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구체제의 권력구조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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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보인 냉혹함과 마찬가지로 서투른 것이었다. 농민들은 이제 자신들의 참상이 밝혀지고 그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 누군가를 알게 되자 분노를 터뜨렸으며, 그들이 느낀 분노는 더욱 커져갔다. 토크빌에 의하면 식자층은 사심없는 믿음과 인도적인 공감을 가지고 혁명에 뛰어든 반면, 인민들은 그들의 참상에 대한 쓰라린 감정과 자기 위치를 개혁하려는 열의에 의해 움직였다고 한다. 전자가 보여준 열성은 후자의 분노와 욕구에 불을 붙여주는 역할을 하고 만 것이다.
외관상으로는 튼튼해 보이지만 이미 낡아버린 제도들에 대해 앞장서서 경멸감을 표명한 것은 바로 루이 16세였다. 그는 통치기 내내 개혁에 대해 언급하였으며, 그 개혁들은 혁명에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함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혁명을 어떤 식으로 수행할 것인가를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게 된 것이다. 구체제의 정부는 이런 식으로 혁명기에 가장 적합하고 전제정에 가장 편리한 형법 조문들을 매일같이 인민들에게 교사해준 것이다. 토크빌은 혁명 정부가 사용한 수많은 관행들이 이미 군주정 말기 하층민들에게 취해진 조치들 속에 그 선례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며, 구체제는 그 형태들 중 몇 가지를 제공해 주었고, 대혁명은 거기에 포학성 만을 덧붙였을 따름이라고 하였다.
루이 16세는 프랑스 혁명 직전에 낡은 사법권을 폐지하고 재판관할권 규정을 변경하였다. 또한 부르주아지 모두가 직접 또는 간접으로 재판업무에 관여할 정도로 재판 혹은 판결을 집행하는 데 종사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났다. 또한 1787년 지사와는 별도로 주의회 주 의회는 지사를 대신해서 대부분의 소송 사건에 대해 초심법원의 기능을 수행해야만 했으나, 그것은 사실상 집단적이고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권력체에게는 그리 적합하지 못한 기능이었다.
가 조직되어 지방 행정을 떠맡게 된다. 중앙집권적 속성이 혁명에 의해 타도될 운명에 놓인 이 낡은 군주정에 이미 침투해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법제에 의해 창안된 모든 권력체들은 집단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국가의 행정은 그 전까지 업무상의 장애를 유발하였다. 이것이 혁명기 공포정치를 탄생시켰다. 모든 행정 법률과 행정 습성에서의 혁신은 혁명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으며, 토크빌은 이 행정 혁명을 매우 높게 평가하였다. 때문에 군주나 권력 형태가 바뀌어도 일상사의 과정은 조금도 동요되거나 방해받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관련된 사소한 일상사에 있어서 자신들에게 익숙한 규범이나 관례를 따랐으며, 하위 권력체들에 의존했다.
5. 나오며
토크빌은 프랑스혁명을 구체제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토크빌은 봉건제도 중에서 인민에게 해악과 장애를 가져올 수 있는 요소들은 그대로 온존되어 온 반면에 보호와 혜택을 가져올 수 있는 요소들은 가장 많이 잃어버린 곳이 바로 프랑스임을 고려해본다면, 유럽의 낡은 구조를 난폭하게 일소하게 될 혁명의 진원지가 바로 프랑스였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한다. 귀족신분은 이미 정치적 권리를 상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에게 주어진 재정적 면제권 및 제반 혜택을 계족 보존하고 증대시켜왔다. 또한 중앙집권화를 통하여 모든 지방 권력체들을 대체해버림으로써 파리가 중심으로 떠오르는 필연적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유제도들이 소멸되어 버리고 그 결과 정치 계급들도, 활동적인 정치 단체들도, 지도적인 정당 조직들도 이미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을 때 그 방향은 전적으로 철학자들에 의해 좌우되었다. 교회는 곧 제거될 운명인 일체의 낡은 제도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혁명이 공권력을 전복시킴과 동시에 종교도 공격하게 된 것이다. 구체제의 행정은 이미 프랑스인에게 서로 협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나 희망을 앗아가버렸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의회의 관할로 양도된다면, 그리하여 온건한 통치가 바뀐다면, 중앙권력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이 속에서 전능한 절대자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구체제는 사실상 근대적일 뿐 아니라 평등에 적대적이지 않은 일단의 제도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제도들은 새로운 사회에 쉽게 자리잡았으며, 전제주의에 놀라운 편익을 제공하였다. 구체제의 폐허 속에서 발견되어 복구된 이 제도들은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유순하게 길들이는 효과를 지닌 습성과 열정 및 관념들을 배양하는 것이었다.
대혁명이 국민 중 가장 계몽된 계급들에 의해 준비되었으나 가장 덜 계몽되고 가장 거친 계급에 의해 실행되었다는 사실은 프랑스 혁명의 온건성과 행동의 과격성 사이의 대조를 설명한다. 서적은 이론을 제공하였으며 인민들은 그 이론을 실제에 적용했다. 인민들은 작가들의 사상을 자신의 행동의 충동에 덧붙인 것이다. 불평등에 대한 격렬한 증오심과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기 위한 욕구가 18세기 프랑스의 중요한 열정이 되었다. 평등에 대한 열정은 항상 원래 모습 그대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자유에 대한 열정은 계속 그 모습을 달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태의 추이에 따라 감소되거나 확대되었으며 강화되거나 약화되었다.
토크빌의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을 읽으면서 역사는 단순히 한 개인 혹은 한 집단 세력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1789년 이후 전세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 프랑스 혁명은 소수의 혁명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파리 시민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봉건체제에서부터 구체제의 모습, 그리고 프랑스 혁명은 맥락적으로 파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프랑스 혁명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적 사실에 있어서 적용된다. 예를들어 우리나라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할 때, 민주화의 발전에 악영향을 미쳤지만 경제적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경제적 발전은 단순히 박정희라는 한 사람에 의해서 일궈진 것이 아니라 경제가 발전할 수 밖에 없었던 맥락적인 구성을 파악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프랑스 혁명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데 그치지 않고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론에 대해서 큰 의미를 던져준다
[출처] 프랑스 혁명과 구체제|작성자 독학자

키워드

  • 가격3,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94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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