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사회의 체계적인 교육에 대한 고찰(아고게 내용 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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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스파르타사회의 체계적인 교육에 대한 고찰(아고게 내용 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새로운 집단인 '피디티온'은 공동 식사의 생활 단위로 일종의 식사 클럽이었다.
피디티온의 성원의 수는 플루타르쿠스가 15명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한 후 오늘날 정설로 통하고 있다. 또 피디티온 구성원은 다같이 '함께 식사하고, 할게 훈련받고, 함께 전투'를 했던 사회 제도이며 동시에 군사 제도였다고도 한다.
어쨌든 스파르타 시민들은 20세에서 60세까지 공동 식사를 해야하였다. 왕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찍이 아기스왕이 아테네군과 싸워 이기고 왔을 때 왕은 왕비와 함께 사저에서 식사를 하고자 공동 식당으로 사람을 보내서 자기 몫을 보내라고 하였으나 거절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노한 왕은 다음 날에 관례를 좇아 드려야 할 제례를 드리지 않았다가 과료를 지불하였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4. 장년기(30세부터 60세까지)
30세가 되면 스파르타인은 비로소 완전시민의 자격이 갖추어지게 된다. 그들은 가정에서 부인과 같이 잠도 자고 생활하며, 시장에 나가 장도 봐올 수 있었다. 또 민회가 소집되면 거기에 나가 투표권과 피선거권 등을 행사할 수 있는 참정권도 부여받았다. 그들은 민회에서 주요 정책 사항들을 표로 결정했고, 시민으로서 에포로스직이나 그 밖의 다른 주요 관직에 오를 수도 있었다.
30-40세까지는 전사로서는 전성기이지만, 40세 이후의 장년기에도 그는 항상 훈련을 해서 적절하고 기만한 몸의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스파르타인의 병역 복무기간이 60세까지였기 때문에, 시민 중에서 적합한 신체를 계속 유지하지 못한 사람은 스파르타 시민권을 잃을 수도 있었다. 오직 60세가 지나야 그는 처벌받지 않고 쉴 수 있었다. 그래서 스파르타인들은 군사복무기간에는 모두 운동을 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5. 노년기(60세부터 종신까지)
스파르타 시민은 노년기인 60세가 되어야 비로소 군사 복무의 의무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렇다고 하여 시민으로서 그들의 역할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커지고 중요해졌다. 그들은 매달 한번씩 모여 신생아의 신체검사를 하고, 아고게에서의 소년교육과 훈련을 감독하기도 하였다. 더욱더 중요한 것으로서, 그들 중에서 시민들에 의해 28명의 원로인들인 게론테스가 선출되었다. 그들은 2명의 국왕과 더불어 스파르타 원로원인 게루시아를 구성하여 정치와 재판의 일익을 담당하는 등 국가 지도자로서 국사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 스파르타 시민은 태어난 순간부터 무덤에 묻힐 때까지 국가만을 위해 살았던 것이다.
<소녀들의 훈련>
그리스의 다른 폴리스, 특히 아테네에서는 여자를 가정에 가둬두고 사람들 앞에 내보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스파르타 가정에서의 소녀들은 실을 잣고 직물을 짠다는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여성들의 일을 배우지 않았다. 스파르타인들에게 그런 일은 노예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스파르타 전사의 어머니는 종일 배틀에 앉아 육체에서 활력을 앗아가는 일을 하면 안되었다. 소녀 역시 소년들과 비슷하게 철저한 양육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여자체육을 장려하여 달리기·레슬링·투원반·투창 등의 격렬한 성격의 운동연습을 해야만 했다. 여성들은 열성적으로 운동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아이들이 스파르타의 체제가 요구하는 육체적 건강함의 기준에 맞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 심지어 소녀들은 뛰면서 엉덩이에 발뒤꿈치가 닿게 하는 '비바시스'라는 매우 격렬한 운동이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뤼시스트라타」에 나오는 스파르타 여성은 이를 할 수 있다고 자부심에 차서 자랑하고 있다. 또한 제사 때는 청년들과 함께 나체로 행렬에 가담하고 청년들이 경기에 실패하거나 하면 품위있게 조롱하는 일조차 있었다. 또 청년들 앞에서 노래하거나 춤추는 것도 보통이었다. 이런 일은 여느 폴리스의 얌전한 여성들에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녀들도 소년들처럼 패를 나누어 편제되었지만,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런지 엄한 훈련은 받지 않았다. '테오크리토스'는 60명씩 네 패의 소녀들이 몸에 기름을 바르고, 소년들처럼 에우로타스 강변을 따라 경주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경연이나 상품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합창을 할 때 그들 사이의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들의 순진한 질투심과 야심은 가볍게 다루어지고, 부드럽게 놀리는 조로 쓰여 있지만, 소녀 사이의 경쟁과 경쟁심이 남자 못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파르타인 사이에서는 남자건 여자건, '팀플레이'가 정점에까지 이르렀고, 이를 경감시키고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개인간의 경쟁심을 도입해야 할 지경이었다는 것을 주의 깊게 주목해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일정한 경쟁심은 모든 훈련에서 마찬가지로 있었다.
3. 결론
이상으로, 스파르타 교육에 대한 훈련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소년들은 국가의 체계 안에서 국가를 지키는 강한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해나가고 있었고, 소녀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소녀들도 소년들만큼의 그런 체계 속에서 훈련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폴리스 국가들과는 다르게 여성의 강함을 추구하였다.
소년들은 강한 병사를 양성하려는 육체단련, 군사교육에서도 어떠한 고통스러운 싸움터의 생활에서도 이겨낼 수 있도록 평소에도 엄격한 생활이 시행되었다. 그 때문에 스파르타인은 싸움터의 생활이 훨씬 즐거워서 전쟁이 나면 단련 과정의 휴식처럼 유유하게 생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스파르타인은 교육과 훈련체계 아래에서 시민으로서 본분을 잃지 않고, 정말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맞추어 나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각 자신의 자유를 체계 안에서 제한하고, 군사력이 바탕이 된 강한 나라가 된 스파르타!!, 고대 그리스 문명에서 너무나 그리스만을 치중하다보니, 이런 위대한 나라의 실상이 그저 싸움만을 강조한 야만족국가로 치닫고 있는 게 아닐까?
무를 숭상한 나라, 스파르타!! 조국을 위한 죽음은 기쁘고 아름답다고까지 표현한 그들의 애국심이 너무도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참고자료>
허승일 저, "스파르타 교육과 시민 생활" 1998, 삼영사
조성을 편역, "에게海의 아침, 로마의 황혼" 1988, 집현전
윤진 옮김, "스파르타" 2000, 신서원, 험프리 미첼 지음
  • 가격2,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8.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8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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