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공기청정기를 틀어놓는, 참으로 이상한 정신병자의 생활을 아무렇지도 않게 영위하고 있다. 농민운동은 이같은 이상한 생활에 대한 문제제기부터 시작해야만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부터 그러한 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
농민운동이 반미투쟁을 중심으로 해야 하느냐 반정부투쟁을 중심으로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사실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우리는 당연히 그때그때의 당면과제 성격에 따라 미국에 대해서도 정부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그런 투쟁에 앞서 우리는 대안의 실천, 대안의 생활을 자신부터 시작하는 것이 시급하다. 1960년대부터 산업화와 함께 우리사회에는 거대한 이농의 물결이 지속되었다. 10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자그만치 1천만명의 농민이 도시로 도시로 살길을 찾아 무작정 상경했다. 이제 우리는 거대한 귀농의 물결을 조직해야 한다. 숨막히는 도시노예를 벗어나 자유로운 노동의 연대를 꿈꾸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대이동을 준비해야 한다.
농민운동은 운동방업의 변화 또한 모색해야 한다. 지금은 군사독재의 시대가 아니라 적어도 언론과 집회, 출판.결사의 자유는 어느 정도 보장이 된 ‘민주회된’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아무리 방어수단이라 하더라도 대중동원형 폭력시위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시민의 공감도 얻지 못한다. 폭력시위를 통해 피를 흘리고 상처를 입는 것은, 국방의 의무 때문에 마지못해 거거 서있는 젊은 전경들뿐이며 대중동원형 시위 때문에 불평이 터져나오는 것은 교통체증에 짜증을 내는 일반시민들이다. 도식화되어 버린 “불타는 전경차와 피흘리는 농민” 식의 언론보도 탓을 할 게 아니라 실제 시위 형태를 철저한 비폭력 평화노선으로 바꾸어야 한다. 생태적 전환을 추구하는 ‘현재의 햇빛농업’은 뭇생명까지도 살리는, 지극히 평화를 지향하는 농업.농민운동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치밀한 사전준비를 통해 군대급식을 유기농으로 바꾸라고 국방부 앞에서 평화로운 연좌시위를 하는 게 백배 낫다. 학교급식을 자연순환형 ‘현재의 햇빛농산물’로 바꾸라고 교육부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공연을 펼치는 게 훨씬더 수많은 인민들을 감동시키고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도시의 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먹을거리의 안전성 문제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이들이 아토피와 각종의 도시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먹을거리만 깨끗하다고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지만 그러나 우선 당장 안전한 먹을거리라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와 군대 급식만 제대로 ‘현재의 햇빛농산물’로 바꾸어도, 여기에 노동조합과 연대해 기업 급식까지 유기농으로 바꾸어도, 초중고 400만명, 대학생 250만명, 공무원 140만명,군인 60만명, 기업까지 합하면, 이것만 하더라도 ‘현재의 햇빛농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은 충분히 마련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자식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해 농민들이 싸운다는 데 외면하거나 반대할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 이런 운동에 드러내놓고 반대할 언론이나 정치인, 기업인들도 사실 많지 않다.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이라고 해봐야 비행기 몇 대 값이다. 솔직히 고속도로 1km 건설비용이 약 600억이다. 그리고 토건족만 살찌우는 더 이상의 도로건설은 중지되어야 마땅하다. 바로 이런 예산이 우리사회의 농업.농민 살리기에 투입되어야 한다.
농민운동은 이런 긍정의 건설과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쟁취하기 위해 과감하게 싸워나가야 한다. 이외에도 농민운동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도시농업, 주말농장 활성화의 프로그램을 마련해 ‘현재의 햇빛농업’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인식을 도시인들에게 체험하게 해야 한다. 학교를 비롯, 각종의 도시 공간에서 확산되는 ‘현재의 햇빛농업’ 농지는 젊은이들의 산체험장일 뿐만 아니라 귀농운동의 산실이 되기도 할 것이다.
저항과 방어만으로는 새로운 세상은 개척되지 못한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수많은 문제 가운데 가장 휘발성이 강한 의제가 비정규직 문제와 농업문제이다. 농민운동은 이제 대안의 농업.농민운동을 시작해야 하며 그것은 ‘현재의 햇빛농업’과 농민운동에 대한 폭 넓은 인민의 지지를 형성하는 일이자 생태적 전환을 밑에서부터 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농민운동은 아직도 충분히 그러한 긍정과 대안의 운동으로 전환할 힘이 있으며, 그것이 역사 속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농민운동 선배들의 헌신에 값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주 미약한 실천일지라도 나부터 시작하는 실천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이끌어내는 나비의 날개짓이다.
농민운동이 반미투쟁을 중심으로 해야 하느냐 반정부투쟁을 중심으로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사실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우리는 당연히 그때그때의 당면과제 성격에 따라 미국에 대해서도 정부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그런 투쟁에 앞서 우리는 대안의 실천, 대안의 생활을 자신부터 시작하는 것이 시급하다. 1960년대부터 산업화와 함께 우리사회에는 거대한 이농의 물결이 지속되었다. 10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자그만치 1천만명의 농민이 도시로 도시로 살길을 찾아 무작정 상경했다. 이제 우리는 거대한 귀농의 물결을 조직해야 한다. 숨막히는 도시노예를 벗어나 자유로운 노동의 연대를 꿈꾸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대이동을 준비해야 한다.
농민운동은 운동방업의 변화 또한 모색해야 한다. 지금은 군사독재의 시대가 아니라 적어도 언론과 집회, 출판.결사의 자유는 어느 정도 보장이 된 ‘민주회된’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아무리 방어수단이라 하더라도 대중동원형 폭력시위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시민의 공감도 얻지 못한다. 폭력시위를 통해 피를 흘리고 상처를 입는 것은, 국방의 의무 때문에 마지못해 거거 서있는 젊은 전경들뿐이며 대중동원형 시위 때문에 불평이 터져나오는 것은 교통체증에 짜증을 내는 일반시민들이다. 도식화되어 버린 “불타는 전경차와 피흘리는 농민” 식의 언론보도 탓을 할 게 아니라 실제 시위 형태를 철저한 비폭력 평화노선으로 바꾸어야 한다. 생태적 전환을 추구하는 ‘현재의 햇빛농업’은 뭇생명까지도 살리는, 지극히 평화를 지향하는 농업.농민운동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치밀한 사전준비를 통해 군대급식을 유기농으로 바꾸라고 국방부 앞에서 평화로운 연좌시위를 하는 게 백배 낫다. 학교급식을 자연순환형 ‘현재의 햇빛농산물’로 바꾸라고 교육부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공연을 펼치는 게 훨씬더 수많은 인민들을 감동시키고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도시의 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먹을거리의 안전성 문제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이들이 아토피와 각종의 도시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먹을거리만 깨끗하다고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지만 그러나 우선 당장 안전한 먹을거리라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와 군대 급식만 제대로 ‘현재의 햇빛농산물’로 바꾸어도, 여기에 노동조합과 연대해 기업 급식까지 유기농으로 바꾸어도, 초중고 400만명, 대학생 250만명, 공무원 140만명,군인 60만명, 기업까지 합하면, 이것만 하더라도 ‘현재의 햇빛농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은 충분히 마련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자식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해 농민들이 싸운다는 데 외면하거나 반대할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 이런 운동에 드러내놓고 반대할 언론이나 정치인, 기업인들도 사실 많지 않다.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이라고 해봐야 비행기 몇 대 값이다. 솔직히 고속도로 1km 건설비용이 약 600억이다. 그리고 토건족만 살찌우는 더 이상의 도로건설은 중지되어야 마땅하다. 바로 이런 예산이 우리사회의 농업.농민 살리기에 투입되어야 한다.
농민운동은 이런 긍정의 건설과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쟁취하기 위해 과감하게 싸워나가야 한다. 이외에도 농민운동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도시농업, 주말농장 활성화의 프로그램을 마련해 ‘현재의 햇빛농업’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인식을 도시인들에게 체험하게 해야 한다. 학교를 비롯, 각종의 도시 공간에서 확산되는 ‘현재의 햇빛농업’ 농지는 젊은이들의 산체험장일 뿐만 아니라 귀농운동의 산실이 되기도 할 것이다.
저항과 방어만으로는 새로운 세상은 개척되지 못한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수많은 문제 가운데 가장 휘발성이 강한 의제가 비정규직 문제와 농업문제이다. 농민운동은 이제 대안의 농업.농민운동을 시작해야 하며 그것은 ‘현재의 햇빛농업’과 농민운동에 대한 폭 넓은 인민의 지지를 형성하는 일이자 생태적 전환을 밑에서부터 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농민운동은 아직도 충분히 그러한 긍정과 대안의 운동으로 전환할 힘이 있으며, 그것이 역사 속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농민운동 선배들의 헌신에 값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주 미약한 실천일지라도 나부터 시작하는 실천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이끌어내는 나비의 날개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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