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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여전히 깊은 영성을 지녔던 블룸하르트
블룸하르트는 1906년 지방의회 의원 임기를 마치자 재출마 권유를 물리치고 팔레스틴(이스라엘) 여행길에 오른다.
그는 1888년까지 대전도운동을 전개하고 병자들을 고쳤으며 그후 약 10년 동안 명상과 피정 생활을 했다. 이후 그는 프롤레타리아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하느님 나라’를 강조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블룸하르트의 여정이 왔다갔다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정작 블룸하르트의 생각은 초지일관 ‘하느님 나라를 기다림’이었다.
그에게 기다림의 공동체는 곧 이 세상에서 실현될 하느님 나라의 교두보였다.
그는 그의 아버지처럼 ‘예수가 승리한다!’는 확신 가운데 살았다. 여동생 안나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주름살 투성이의 손을 가슴에 얹고 조용히 누워 있거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하고 속삭였다.”
1919년 8월 2일 영면한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예수가 승리했다는 것은
영원히 남으리라.
온 세계는 그의 것이 되리라.
※ 이 글은 『혁명적 신앙인들』(1987년, 손규태 편저, 한국신학연구소 펴냄)을 주교재로 블룸하르트의 삶을 정리했습니다
여전히 깊은 영성을 지녔던 블룸하르트
블룸하르트는 1906년 지방의회 의원 임기를 마치자 재출마 권유를 물리치고 팔레스틴(이스라엘) 여행길에 오른다.
그는 1888년까지 대전도운동을 전개하고 병자들을 고쳤으며 그후 약 10년 동안 명상과 피정 생활을 했다. 이후 그는 프롤레타리아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하느님 나라’를 강조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블룸하르트의 여정이 왔다갔다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정작 블룸하르트의 생각은 초지일관 ‘하느님 나라를 기다림’이었다.
그에게 기다림의 공동체는 곧 이 세상에서 실현될 하느님 나라의 교두보였다.
그는 그의 아버지처럼 ‘예수가 승리한다!’는 확신 가운데 살았다. 여동생 안나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주름살 투성이의 손을 가슴에 얹고 조용히 누워 있거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하고 속삭였다.”
1919년 8월 2일 영면한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예수가 승리했다는 것은
영원히 남으리라.
온 세계는 그의 것이 되리라.
※ 이 글은 『혁명적 신앙인들』(1987년, 손규태 편저, 한국신학연구소 펴냄)을 주교재로 블룸하르트의 삶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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