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국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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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국의 이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를 모함하여 죽였던 것이다. 그리고 남송은 금에게 신하로 자처하고 영토를 일부 떼어주고 매년 은 25만냥과 비단 25만필을 받치는 내용의 ‘紹興和議(소흥은 지방 이름)’를 맺었던 것이다.
그를 모함했던 秦檜는 지금도 중국인들로부터 가장 비난받는 인물이다. 개인의 권력유지를 위해 국가의 이익을 돌보지 않은 전형적인 인물로 간주되어 있다. 岳飛는 외세에 적극 저항함으로써 지금도 漢族의 존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이순신 장군에 비견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王昭君과 더불어 중국이 겪은 약소국의 슬픔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元대에 이르러 한족왕조들은 본토를 통째로 몽골족에 빼앗겼다. 몽골족들은 漢族을 약 100년간 통치했다. 나아가 다른 민족들을 우대하고 漢族은 고의적으로 차별대우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원대에 농민은 지주의 사유재산으로 매매가 가능했고 농민을 죽일 경우 가축을 도살했을 때의 처벌과 같은 수준이었다. 한족은 개나 닭도 기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에 엄청난 분노를 느꼈을 텐데 그 증거를 찾기 어렵다. 이때의 비애를 문학작품으로 묘사한 것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漢族들은 200여만 밖에 되지 않은, 그들이 멸시해 마지 않은 몽골족의 통치를 차별대우까지 받아 가면서 고분고분 참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원의 지배에 대한 한족의 저항은 미미했다.
참고로 중국어로 몽골은 ‘蒙古’라고 표기하는 고루한 것을 뒤집어 썼다는 뜻이니까 결코 좋은 뜻이 아니다. 한족들이 예의를 안다면 다른 뜻의 漢字로 바꾸어 표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元代 당시 중국은 몽골 세계제국에 속하는 한 개의 식민지에 볼과했다.
明은 몽골족의 지배를 제거하고 수립되었으나 몽골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다. 몽골족은 오이라트 부족이 통일한 이후 멋데로 쳐들어와 약탈하고 한족을 포로로 잡아가는 일이 빈번했다. 北京에 가면 북쪽의 교외지역에 유명한 萬里長城이 필수 관광코스로 되어 있다. 이것은 秦대에 만들어진 형태가 아니라 明대에 이르러 전면 개축한 것이다. 몽골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엄청난 물자와 인력을 투입한 것이다. 현재의 만리장성 외관의 웅장함은 대단하지만 그것이 내면에 담고 있는 것은 명이 몽골족에 당했던 고통이다. 만리장성의 웅장함은 몽골족의 막강한 침입이 만들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淸대에 이르러 한족들이 당한 고통은 전대를 훨씬 뛰어 넘었다. 이번에는 몽골족 대신에 만주족에게 당했다. 원대의 100년보다 훨씬 더 장기간인 250년 이상 꼼짝없이 통째로 만주족의 통치를 받았다. 당시 만주족의 인구는 200여 만에 불과했으며 한족의 인구는 약 1억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이때는 원대와 달리 한족들은 상당한 저항을 했다. 청대에 漢族은 원대와 달리 차별대우는 받지 않았는데 아마도 이런 저항의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臺灣에서 몇 십년간이나 만주족의 지배에 저항한 鄭成功은 매우 유명하다. 우리 고려 때 제주도에서 끝까지 몽골에 저항했던 배중손 장군의 삼별초에 비교할 수 있다. 현재에도 그는 대만에서 가장 존중받는 인물이다. 그 역시 외세에 저항한 장군이다. 현재 臺灣의 臺南시에는 그의 이름을 딴 ‘成功大學이 있는데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 만든 대학이다.
그리고 국민당을 창당하고 辛亥革命에 영향을 준 孫文도 창당의 명분을 만주족의 청을 전복하는 것으로 삼았었다. 이때의 구호가 ‘驅逐虜 回復中華(虜를 내몰고 중화를 회복하자)’이었다. ‘虜\'란 청정부를 경멸하여 부르는 용어이었다. 그러니까 ’虜‘와 ’中華‘는 분명히 구분될 뿐만 아니라 \'虜\'는 물리쳐야 할 외적인 것이다. 비유하면 우리의 일제시대의 일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재 중국에서는 청 역시 중국으로 간주하고 뿐만 아니라 청의 康熙帝를 역대 왕 중에서 거의 최고로 친다. 청의 억압을 받은 비애를 다룬 문학작품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이 고도의 문화를 창출한 것은 존중할 만 하다. 또 우리가 그것의 덕을 본 것에 대해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한족정권이 막강했었다는 우리의 통념에는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서 한족정권들이 줄곧 패권을 유지했다는 일반적인 상식은 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유목민족을 시원하게 정복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통치한 적도 없다. 반대로 그들에게 없이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하고 그리하여 약소국의 비애를 경험했다. 여러 유목민족들에게 비단등의 貢物과 貢女도 바쳤다. 또 그에 事大의 예를 갖춘 적도 부지기수이다. 중국도 알고 보면 불쌍했던 과거가 많은 것이다.
한족왕조들의 역사는 북쪽과 서쪽의 유목민족들에게 줄곧 약탈, 정복당한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에는 그러니까 춘추전국시대와 秦漢대에는 약탈을 당하고 조공을 받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유목민족들의 漢族王朝에 대한 압력과 침입은 거세어져 갔다. 그들은 魏晋南北朝시대에 이르러 본토의 절반인 북부에서 300여년간이나 국가를 유지했다. 宋대에도 마찬가지이었고 원대에 이르러서는 본토 전체가 몽골족의 식민지로 되었다가 청대에는 거의 3세기 동안이나 지배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전체 역사를 통털어 한족왕조들이 이들에게 받은 조공은 물론이고 수모와 약탈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족 역시 우리 민족과 마찬가지로 눈물로 범벅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그것이 ‘多民族統一國家’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한족국가이다. 또 다민족 통일국가라는 명제를 가지고 유목민족이 본토에 세웠던 왕조들도 모두 중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런 눈물과 슬픔의 역사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어두고 모두 중국 국내의 일로 간주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악비 그리고 정성공, 손문등 유목민족에게 저항했던 모든 한족영웅들은 중국내에서 반란세력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된다. 한족의 자존심과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에게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동시에 이 논리에 대해 여러 유목민족들은 정말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참고로 新彊지방과 티
  • 가격3,000
  • 페이지수17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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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82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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