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창조세계 안에 존재하는 엄연한 사실이고, 이제 인간이 그런 고난에 함께 어떻게 동참할지의 문제이다. 내가 판단한 하나님의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고난 연대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찬양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욥기의 심오한 주제가 되는 것이다.
욥기가 말하려는 것은 인과응보의 신앙이 아니다. 심판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또 구원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등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의로운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믿음은,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러하지 않을지라도 자신들의 신앙을 굽히지 않고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그런 신앙! 죽으면 죽으리라의 신앙!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이다.
고난중 예레미야의믿음(렘20:7-18)
오늘 본문에는 예레미야의 독백이 기록되어 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말씀을 전함으로 유다백성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성전의 제사장들에게까지 박해를 받았다. 이에 예레미야는 극도의 절망감을 느끼며 탄식하게 된다. 그래서 7절에 보면 자신의 심정을 하나님께 토로하며 탄식한다. 먼저 오늘 말씀에 보면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하였다. 자신은 예루살렘의 강포와 멸망을 전하는 것이 싫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 사방 여러 무리들의 유혹과 시험 비방 모욕 박해가 있다. 그래서 14절로18절에 보면 이런 비방과 모욕 시험을 당하는 자신에 대해서 탄식하며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그들의 강포와 죄악 그리고 심판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그로 말미암아 당하느 비방과 저주 모욕이 견딜수 없을정도로 힘든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말씀하시니 그 말씀을 전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9절에 예레미야는 말한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수 없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강하게 자신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11절에 예레미야는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하나님으로 인해 그 모든 비방 고소 유혹등을 이겨나가게 될 것을 말한다.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하시는 고로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치 못하므로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그 수욕은 영영히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한다. 그리고 13절에는 이런 이김과 승리를 심판을 하실 하나님을 찬양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비방 수치 모욕 절망감 모욕등이 있을 수 있다. 이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그런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하는 하나님의 연단의 손길이다. 그 모든 비방 환난 고통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이기게 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다. 오늘도 강권적으로 역사하신다. 이 역사 앞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욥기가 말하려는 것은 인과응보의 신앙이 아니다. 심판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또 구원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등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의로운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믿음은,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러하지 않을지라도 자신들의 신앙을 굽히지 않고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그런 신앙! 죽으면 죽으리라의 신앙!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이다.
고난중 예레미야의믿음(렘20:7-18)
오늘 본문에는 예레미야의 독백이 기록되어 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말씀을 전함으로 유다백성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성전의 제사장들에게까지 박해를 받았다. 이에 예레미야는 극도의 절망감을 느끼며 탄식하게 된다. 그래서 7절에 보면 자신의 심정을 하나님께 토로하며 탄식한다. 먼저 오늘 말씀에 보면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하였다. 자신은 예루살렘의 강포와 멸망을 전하는 것이 싫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 사방 여러 무리들의 유혹과 시험 비방 모욕 박해가 있다. 그래서 14절로18절에 보면 이런 비방과 모욕 시험을 당하는 자신에 대해서 탄식하며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그들의 강포와 죄악 그리고 심판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그로 말미암아 당하느 비방과 저주 모욕이 견딜수 없을정도로 힘든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말씀하시니 그 말씀을 전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9절에 예레미야는 말한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수 없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강하게 자신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11절에 예레미야는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하나님으로 인해 그 모든 비방 고소 유혹등을 이겨나가게 될 것을 말한다.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하시는 고로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치 못하므로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그 수욕은 영영히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한다. 그리고 13절에는 이런 이김과 승리를 심판을 하실 하나님을 찬양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비방 수치 모욕 절망감 모욕등이 있을 수 있다. 이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그런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하는 하나님의 연단의 손길이다. 그 모든 비방 환난 고통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이기게 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다. 오늘도 강권적으로 역사하신다. 이 역사 앞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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