국전쟁 전반의 정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Ⅰ.한국 전쟁의 배경과 원인
1. 국제정치적 상황

2. 국내정치적 상황
(1) 불완전한 해방
1) 미소의 한반도 진주와 38선
2) 신탁통치
3) 한반도 문제의 유엔상정

(2) 한반도 내부의 갈등
1) 좌우익의 대립
2) 즉각 독립과 통일 정부 수립의 경쟁
3) 김일성과 이승만

Ⅱ. 한국 전쟁의 전개
1950.6.25 북한군의 남침
1950.6.26 유엔안보리, 북한군 침공중지 결의
1950년 6월 28일 서울 - 서울 함락
1950년 7월 5- 미국과 북한의 첫 교전
1950.7.7 유엔 안보리 - 최초의 유엔군
1950.8.31 ~ 9.8 인민군의 9월 공세
1950.9.15 인천상륙작전
1950. 11. 2. 중국의 한국전 참전
1951. 1.4 - 1.4후퇴
1951.4.12 맥아더원수 해임, 리지웨이 장군 유엔군사령관 임명
1951.6.23 말리크 소련 유엔대표, 휴전회담 제의
1953년 7월 27일 - 휴전까지

Ⅲ.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학살
민간인 희생
사망
재산피해

1. 민간인학살
(1) 남한지역의 학살
1) 한국군에 의한 학살
- 보도연맹사건.
- 형무소 학살.
- 작전 중 학살

2) 인민군에 의한 학살.

3) 미군에 의한 학살

(2) 북한지역의 학살
1) 북한군에 의한 학살
-북한의 ‘예비검속’
2) 미군에 의한 학살

Ⅳ. 한국 전쟁의 결과
1. 휴전협정 발의와 군사분계선 획정 문제
2. 포로교환과 정치회담문제의 난항
3. 전쟁 후 남북의 상황
(1) 남한의 상황
1)경제적 궁핍
2)월북과 월북자 가족들의 삶
3)반공이데올로기의 강화

(2) 북한의 상황
1)경제적 궁핍
2)월남
3)숙청단행

Ⅴ. 남겨진 과제
1. 남한과 북한의 서로에 대한 인식 및 인식의 차이
2. 통일의 문제
(1)남한의 통일방안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북한의 통일방안
-1960년대
-1970년대('73. 6.23제안)
-1980년대
-1990년대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3. 이산가족문제

Ⅵ. 결론

본문내용

통한 화상상봉, 생사주소확인 및 서신교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2000년 8월에 시작하여 올해 6월까지 14차례에 걸쳐 진행된 상봉행사를 통해 남북의 2,988 가족 1만 4,470명이 가족과 친척들을 만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측 신청자 1,491가족 1,875명이 북측 가족 3,398명을 만났고, 북측 신청자 1,497가족 1,498명이 남측가족 7,899명을 만났다. 신청을 남쪽에서 했든, 북쪽에서 했든 같은 가족이 만난 것으로 남측 상봉자는 2,988가족 1만 4,470명이다.
이밖에도 지난해부터는 거동이 불편한 고령 이산가족들을 대상으로 화상을 통한 간접상봉을 실시하고 있다. 그간 4차례의 화상상봉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279가족 1,876명의 가족·친척이 상봉하였다. 아울러 대면상봉과 화상상봉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총 3만 9,217명의 가족·친척이 생사주소를 확인하였고, 679명이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산가족 상봉사업의 성과는 단지 양적인 측면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985년 고향방문단 교환 시 남북 이산가족간의 상봉시간은 서울행사시 7시간 30분, 평양행사시 4시간 30분이었다. 상봉은 개별상봉, 단체상봉, 공동중식의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참관은 가족 간 나들이가 아니라 상대측 지역을 방문한 이산가족들만이 참석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에는 상봉시간 확대, 개별상봉의 확대 등 질적 변화를 이루게 되었다. 1차부터 3차까지의 상봉은 1985년과 마찬가지로 서울과 평양을 상호 방문한 형식이었으며, 상봉시간은 10시간으로 1985년보다 2배 정도 확대되었다. 형식에 있어서도 개별상봉 시간을 확대함으로써 가족 간에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보장하였다고 볼 수 있다.
4차부터 진행된 금강산 상봉에서는 참관상봉, 가족나들이, 공동중식, 만찬, 작별상봉 등 의 상봉형식이 추가되면서 상봉시간도 11시간으로 늘어났다. 7차 상봉부터는 우리 측 이산가족 중 거동 불편자들을 대상으로 동반가족이 동행할 수 있게 하였다. 이밖에도 정부는 영상물을 통한 영상편지도 제작하고 있다. 지난해 4,002편을 제작하였고, 올해 장관급회담을 통해 북측에 상호 교환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산가족문제의 해법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고 볼 수 있다. 이상적으로는 이산가족들이 바라는 대로 만나고, 소식을 주고받고, 원한다면 재결합하는 가장 단순한 가족 구성 원리에 따라 행하면 된지만 남북이 대결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가족의 문제가 남북 간 의제가 되고, 인도적 문제가 정치화되는 매우 복잡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산가족의 재회운동을 적극 후원하고 도와서 한시라도 가족이 만날 수 있도록 하여 풀지 못한 한을 풀도록 힘 써주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이다.
1971년 대한적십자사가 북한적십자사에 대해, 4반세기에 걸친 분단의 비극 중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1,000만 이산가족의 재회임을 강조하고 남북적십자 간에 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하였다. 이어 북한적십자사로부터 이를 수락한다는 반응이 나오자 양측 사이에는 적십자회담이 개최되었다. 이 회담이 개최되고 있던 중인 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그 동안 국내 이산가족의 재회를 위해 대한적십자사 ·한국일보사 ·한국방송공사 등의 기관에서 많은 공적을 쌓았다. 이러한 활동 중 1983년 여름에 시작된 한국방송공사의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의 재회운동은 전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6 ·25전쟁 중 헤어져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이산가족을 재회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으며 김대중 정권에 와서는 6,15 정상회담의 성과로 이산가족의 상봉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데 함께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이 바로 그들의 재결합으로 이어질 때에는 많은 문제를 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체사상에 익숙한 북한 측과 자유주의 사상에 익숙한 남한 측의 가족은 그 동안 헤어져 살아온 시간만큼 이념 및 문화로 인해 심리적인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법적 문제의 처리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를 안게 될 것이다. 물론 이산가족의 상봉이 바로 결합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 향후 겪게 될 문제 중 주요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정부는 이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며 그 것의 일종으로 심리적인 조언과 상호 적응을 도모할 수 있는 프로그램마련, 정책적인 지원 역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Ⅵ. 결론
한국 전쟁은 냉전이라는 국제적인 상황과 국내적인 불완전한 해방적인 상황으로 인해 불가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전쟁은 여전히 ‘휴전’이라는 미명 아래 완벽하게 종결되지 않은 전쟁으로 자리하고 있다. 또한 휴전과 분단의 고착화로 남과 북의 차는 더욱 커지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지금 한반도 내에 살고 있는 우리가 여전히 이 전쟁의 부산물을 안고 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정전협정을 제안한 바 있다. 북한의 핵 문제가 커지자 나온 고육지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남과 북의 상황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영향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과연 현재의 북, 미간의 협상으로 정전이 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고찰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세계적으로 냉전이 종식된 상황에서 여전히 냉전 이데올로기 산물인 휴전은 불필요할 것이며 정전은 한반도 내의 평화 안착에 필요한 것이긴 하겠으나 그 주체와 객체에 대한 구분이 명확히 필요할 것이다.
현 세대는 통일의 필요성에 대하여 절감하는 것 같지 않다. 그것은 통일이 되었을 경우, 북한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부담을 우리가 떠안아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큰 듯하다. 그러나 꼭 한민족이라는 민족적인 민족국가적인 감정이 개입되는 것은 차지하고서라도 잘못된 분단과 잘못된 전쟁에 의한 것은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더불어 두 사회에서 지속적이고 소모적인 비난과 군비증강보다는 서호 발전적인 관계로의 지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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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10.15
  • 저작시기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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