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그래도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과거 신학교처럼 중도에 성소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신학교가 이들의 고민의 실체를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신학생들에게 디지털 시대에 맞는 ‘중간문화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허용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도전이냐 안주함이냐’는 질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학생들에게 던져진 화두이다. 디지털 시대에 과감하게 아날로그 방식의 삶을 선택하는 용기를 가질 것인지, 아니면 디지털 매체가 지닌 복음적 도구의 성격을 십분 활용하는 지혜를 찾을 것인지 둘 다 오늘을 사는 신학생들에게 주어진 고민거리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본래 디지털이나 아날로그와 같은 전달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심연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디지털 문화를 선용한다 하더라도, 아날로그의 느림과 여유를 즐긴다고 하더라도, 정작 하느님이 나를 부르고 계시다는 확신 없이는 우리 역시 허상을 쫓는 시대에 영합하는 폐인족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 번 꼭 물을 일이다.
‘도전이냐 안주함이냐’는 질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학생들에게 던져진 화두이다. 디지털 시대에 과감하게 아날로그 방식의 삶을 선택하는 용기를 가질 것인지, 아니면 디지털 매체가 지닌 복음적 도구의 성격을 십분 활용하는 지혜를 찾을 것인지 둘 다 오늘을 사는 신학생들에게 주어진 고민거리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본래 디지털이나 아날로그와 같은 전달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심연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디지털 문화를 선용한다 하더라도, 아날로그의 느림과 여유를 즐긴다고 하더라도, 정작 하느님이 나를 부르고 계시다는 확신 없이는 우리 역시 허상을 쫓는 시대에 영합하는 폐인족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 번 꼭 물을 일이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