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의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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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어거스틴의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을 설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어거스틴의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을 설명

본문내용

만 우리는 재생(Regeneratio)하지 못하고 그 자유를 쓰는 유일한 용도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이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고, 죄로부터 온전히 자유롭고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은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은총이란 자연적인 어떤 것이 아니고 인간의 본성의 회복을 위해서 치료하는 것이다.
② 은총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의 사상을 반박하면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은총은 절대적 필연성이었다. 펠라기우스와 상반되는 입장에서 어거스틴은 은총을 이해했던 것이다. 즉 인간의 모든 행동, 특히 인간이 선행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펠라기우스는 하나님의 은총이 없어도 인간 스스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인간이 그 선행에 전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인간 자유의지로써는 악에 대한 유혹을 극복할 수 없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은총이라는 단어는 어떤 때에는 성령, 비로 그분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성령의 내재이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무료로 얻는 선물(Donum), 즉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나타낸 효과를 뜻한다. 이 선물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애덕 즉 사랑이다. 이 애덕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게 하는 사랑이다. 이 그리스도의 은총은 이것이 없으면 갓난아이나 어른이라고 할지라도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이지만, 어떠한 공로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어지는데, 이것을 또한 은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거스틴은 은총을 두 가지로 구별했다. 그 첫째가 선행은총(Gratia praeveniens)이다. 이 선행 은총은 하나님께서 선행적 은총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무슨 선을 생각하거나 열망하거나 혹은 의욕하도록 우리 영혼 속에서 시작하신다는 것이다. 즉 모든 움직임 안에 있어서 시작은 언제나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원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지는 하나님이 준비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원함으로써 넉넉히 행할 수 있게 만드는 의지력을 하나님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원할 때 원하는 것이 우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한 일을 원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다. 이 선행 은총은 인간이 선을 행하거나 계명을 지키는 데 있어서 가장 원초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은총으로 인해 인간이 계명이나 선을 행하는 것이 된다. 둘째 협동하는 은총(Gratia cooperans)이다. 하나님께서 일단 우리 의지가 분발하게 되면 협동하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의지를 도와주시고 협동하신다. 협동은총이라는 것은 신앙이라는 행위를 인간 측에서 보거나 시간적인 면에서 볼 때 그것은 우리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게 되고 또한 믿음이란 은총에 의해서 항상 자라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일정한 성장과정이 있다. 회개, 재생, 죄의 용서, 의인, 성화 등 이러한 과정에 따라 성장하는 것이다. 이 성장에 있어서 사람의 주체적인 결단이 없이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주체적인 결단도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는 안 된다. 이 협동하는 은총은 인간을 도와주는 효율적인 은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이 은총을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하였다 하더라도 이 은총은 결국 그리스도를 통하여 타락한 인간을 의화시키는 은총이라고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은총은 타락한 인간을 의화시킴으로써 정의와 선에 대한 애착적 자유을 회복하게 된다.
어거스틴의 은총은 인간의 공로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 은총은 인간의 행위 이전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진정한 선물이다. 즉 선행은총이다. 모든 인간의 행위는 (가치가 있는 것이든, 가치가 없는 것이든)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는 실행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인간의 자유, 즉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은총이 어떻게 서로 마찰 없이 작용하는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자유의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하나님의 은총이 자유의지를 파괴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3.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논쟁의 결과
418년에 펠라기우스 논쟁을 첫 번째로 종결짓는 가르차고 종교회의가 열렸다.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판결이 내려졌다. 즉 아담이 사멸적으로 창되었다는 견해와 유아들이 스스로 아담의 원죄의 어느 것도 대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과 그러므로 그들의 세례는 죄사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펠라기우스의 사상을 정죄하였고, 오히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에게 죄가 전달되었다는 어거스틴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이후 431년 에베소에서 열린 이른바 제 3아 총회에서 펠라기우스설은 동방과 서방에서 공식적으로 부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둔화된 형태로나마 존속하였다. 그리고 언제 교회내의 사상계 한 경향을 대표해 왔다.
III. 결론
어거스틴에 의하면 하나님은 죄 많은 인간을 부르시고, 그 부르시는 목적은 구원하기 위함이며, 또한 은총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어거스틴은 은총은 죄 많은 인간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절대적이며, 유일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와의 논쟁 가운데서, 은총의 두 가지 면을 주장하고 나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첫째는 인간의 본성과 의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타락한 인간을 갱신하는 "갱신의 요체"로서의 은총이요. 둘째는 구원이 은총으로부터 시작해서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의 주체로서의 은총이다.
결국 은총은 인간의 부패한 본성과 의지를 변화시키는 변화의 주체자요, 따라서 타락한 인간을 근본적으로 갱신케 하는 갱신의 요체이다. 또한 은총은 인간의 구원을 시작하고 이루는 주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물질문명과 고도의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이 더욱 더 타락해져만 가고, 하나님께 교만해져만 가는 오늘 이 시대에 역시 어거스틴의 초자연적인 신적 은총은 역시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변화의 주체자로 서 있으며, 타락한 인간을 갱신케 하는 "갱신의 요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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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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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99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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