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벌린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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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사야 벌린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이사야 벌린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본문내용

관용의 원천이다-- 착각한 사람이 빛을 볼 때까지 기다려 준다고 하는 불안정한 관용만이 아니라 우리가 신봉하며 살아가는 삶의 지향과는 다른 지향을 인정하고 환영한다고 하는 깊고도 지속적인 관용의 원천이다.”( 21쪽)
다원주의, 불협화음일 수 밖에 없는 자유론을 읽으면서, 그러면서 자유가 있는 조화로운 삶을 생각해본다. 조화란 이사야 벌린이 말하는 소극적 자유에 둥지를 튼 세계가 아닐까 싶다. 다만 슘페터(Joseph A. Schumpeter 의 말처럼, “자기가 가진 확신의 타당성이 상대적임을 깨닫고도 위축되지 않고 그것을 지키는 데서 개명된 사람과 야만인이 구별된다.”( 421쪽)는 데서, 그 조화란 일사분란하고 질서정연한 조화는 아닐 것이다. 굴러가고 돌아가고 흘러가는 조화라고 말하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원칙이 있고, 원칙을 벗어난 예외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오는 공존으로서의 조화에 다름아닐 것이다. 이를 관용이라 해야할까? 투쟁의 역사로도 보이는 자연임에 분명하지만 조화로워 보이는 자연 아닌가. 물론 한편으로 조화란 오래도록 그래 왔기에 가능한 익숙함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조화란 당사자가 아닌 외부자의 눈으로 본 조화이고 관용일 수 있다. 당사자는 투쟁으로 이미 사라져버렸고, 깨져버렸다해도, 전체로서의 세계(우주)는 여전히 잘 돌고 있으니. 그러니 더더욱 대상의 인정이 있어야 할테다.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대상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이기도 하니 말이다. 모든 사람은 자유, 생명, 행복추구의 귄리를 갖는다. 그렇다고 해서 생명을 지닌 인간 모두가 자유를 부르짖기만 할 수는 없다. 왜 그런가? 정의, 행복, 사랑, 협동 등의 가치들끼리 상충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 할 일이란 뭘까? 그건 바로 진정과 몰입이 아닐까 하는 게, 낭만주의의 뿌리를 추적해봤던 이사야 벌린의 시선인 것 같다. 모르면서도 순간에 최선에 다하고, 순간의 최선을 다하기 위해 그 이전 또 최선을 다하는 삶이어야함을 말한다. 그건 이미 결정된/쓰여진 역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의 행로이지 않을까?...
“불의, 빈곤, 노예제, 무지 등과같은 문제들은 개혁이나 혁명에 의해서 치유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악에 대한 투쟁만으로 살지 않는다. 인간은 적극적인 목적들을 가지고, 개인적이기도 하고 집단적이기도 하며 매우 다양하고 그 사이에 때때로 양립불가능성이 존재하는 그러나 그 점이 미리 예측되는 경우는 아주 드문 그런 가치들을 통해서 산다. 개인들의 삶에서 또는 한 나라 국민의 삶에서 가장 훌륭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궁극적이며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고 가변적인지 아니면 고정적인지가 사전에 정해지지 않은 그런 가치들과 목적들에 대한 집중적으로 몰입한 결과이다. 다시 말하여 그런 순간은 사전에 계획된 바 없이, 때때로 완벽하게 구비된 기술적 장비도 없이, 대개의 경우 성공하리라는 의식적인 기대도 없이, 하물며 어떤 공식적 감독관청이 발부한 면허장 따위는 더더욱 없이, 그와 같은 목적에 몰입한 개인들 또는 집단들을 통해서 찾아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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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99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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