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대상이 되지 않는 인물은 없다. 결국 『무정』이 가지는 계몽주의적 주제의식은 그러한 권위적인 서술자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적으로 발화되고 있는 것이다.
근대소설에서 혹은 현대소설에서 서술자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무정』은 최초의 근대장편소설이라고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정』에서 확인되는 서술자의 권위적인 목소리는 『무정』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초점이 ‘근대소설’이 아닌 ‘최초’에 놓여져야 하는 것임을 깨우쳐 준다.
내면적 갈등의 표출, 심리적 인물의 형상화
고전소설에서 근대소설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의 하나가 행동중심에서 인물중심으로 이야기의 초점이 바뀌는 것이다. 특히 인물의 내면적 갈등에 초점이 놓이기 시작한다.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과거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가치관을 어떻게 실천하며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고전소설에서는 어떠한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근대사회에서는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확고한 가치관이 부재한 현상이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무엇에 근거해서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근대소설에서는 그와 같은 현상을 반영하면서 인물의 내면적 갈등에 초점이 놓여진다. 이러한 경향이 극단화되면서 심리주의 소설까지 생겨난다.
『무정』이 심리주의 소설에까지 나아간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정』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내면적 갈등을 겪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행위중심적인 과거의 고전소설과는 다르게 심리중심적인 근대소설의 면모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삼각관계라고 하는 연애소설의 구도를 따르고 있는 이 소설에서 그 중심축에 놓여 있는 형식은 선형과 영채를 놓고 갈등한다. 그리고 작품은 그의 그러한 갈등의 내역을 소상하게 독자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 그의 갈등하는 심리 자체가 전면으로 부상되어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형식만을 생각하며 기생의 몸으로 칠 년 동안이나 정절을 지켜온 영채는 정작 형식을 만났지만 기생이라는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형식 앞에 자신을 떳떳이 드러내지 못하는 가운데 많은 심리적 갈등을 드러낸다. 선형 역시 형식을 두고 고민한다. 그의 생김새에 대해서는 물론 그의 내면의 마음에 대해서까지 분석하면서 그가 과연 자신을 사랑하는지, 혹여 자신을 속이고 영채를 만났던 것은 아닌지를 고민한다.
『무정』에서의 인물에 대한 심리묘사는 이러한 중심인물들에 대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 인물들에게서까지 내면적 갈등의 면모가 확인된다. 일례로 정조를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는 영채를, 배학감과 김현수와 짜고 강간의 상황으로 몰고 간 영채의 주인 노파에게서조차도 내면적 갈등이 확인된다. 강간을 당한 영채가 죽음의 길을 택하고자 평양행 기차에 오르자 자신의 무모한 계획에 대한 반성이 뒤따르는 것이다. 형식의 하숙집 노파에게서도 내면적 의식이 확인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인물들의 내면적 의식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단선적인 존재가 아님을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고전소설이 보였던 선악의 이분적 구도로는 인간이란 설명될 수 없는 존재임을, 인간이란 그와 같은 도덕적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다면적인 존재임을 자각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분명 인간에 대한 이해의 심화이다. 근대사회가 인간중심적 의식을 바탕으로 각 개인의 자아와 자유를 존중하는 시대라고 할 때 『무정』은 그러한 근대적 의식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적 자각의 민족적 계몽 의식으로의 승화
이 작품은 형식과 영채와 선형을 들어 연애소설의 삼각구도를 보이는 작품이지만, 각 인물들에게 시대적 상징성이 투영되면서 그 주제의식이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전환된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고, 그랬으면서도 혼약을 한 형식을 위해 칠 년 동안이나 정절을 지킨 영채는 구여성의 표본이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으며 여학교를 나온, 그리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선형은 신여성의 표본이다. 이러한 두 여성 사이에서 누구를 택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형식은 개화기 지식인의 표상이다. 그리하여 그가 끝내 영채가 아닌 선형을 택하는 것은 그가 구시대적 이념을 버리고 신시대적 이념을 지향하는 인물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은 그 시대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가 형식을 고아로 설정한 것도 과거의 구시대적 관습을 떨치고 새롭게 신문명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있다.
작가의 신문명에 대한 지향의식이 얼마나 강한가의 문제는 작품 속에서 구시대의 표상으로 자리하는 영채라는 인물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는 것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기생의 몸으로 정절을 지켜온 영채는 배학감과 김현수의 마수에 빠져 청량사에서 강간을 당하자 정절을 훼손당했다는 이유 하나로 죽음의 길에 나선다. 고향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향길에서 일본에서 공부를 하다가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오던 신여성 병욱을 만난다. 그리고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그 동안 자신이 매여 살던 정절의 이념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아버지를 위해서, 형식을 위해서 살아온 지난날의 자신의 삶이 얼마나 허황한 것이었는가를 깨달은 것이다. 병욱은 영채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임을 역설한다. 그렇게 해서 영채는 죽음의 길에서 벗어난다. 그리고는 결국에 병욱과 더불어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구여성의 표본이던 그녀조차 이제 신여성이 된 것이다.
그런데 작품에서 이처럼 신문명을 지향하는 인물들의 의식은 개인적 차원의 지향으로 끝나지 않는다. 형식은 선영과 약혼을 하고 미국 유학을 위해 기차에 오른다. 이 기차에는 일본 유학을 떠나는 병욱과 영채가 타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네 사람은 만나게 되고 다시 형식과 영채와 선형은 삼각관계로 인한 내면적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삼랑진 수해현장을 체험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내면적 갈등을 민족계몽의 자원으로 승화시킨다. 불쌍하고 무지한 민족을 위해 그들은 온 힘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근대소설에서 혹은 현대소설에서 서술자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무정』은 최초의 근대장편소설이라고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정』에서 확인되는 서술자의 권위적인 목소리는 『무정』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초점이 ‘근대소설’이 아닌 ‘최초’에 놓여져야 하는 것임을 깨우쳐 준다.
내면적 갈등의 표출, 심리적 인물의 형상화
고전소설에서 근대소설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의 하나가 행동중심에서 인물중심으로 이야기의 초점이 바뀌는 것이다. 특히 인물의 내면적 갈등에 초점이 놓이기 시작한다.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과거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가치관을 어떻게 실천하며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고전소설에서는 어떠한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근대사회에서는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확고한 가치관이 부재한 현상이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무엇에 근거해서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근대소설에서는 그와 같은 현상을 반영하면서 인물의 내면적 갈등에 초점이 놓여진다. 이러한 경향이 극단화되면서 심리주의 소설까지 생겨난다.
『무정』이 심리주의 소설에까지 나아간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정』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내면적 갈등을 겪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행위중심적인 과거의 고전소설과는 다르게 심리중심적인 근대소설의 면모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삼각관계라고 하는 연애소설의 구도를 따르고 있는 이 소설에서 그 중심축에 놓여 있는 형식은 선형과 영채를 놓고 갈등한다. 그리고 작품은 그의 그러한 갈등의 내역을 소상하게 독자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 그의 갈등하는 심리 자체가 전면으로 부상되어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형식만을 생각하며 기생의 몸으로 칠 년 동안이나 정절을 지켜온 영채는 정작 형식을 만났지만 기생이라는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형식 앞에 자신을 떳떳이 드러내지 못하는 가운데 많은 심리적 갈등을 드러낸다. 선형 역시 형식을 두고 고민한다. 그의 생김새에 대해서는 물론 그의 내면의 마음에 대해서까지 분석하면서 그가 과연 자신을 사랑하는지, 혹여 자신을 속이고 영채를 만났던 것은 아닌지를 고민한다.
『무정』에서의 인물에 대한 심리묘사는 이러한 중심인물들에 대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 인물들에게서까지 내면적 갈등의 면모가 확인된다. 일례로 정조를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는 영채를, 배학감과 김현수와 짜고 강간의 상황으로 몰고 간 영채의 주인 노파에게서조차도 내면적 갈등이 확인된다. 강간을 당한 영채가 죽음의 길을 택하고자 평양행 기차에 오르자 자신의 무모한 계획에 대한 반성이 뒤따르는 것이다. 형식의 하숙집 노파에게서도 내면적 의식이 확인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인물들의 내면적 의식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단선적인 존재가 아님을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고전소설이 보였던 선악의 이분적 구도로는 인간이란 설명될 수 없는 존재임을, 인간이란 그와 같은 도덕적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다면적인 존재임을 자각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분명 인간에 대한 이해의 심화이다. 근대사회가 인간중심적 의식을 바탕으로 각 개인의 자아와 자유를 존중하는 시대라고 할 때 『무정』은 그러한 근대적 의식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적 자각의 민족적 계몽 의식으로의 승화
이 작품은 형식과 영채와 선형을 들어 연애소설의 삼각구도를 보이는 작품이지만, 각 인물들에게 시대적 상징성이 투영되면서 그 주제의식이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전환된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고, 그랬으면서도 혼약을 한 형식을 위해 칠 년 동안이나 정절을 지킨 영채는 구여성의 표본이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으며 여학교를 나온, 그리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선형은 신여성의 표본이다. 이러한 두 여성 사이에서 누구를 택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형식은 개화기 지식인의 표상이다. 그리하여 그가 끝내 영채가 아닌 선형을 택하는 것은 그가 구시대적 이념을 버리고 신시대적 이념을 지향하는 인물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은 그 시대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가 형식을 고아로 설정한 것도 과거의 구시대적 관습을 떨치고 새롭게 신문명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있다.
작가의 신문명에 대한 지향의식이 얼마나 강한가의 문제는 작품 속에서 구시대의 표상으로 자리하는 영채라는 인물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는 것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기생의 몸으로 정절을 지켜온 영채는 배학감과 김현수의 마수에 빠져 청량사에서 강간을 당하자 정절을 훼손당했다는 이유 하나로 죽음의 길에 나선다. 고향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향길에서 일본에서 공부를 하다가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오던 신여성 병욱을 만난다. 그리고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그 동안 자신이 매여 살던 정절의 이념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아버지를 위해서, 형식을 위해서 살아온 지난날의 자신의 삶이 얼마나 허황한 것이었는가를 깨달은 것이다. 병욱은 영채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임을 역설한다. 그렇게 해서 영채는 죽음의 길에서 벗어난다. 그리고는 결국에 병욱과 더불어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구여성의 표본이던 그녀조차 이제 신여성이 된 것이다.
그런데 작품에서 이처럼 신문명을 지향하는 인물들의 의식은 개인적 차원의 지향으로 끝나지 않는다. 형식은 선영과 약혼을 하고 미국 유학을 위해 기차에 오른다. 이 기차에는 일본 유학을 떠나는 병욱과 영채가 타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네 사람은 만나게 되고 다시 형식과 영채와 선형은 삼각관계로 인한 내면적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삼랑진 수해현장을 체험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내면적 갈등을 민족계몽의 자원으로 승화시킨다. 불쌍하고 무지한 민족을 위해 그들은 온 힘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