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동복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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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동복지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한국의 아동복지 역사

본문내용

진휼청임시사목(賑恤廳臨時事目) 일명 수양임시사목(收養臨時事目) 있었다.
15세기 정조는 서울과 지방에서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한 해에 유지를 당하여 사방에 호솰 곳이 없는 불쌍한 아동, 특히 몸을 가리고 입에 풀칠하는 것을 자력으로 할 수 없는 가련한 아동과 살길을 찾아 떠돌아다니면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문전걸식하는 부랑아들을 공립시설에 수용하거나 민가에 수양 할 수 있도록 허가 했다. 구자헌 『아동복지』한국사회복지 연구소,2001.pp191~207.
헌종2년(161년)이후에는 한성 각부의 유기아에 대한 관청 허가제에 의한 민가수양이 실시되고, 이들에 대하여는 의복도 관급하였다. 그리고 양육에서 10세에 이르면 기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아동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권리를 갖게 하였다.
그 후 숙종 22년(1696년)의 수양임시사목(收養臨時事目)이 제정 실시되고, 이어 영조 20년(1744)년에는 이 사목이 속대전 『속대전(續大典)』속에 편찬되어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정조가 제정한 자휼전칙은 이러한 일련의 제도를 집대성하여 정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동의 생명을 절대적으로 보호하여 국가에서 수용 보호하거나 또는 민가에 수양하여 양자녀 또는 노비로 삼는 것을 그 정화에 따라 허가하는 것을 근본 취지로 삼았던 것이다. 자휼전칙은 우리나라의 전근대의 대표적인 아동복지 법령이다. 앞에서 법령이 민가수양과 같이 민간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자휼전칙은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전남련『전게서』P.50.
2. 근대이후
근대의 아동복지는 조선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일제 강점기는 조선 구호령 조선구호령은 일제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 주된 양육자의 징병과 징용 등으로 방치된 65세 이상의 소쇠자와 13세 미만의 요보호아동의 생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정되었다. http://www.empas.com
중 13세 이하의 유아와 임산부에 대해 규정하고, 아동시설보호는 보육원에 두도록 하였다.
이외에도1855년 프랑스인 메스트로 신부에 의한 고아 구제사업를 들 수 있으며, 서양선교사들에 의한 시설보호 아이디어는 이후 우리나라 아동보호에 있어 수용시설 중심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고종 32년(1895년)에는 인천에 천주당 부속 고아원이 설립되었고, 광무10년(1906년)에는 이필화가 경성고아원을 세우 근대적인 영 유아복지사업이 시작되었다. 이시기의 민간 아동복지는 19세기말 한국을 둘러싼 치열한 국제정세 속에서 구제의 여력을 갖지 못했던 대한제국 정부를 대신하여 전국 각지에서 착실하게 행정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했다.
1888년 프랑스 신부에 의해 명동에 세워진 고아원은 근대 우리나라에 최초로 세워진 아동시설이었으며, 그 밖에도 인천의 카톨릭 고아원, 평양의 감리교회 맹아학교 등은 이 시대 선구적인 아동복지시설이었다.
유학자 이필화에 의해 세워진 경성고아원은 (1906년)은 대한제국 학부대신 설립인가를 받아 연액 360원의 한국 황시

키워드

아동,   복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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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98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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