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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 경험이 가져다주는 민중들의 자각적 성장을 가능케 하는 체제이다. 운동은 위기나 특정의 국면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평상시 장기간 병행하기 어렵다. 운동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오늘의 토론주제이기도 하지만, 운동에 진정으로 헌신하는 진보파들은 과거 그러했듯이 지금 다시 운동으로 돌아가 민주주의를 재활성화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민주화운동시기 운동의 자원들은 거의 고갈되었다. 그러할 때 운동을 재활성화하는 것이 오늘의 변화된 현실에서 얼마나 가능할지도 회의적이거니와,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민주화운동으로부터 현재의 트러블에 이르기까지 퇴행의 사이클이 다시 반복될 것이다. 축구경기를 예를 들어 보자. 사회경제적 개혁을 포함하여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축구경기에서 꼴을 넣는 것에 비유해 볼 수 있다. 사회경제적 개혁을 원치 않는 보수파, 기득이익들은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수비에 전념하고, 개혁자들은 공격수를 앞세워 공격을 강화한다고 하자. 이 경기에서 헤게모니라는 기득이익을 이롭게 하는 조건이 가세함으로 수비를 증강하는 효과를 갖는다. 홈그라운드, 심판, 경기규칙, 운동장조건, 기후조건 등이 헤게모니일 수 있고 그러한 요소들은 수비측에 커다란 이점을 부여한다. 개혁자팀의 공격수들의 공격은 상대방 수비수들에 의해 저지되고 차단되기 일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수비의 방어가 강하다고 해서 공격수들이 공을 후방으로 패스하기를 되풀이하면, 꼴을 넣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상대의 페널티지역에 접근도 못하고, 슛할 기회를 갖지도 못할 것이다. 어려운 방어망을 뚫기 위해 어떻게 하든지 전진패스를 해서 골문에 접근하지 않고서는 골을 넣을 기회를 갖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골 결정력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다시 시작하자고 하는 논리는, 결국 백패스만을 일삼게 되는 공격수에 비유될 수 있을지 모른다. 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민주화로부터 시작된 사이클에 지금 보다 더 빨리 봉착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부나 제도권에 진출했던 하지 않았던 운동권인사들, 지난날 운동의 경험을 갖는 진보파, 또는 개혁파, 또는 개혁적인 지식인전문가들은 헤게모니에 대응하여 어떤 정치적 힘의 중심을 건설하는 문제에 실패했고, 제도권내 세력들과 구분되는 어떤 비전이나, 프로그람을 발전시키지도 못했다. 운동, 개혁, 진보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민중참여의 정치적 실천은 자각된 대중의 전위부대가 운동을 통해 외부로부터 자극을 불어넣는 방법으로서 보다는, 민중들 스스로가 일상적 정치과정 내부에서 이를 실천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자극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그 힘들을 조직하여 새로운 힘을 창출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 권력의 작동과 민주주의의 제도와 작동원리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개인적으로 또 집합적으로 요구된다.
4) 오늘의 현실에서 운동으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해결의 방법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운동에 헌신하고 참여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과거 민주화시기보다 더 큰 운동가 개인의 자기희생과 실존적 문제가 제기된다. 말할 것도 없이 운동은 투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그리고 지금 운동은, 과거 민주화운동 시기에서와 같이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정치적 조건, 삶의 환경을 부정의하다고 부정하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이 일상적인 정치와 전 사회를 개혁의 대상으로 설정할 때 운동가는 그에 대응하는 이념과 가치, 규범과 신념을 스스로 다짐하고 단련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운동은 피할 수 없이 사회에 대해 갈등적이 되고, 이념적이 되며, 또 이러한 운동가의 사회적 역할과 지위는 사회를 향하여 어떤 효과를 갖기 이전에 자신 스스로에 대해 엄청난 압력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보만이 말하듯이, 민주주의는 개인생활의 삶의 조건과 공적 과업을 일상성속에서 결합하는 것을 통하여 실현되어야 하고, 그러한 태도와 실천을 지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오늘의 일상적 조건에서 운동가는 사적 생활과 공적 대의를 위한 행위간의 커다란 괴리와 양자 간의 긴장으로 고통받게 된다. 이것은 그의 행위가 사회를 개선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소외시키고 그 자신의 삶, 개인적 행복으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킨다.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를 스스로 강하게 설정할수록, 강한 이념을 스스로 발견해야 하고, 이념과 가치로 행위를 정당화해야 하기 때문에 개혁된 사회의 모습과 비전은 더 이상주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 본 발표자는 앞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변화의 다이나믹스를 열망-실망의 사이클로 특징지었다. 많은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 가능했던 운동이 전망하는 개혁이후 사회에 대한 열망은 클 수밖에 없고, 민주주의의 현실은 이를 감당할 수 없는 격차를 느끼도록 하고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을 초래하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거의 운동에 의한 민주화의 일반법칙과 같은 것이다. 운동을 통한 사회에 대한 이상주의적 비전은 먼저 운동가를 스스로에 대해 소외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그것은 반대로 행위의 결과가 만들어낸 실망에 대한 자기환멸을 만들 것임이 또한 분명하다. 이것은 스스로뿐만 아니라, 그 자신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많은 대중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거리감을 갖도록 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자기소외는 그의 사고와 행위가 지향하는 이상적으로 민주화된 사회의 모습과 비전은 실제의 사회에서 현존하는 공적생활과 가치와도 충돌하면서 공적으로도 소외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곧 허무주의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정치권과 운동권, 그리고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되어있는 허무주의는 우리사회의 병리적 정신상황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원인들은 여러 연원을 갖겠지만, 운동에 의한 민주화와 그것이 가져온 실망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사회심리적 현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의 동쪽 도쿄의 서쪽 한국 민주주의의 변형과 헤게모니 - 최장집
4) 오늘의 현실에서 운동으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해결의 방법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운동에 헌신하고 참여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과거 민주화시기보다 더 큰 운동가 개인의 자기희생과 실존적 문제가 제기된다. 말할 것도 없이 운동은 투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그리고 지금 운동은, 과거 민주화운동 시기에서와 같이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정치적 조건, 삶의 환경을 부정의하다고 부정하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이 일상적인 정치와 전 사회를 개혁의 대상으로 설정할 때 운동가는 그에 대응하는 이념과 가치, 규범과 신념을 스스로 다짐하고 단련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운동은 피할 수 없이 사회에 대해 갈등적이 되고, 이념적이 되며, 또 이러한 운동가의 사회적 역할과 지위는 사회를 향하여 어떤 효과를 갖기 이전에 자신 스스로에 대해 엄청난 압력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보만이 말하듯이, 민주주의는 개인생활의 삶의 조건과 공적 과업을 일상성속에서 결합하는 것을 통하여 실현되어야 하고, 그러한 태도와 실천을 지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오늘의 일상적 조건에서 운동가는 사적 생활과 공적 대의를 위한 행위간의 커다란 괴리와 양자 간의 긴장으로 고통받게 된다. 이것은 그의 행위가 사회를 개선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소외시키고 그 자신의 삶, 개인적 행복으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킨다.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를 스스로 강하게 설정할수록, 강한 이념을 스스로 발견해야 하고, 이념과 가치로 행위를 정당화해야 하기 때문에 개혁된 사회의 모습과 비전은 더 이상주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 본 발표자는 앞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변화의 다이나믹스를 열망-실망의 사이클로 특징지었다. 많은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 가능했던 운동이 전망하는 개혁이후 사회에 대한 열망은 클 수밖에 없고, 민주주의의 현실은 이를 감당할 수 없는 격차를 느끼도록 하고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을 초래하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거의 운동에 의한 민주화의 일반법칙과 같은 것이다. 운동을 통한 사회에 대한 이상주의적 비전은 먼저 운동가를 스스로에 대해 소외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그것은 반대로 행위의 결과가 만들어낸 실망에 대한 자기환멸을 만들 것임이 또한 분명하다. 이것은 스스로뿐만 아니라, 그 자신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많은 대중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거리감을 갖도록 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자기소외는 그의 사고와 행위가 지향하는 이상적으로 민주화된 사회의 모습과 비전은 실제의 사회에서 현존하는 공적생활과 가치와도 충돌하면서 공적으로도 소외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곧 허무주의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정치권과 운동권, 그리고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되어있는 허무주의는 우리사회의 병리적 정신상황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원인들은 여러 연원을 갖겠지만, 운동에 의한 민주화와 그것이 가져온 실망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사회심리적 현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의 동쪽 도쿄의 서쪽 한국 민주주의의 변형과 헤게모니 - 최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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