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식을 마친 신부가 시부모님께 정식으로 첫인사를 올리는 의식이다.
결혼과 더불어 출가외인이 되고 남편 집 안의 호적에 올라 그 집안의 가계를 잇기 위한 며느리로서 살아 갈 여인들이 살아가던 시대의 의식이다.
현시대는 남녀평등을 넘어 양성평등의 시대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폐백을 드릴 때 신부가 절을 올릴 때 뒤에 서 있기만 하던 신랑도
함께 절을 하기도 하고 어떤 집들은 양가 부모가 함께 받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폐백이 아니다.
폐백이라는 의미도 모른 채 전통혼례복 한번 입어보는 행사라고 생각 한다면 차라리 그만두는 것이
신부와 시부모관계에 더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알지 못하는 그런 생소한 의식을 치룬 후의 신부의 시댁에 관한 감정은
자연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요즈음 여성들이 시집을 싫어하는 표현으로 ‘시’자가 들어 시금치도 안 먹는 다는 말이 있다.
자유롭게 자라 어른을 어려워하기 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더 당당하게 표현하는 신세대 여성들에게
결혼식 직후 행해지는 폐백의식이 시집과 가까워지기 싫은 잠재적 요인으로 자리 잡는 데 한 몫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이조왕조600년 시대에 다녀온 느낌이 든다면 은연중 저항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삶의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 주거형태(초가에서 아파트로), 의복(한복에서 양복으로) 모두가 바뀌었다. 옛것과 지금의 것 모두를 취하며 살 수는 없다.
새집 가서 살려면 헌 집을 떠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음식 또한 아침에 밥도 먹고 빵도 먹는 식이 아닌 밥 대신 빵이나 떡 등으로 선택해서 먹는다.
남존여비사상도 양성평등으로 확 바뀌었다.
남녀 불평등의 주범이라던 호주제도 폐지되었다.
옛 사고로 본다면 천지가 개벽 할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여성들은 양성평등을 외치며 유독 결혼문화 만큼은 양복 입었다 한복입고
이조왕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관습을 따르는 것이 의아스럽다.
대학생 때 한창 미니스커트가 유행할 때였다.
집안 어른들이 오셔서 ‘안녕 하셨어요?’ 하며 고개 숙여 인사를 했는데
어머니께서 다시 절을 하라고 하셨다.
인사를 두 번 하는 것 같고 치마도 짧아 어정쩡하게 서 있을 때
아버지께서 ‘괜찮다, 인사했으면 됐지.’하시며 가로 막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상대 어른을 무시하는 것 같은 말이었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확실하셨다.
옛날에 한복입고 살 때 이야기지, 미니스커트입고 카페트 위에서 무슨 절을 하고 쇼파에 앉아
무슨 절을 받느냐고 당신의 주장을 펼치셨다.
좀 더 보수적인 어머니는 질색을 하셨지만 그 후로 어른들이 오셨을 때 나의 선택은 확실하게 인사로
그쳤다. 그 대신 가까운 어른일 경우 인사하며 다가가 포옹도 하는 등 스킨 쉽을 즐기게 되었고
어른들도 절 받는 것 못지않게 흡족해 하셨던 기억이 있다.
4.예단
[정말 웃기고도 슬픈, 그러나 아직은 우리 현실의 일부분인 예단이야기]
어느덧 오십 중반, 딸을 둔 친구들이 하나 둘씩 사위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한 친구가 딸의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돌린 상태에서 파혼을 하게 되었다.
파혼의 사연은 뉴스에서 가끔 이야기 거리가 될 때 ‘설마 그런 일이 아직도?’ 라는 생각이 들었던
예단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당사자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믿지 못했을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네 딸 평생의 액땜을 했으니 오히려 잘되었다.’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의사라도 개업의가 아닌 대학병원에 있으면서 평생을 월급쟁이 아내로 아끼고 저축하며 살아 온 친구가 딸의 결혼을 앞두고 예단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딸을 생각해서 사돈집에 정성을 다하려고 하는 부모의 마음에 감탄을 했었다. 물론 중매를 통해 만난 사위 될 청년이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똑똑하고
유능한 청년이라니 세상풍조 흉내는 내야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여튼 친구는 자신은 평생에 한 번도 해 입어보지도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엄청난 가격의
옷과 핸드백, 침구류...거액을 들인 물건과 현금을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잘 받았다는 인사가 없더니 사위될 청년이 딸에게 전화를 걸어 하는 말이
자신의 주변에는 예단으로 집과 자동차는 기본이고 사무실을 열어주기도 하고 빌딩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란다.
이쯤에서 상황을 깨달은 딸아이가 상대를 만나 자신의집은 그럴 형편도 안 되며 설혹 있다 하더라도
그럴 생각이 전혀 없고 이런 결혼은 할 수 없다고 해버렸단다.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결혼문화의 일부분이다.
예단은 본래 신부가 시댁에 예의를 표시하기 위해 보내는 선물로 비단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점차 발전해 신부가 그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가며 시댁식구 들에게 인사로 드리는 선물을 통틀어 말하게 되었다. 물론 가정마다 능력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20~30년 전 만해도
친척들의 이부자리 몇 채씩 보내려면 용달차가 동원되기도 했었다.
요즈음은 현물예단 외에 돈이 오가는 현금예단이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각 가정의 형편대로 신부 측에서 신랑 집에 현금예단을 보내면
신랑 측에서 다시 50%정도를 신부 측에 되돌려 준다고 한다.
또 이런 방식의 예단 외에 시댁에서 쓰던 오래된 전기제품을 신형으로 교체해주는
실용적인 예단도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결혼을 앞두고 양가의 관계가 시작되면서 행해지는 예단 문화를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이런 방식으로 유지시켜야 하는가?
결혼하면 출가외인이 되어야 하고 시집귀신이 되라고 교육받던 그 옛날과
시댁에 대한 여성들의 사고가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도 적합한가? 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여성학자들이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사회의 구석구석 남녀 불평등사항들을 바로잡아가고 있다.
그동안 남녀평등을 가로막는 가장 큰 주범으로 지목한 호주제도 폐지시켰다.
그러나 호주제가 폐지된다고 한들 지금과 같은 예단문화가 결혼이라는 의식 한켠에 자리 잡고 있다면
하나의 가정이 탄생함에 있어서 남녀가 진정으로 동등하게 시작된다고 볼 수 있을까?
결혼과 더불어 출가외인이 되고 남편 집 안의 호적에 올라 그 집안의 가계를 잇기 위한 며느리로서 살아 갈 여인들이 살아가던 시대의 의식이다.
현시대는 남녀평등을 넘어 양성평등의 시대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폐백을 드릴 때 신부가 절을 올릴 때 뒤에 서 있기만 하던 신랑도
함께 절을 하기도 하고 어떤 집들은 양가 부모가 함께 받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폐백이 아니다.
폐백이라는 의미도 모른 채 전통혼례복 한번 입어보는 행사라고 생각 한다면 차라리 그만두는 것이
신부와 시부모관계에 더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알지 못하는 그런 생소한 의식을 치룬 후의 신부의 시댁에 관한 감정은
자연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요즈음 여성들이 시집을 싫어하는 표현으로 ‘시’자가 들어 시금치도 안 먹는 다는 말이 있다.
자유롭게 자라 어른을 어려워하기 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더 당당하게 표현하는 신세대 여성들에게
결혼식 직후 행해지는 폐백의식이 시집과 가까워지기 싫은 잠재적 요인으로 자리 잡는 데 한 몫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이조왕조600년 시대에 다녀온 느낌이 든다면 은연중 저항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삶의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 주거형태(초가에서 아파트로), 의복(한복에서 양복으로) 모두가 바뀌었다. 옛것과 지금의 것 모두를 취하며 살 수는 없다.
새집 가서 살려면 헌 집을 떠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음식 또한 아침에 밥도 먹고 빵도 먹는 식이 아닌 밥 대신 빵이나 떡 등으로 선택해서 먹는다.
남존여비사상도 양성평등으로 확 바뀌었다.
남녀 불평등의 주범이라던 호주제도 폐지되었다.
옛 사고로 본다면 천지가 개벽 할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여성들은 양성평등을 외치며 유독 결혼문화 만큼은 양복 입었다 한복입고
이조왕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관습을 따르는 것이 의아스럽다.
대학생 때 한창 미니스커트가 유행할 때였다.
집안 어른들이 오셔서 ‘안녕 하셨어요?’ 하며 고개 숙여 인사를 했는데
어머니께서 다시 절을 하라고 하셨다.
인사를 두 번 하는 것 같고 치마도 짧아 어정쩡하게 서 있을 때
아버지께서 ‘괜찮다, 인사했으면 됐지.’하시며 가로 막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상대 어른을 무시하는 것 같은 말이었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확실하셨다.
옛날에 한복입고 살 때 이야기지, 미니스커트입고 카페트 위에서 무슨 절을 하고 쇼파에 앉아
무슨 절을 받느냐고 당신의 주장을 펼치셨다.
좀 더 보수적인 어머니는 질색을 하셨지만 그 후로 어른들이 오셨을 때 나의 선택은 확실하게 인사로
그쳤다. 그 대신 가까운 어른일 경우 인사하며 다가가 포옹도 하는 등 스킨 쉽을 즐기게 되었고
어른들도 절 받는 것 못지않게 흡족해 하셨던 기억이 있다.
4.예단
[정말 웃기고도 슬픈, 그러나 아직은 우리 현실의 일부분인 예단이야기]
어느덧 오십 중반, 딸을 둔 친구들이 하나 둘씩 사위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한 친구가 딸의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돌린 상태에서 파혼을 하게 되었다.
파혼의 사연은 뉴스에서 가끔 이야기 거리가 될 때 ‘설마 그런 일이 아직도?’ 라는 생각이 들었던
예단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당사자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믿지 못했을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네 딸 평생의 액땜을 했으니 오히려 잘되었다.’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의사라도 개업의가 아닌 대학병원에 있으면서 평생을 월급쟁이 아내로 아끼고 저축하며 살아 온 친구가 딸의 결혼을 앞두고 예단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딸을 생각해서 사돈집에 정성을 다하려고 하는 부모의 마음에 감탄을 했었다. 물론 중매를 통해 만난 사위 될 청년이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똑똑하고
유능한 청년이라니 세상풍조 흉내는 내야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여튼 친구는 자신은 평생에 한 번도 해 입어보지도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엄청난 가격의
옷과 핸드백, 침구류...거액을 들인 물건과 현금을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잘 받았다는 인사가 없더니 사위될 청년이 딸에게 전화를 걸어 하는 말이
자신의 주변에는 예단으로 집과 자동차는 기본이고 사무실을 열어주기도 하고 빌딩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란다.
이쯤에서 상황을 깨달은 딸아이가 상대를 만나 자신의집은 그럴 형편도 안 되며 설혹 있다 하더라도
그럴 생각이 전혀 없고 이런 결혼은 할 수 없다고 해버렸단다.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결혼문화의 일부분이다.
예단은 본래 신부가 시댁에 예의를 표시하기 위해 보내는 선물로 비단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점차 발전해 신부가 그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가며 시댁식구 들에게 인사로 드리는 선물을 통틀어 말하게 되었다. 물론 가정마다 능력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20~30년 전 만해도
친척들의 이부자리 몇 채씩 보내려면 용달차가 동원되기도 했었다.
요즈음은 현물예단 외에 돈이 오가는 현금예단이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각 가정의 형편대로 신부 측에서 신랑 집에 현금예단을 보내면
신랑 측에서 다시 50%정도를 신부 측에 되돌려 준다고 한다.
또 이런 방식의 예단 외에 시댁에서 쓰던 오래된 전기제품을 신형으로 교체해주는
실용적인 예단도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결혼을 앞두고 양가의 관계가 시작되면서 행해지는 예단 문화를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이런 방식으로 유지시켜야 하는가?
결혼하면 출가외인이 되어야 하고 시집귀신이 되라고 교육받던 그 옛날과
시댁에 대한 여성들의 사고가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도 적합한가? 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여성학자들이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사회의 구석구석 남녀 불평등사항들을 바로잡아가고 있다.
그동안 남녀평등을 가로막는 가장 큰 주범으로 지목한 호주제도 폐지시켰다.
그러나 호주제가 폐지된다고 한들 지금과 같은 예단문화가 결혼이라는 의식 한켠에 자리 잡고 있다면
하나의 가정이 탄생함에 있어서 남녀가 진정으로 동등하게 시작된다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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